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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6

일상이 예술이 될 때

식탁 위에 오른 음식이 예술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샘 헌들리(Sam Hundley)의 ‘Busy Bee’.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제공 버지니아 현대미술관

양식은 모든 생명체에 꼭 필요한 요소지만, 인간에겐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영양소 공급원 그 이상이다. 포유류 중 유일하게 식재료를 ‘요리’해 먹는 인간은 ‘미각’, ‘시각’, ‘후각’, ‘촉각’ 모두 만족하길 원한다. 결국 생존은 물론 ‘유희’까지 음식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 또 음식과 식탁 그리고 식사 자리에는 ‘사회화’의 의미가 내재돼 있다.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으며 친분을 유지하고, 음식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쌓는다. 예술 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상호작용하는 점을 생각할 때 음식과 접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음식과 그 음식이 차려진 식탁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예술의 소재가 되어왔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자.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잡히기 전날 밤 12명의 사도와 함께 마지막으로 식사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대부분 작품의 스토리와 맥락, 도상에 집중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가 죽기 직전,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한 일이 자신을 따르던 사도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사실을 짚어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을 가장 명백하게 가르는 주제가 바로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음식과 식탁, 식사 등에 대한 주제는 정물화 . 사실주의 . 인상주의 회화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근대미술로 넘어오면서 예술가들은 단순히 재현하는 예술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이슈와 작가적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이 주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건축가이자 예술가 고든 마타-클라크가 1971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 뉴욕에서 선보인 ‘Food’라는 해프닝을 살펴보자. 당시 버려진 건축물을 자르고 구멍 내며 도시 시스템을 비판하고, 또 대안을 제시하려 한 마타-클라크는 뉴욕 소호에 있는 건물을 임대해 동료 예술가와 함께 동명의 음식점을 운영했다. 메뉴의 가격은 5달러가 채 되지 않았는데, 작가는 이곳에서 자본주의에 따른 생산과 소비 법칙을 전복하고 예술적 실천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 모델을 창조하고 ‘공유’에 대한 개념을 설파했다.





위쪽 주디 시카고의 ‘The Dinner Party’ 전경. 작가는 이를 통해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아래쪽 리처드 니켈(Richard Nickel)의 ‘Pea Pods’.

그런가 하면 1970년대 주디 시카고는 ‘The Dinner Party’라는 주제로 음식과 식탁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한 작품을 선보였다. ‘페미니스트 예술’의 상징과도 같은 이 작품은 역사에 기록된 여성 39명을 선정하고 삼각형 테이블을 마련해 이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한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삼각형 테이블 한 면은 총 16m로 13명분의 식기가 세팅되어 있다. 첫 번째 면은 선사시대부터 로마제국 시기에 이름을 올린 여성 13명을, 두 번째 면에는 기독교 태동기부터 종교개혁기까지 활약한 역사적 여성 13명을, 마지막으로 세 번째 면에는 미국 건국기부터 여성해방 운동기까지 13명의 여성을 제시한다.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테이블 가운데 삼각형 부분은 타일로 만들었고, 그 위에는 금색 유약으로 역사에 기록된 999명의 여성 이름을 적었다. 식기도 도자기로 만들었는데, 접시 무늬는 각 여성이 살던 시대와 업적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디자인했다. 이 작품은 당시 미술계 안팎에서 악평을, 다시 말해 고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잔틴제국의 황후 테오도라, 17세기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8세기 영국 여성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등 역사적 인물을 발굴한 것과 주부의 노동을 상징하는 공간과도 같은 식사 테이블에 이들을 정중히 초대함으로써 가부장적 사회 속 드물게 성취를 이룬 여성을 찬양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지금보다 여성이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주디 시카고의 ‘The Dinner Party’는 명백한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도전이자 반항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술은 음식과 식탁, 식사를 담아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작업을 펼친 작가로 꼽을 만한 이는 카네기 멜런 대학교 사회학 교수 존 루빈(Jon Rubin)과 현대미술가 돈 웰레스키(Dawn Weleski) 듀오가 함께 활동한 컨플릭트 키친(Conflict Kitchen)이다. 미국 피츠버그를 기반으로 활동한 이들은 동명의 레스토랑을 만들어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국가, 즉 국제 테러 행위에 반복적으로 지원한 국가인 테러 지원국의 음식을 제공하며 적이라고 여기는 나라의 문화를 통해 그들을 좀 더 이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0년 이란 음식으로 시작해 베네수엘라,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쿠바, 북한 음식을 판매했다. 집중하는 국가가 달라질 때마다 식당 간판부터 메뉴, 포장지를 새로 디자인하며 국가의 특성에 맞는 레스토랑으로 재탄생시켰다. 사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테러 지원국의 정보는 부정적이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기회가 없다. 컨플릭트 키친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테러 지원국에 대한 사회 전반의 편견을 깨고 함께 식사하며 ‘화합’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위쪽 고든 마타-클라크의 ‘Food’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미각의 미감>에서 선보인 바 있다.
아래쪽 전 내부 설치 전경.

팬데믹으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올 2월부터 6월까지 미국 버지니아 현대미술관(MOCA)에서 성장, 건강, 돌봄 등의 의미를 음식에 투영한 전시 를 선보였다. 젊은 작가 12명이 농부, 요리사, 영양사, 작가, 음식 저널리스트 등 로컬 푸드 전문가와 일대일로 협업해 음식에 담긴 ‘성장’의 의미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자리였다. 최근 ‘재생’, ‘지속 가능성’ 등이 사회적 이슈로 꼽히는 만큼 참여 작가의 작업 역시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중 케빈 제이미슨(Kevin Jamison)이라는 뉴 어스 팜 & 코뮨(New Earth Farm & Commune) 운영자와 협업한 작가 베시 디훌리오(Betsy DiJulio)는 “이번 협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특히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흙’, 땅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흙에는 식물을 자라게 하는 미생물이 풍부해요. 그런데 ‘대량생산’ 범주에서는 작물을 수확하며 흙이 재생하는 속도가 이를 따라가기 어려워 대량의 비료를 사용하는 거죠”라며 작품을 통해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음식, 식탁, 식사 등의 주제를 다루는 작가마다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상이할 수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같다. 바로 ‘우리 삶’. 음식을 실마리로 생활, 사회, 철학, 역사 전반을 아우르며 저변을 확장한다. 앞으로도 예술이 존재하는 한 음식과 식탁은 그들에게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마주할 때 음식 이면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보면 작품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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