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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9

남자들의 아지트로 초대합니다

공간에 새겨진 다섯 남자들의 추억과 취향.

취향이 공간이 될 때,
박주원의 엔터테인먼트 하우스











박주원이 거주하는 서른 평 남짓한 공간은 그를 말해준다. 집 안 곳곳엔 톰 브라운 아시아퍼시픽 세일즈 디렉터인 그가 세계 여러 곳을 출장하고 여행하며 수집한 유니크한 소품으로 가득하다. 낯선 문화에서 얻은 영감이나 새로움 그리고 그의 좋은 취향이 담겨 있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이 됐다. 그래서 방을 사무실처럼 쓴다. 방에 들어가는 것이 출근이고 거실로 나오면 퇴근이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다.” 그의 말처럼 그가 일하는 방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락한 분위기로 꾸몄고, 거실과 키친・테라스는 그의 즐거운 라이프스타일을 오롯이 반영했다. 거실에서 눈에 띄는 건 공간 구조와 곳곳에 놓인 소품. “천장을 1m 정도 높였다. 거실과 복도 바닥은 원목을 활용해 따듯하게 꾸미고 싶었다. 가장 신경 쓴 공간은 테라스다. 야외에 있는 것처럼 개방된 느낌을 원했다.” 높은 천장 아래로 서프보드가 걸려 있고, 벽걸이 장에는 카메라와 렌즈가 옹기종기 놓여 있다. 테라스는 작은 테이블과 책장으로 장식해 근사한 카페의 야외 공간처럼 연출했다. 거실은 박주원의 라이프스타일을 압축한 곳이다. “거실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손님을 맞이한다”는 그의 말처럼 넓은 빈티지 테이블을 두고, 빈티지 스피커와 레코드, 파티 분위기를 한껏 낼 수 있는 미러볼과 스모그 장비까지 갖췄다. “최근 지인 몇 명이 모였는데, 한참 술 마시고 떠들다 흥이 오른 몇몇이 춤을 추더라. 즉흥적이지만 멋진 광경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도 즐겁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낸 그이기에 팬데믹 시대의 고립이 답답했다. 그래서 집을 업무 공간이자 누군가와 함께하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꾸몄다.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탐험하듯 집 안을 누빈다. 누군가는 카페 같다 하고, 누군가는 바(bar) 같다고도 한다. 그런 표현을 듣는 건 즐거운 일이다.” 박주원의 집을 둘러보다 물음표가 떠오른 소품이 있다. 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키며 나란히 놓인 2개의 시계다. “하나는 한국, 다른 하나는 파리 시간을 가리킨다.” 화상 미팅이 잦은 지역의 시간과 한국 시간을 동시에 보기 위함이라며, 인터뷰 이후 예정된 회의를 위해 ‘출근’을 준비한다고 했다.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의 거울,
오동진의 아틀리에















공간은 거주자의 취향과 성향을 먹고 자란다.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자 성장하며 주인을 닮아가는 식물인 셈이다. 그래서 페인트 컬러나 소품 형태 하나까지 모든 선택이 중요하다. 미디어 커머스 회사 랩도쿠(Labdoku)의 공동 창립자 오동진의 집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아틀리에이자 취미를 위한 성소다. 거주 공간인 1층과 작업 공간인 2층 그리고 취미 공간인 루프까지 오롯이 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담았다. “어릴 때부터 식물 키우는 데 관심이 많았다. 처음엔 식충식물에 매력을 느꼈고, 지금은 잎이 넓은 관엽식물을 주로 기른다. 그래서 넓은 야외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무로 된 천장 구조가 굉장히 동양적이라 마음에 들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 집을 결정한 뒤 장장 4개월에 걸친 대규모 공사를 진행했다.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모두 오동진의 손끝을 거쳐 탄생했다. 헌팅 트로피나 벽 페인트, 계단 구석의 동상, 옥상 구조까지 모두 직접 구상하고 제작했다. 침실의 블라인드 패턴과 거실 벽에 걸린 동 재질 오브제, 식탁 형태까지 반복된 원(圓)은 오동진이 좋아하는 도형이다. “공간에 어떤 이름을 붙이거나 스타일을 부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웠다. 특별히 고집하는 게 있는 건 아니지만, 비우면서 살자는 주의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사거나 집에 들이는 것에 신중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공간은 여유롭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좋은 안목으로 선택한 요소가 많지만 부대끼지 않는다. 그리고 새것보다는 사람의 손을 탄 물건을 좋아한다. 거실과 침실을 채운 자개장과 페르시안 카펫은 오랜 고민 끝에 중고로 구입해 직접 옻칠하고 수선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루프다. 4평 남짓한 옥상은 수십 종류의 식물을 기르는 식물원이자 친구들과 함께 바비큐를 즐기는 파티 장소, 반려묘가 유유자적 거니는 놀이터, 또는 홀로 태닝하거나 차 마시는 곳으로 이용한다. “팬데믹 시대다 보니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는 옥상이 좋다. 또 프라이버시 공간이기도 하다. 계절이나 날씨를 쉽게 체감할 수 있고, 고양이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두 바퀴 마니아의 셸터,
토미 킴의 로망 개러지



필동은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탄 특유의 답답함이 없다. 고층 빌딩보다는 지붕이 낮은 건물이 많아 분위기가 한적하다. 토미 킴은 필동에서 카페 ‘로이터 커피 셸터’를 운영하고 있다. 커피 향과 멋진 음악이 흐르는 곳이지만, 토미 킴이 사랑하는 비밀 공간은 따로 있다. 같은 건물 주차장 한편을 개조해 만든 개러지다. “캐나다에 오래 살았는데, 당시에는 가족들의 차고가 있었다. 그때의 추억도 있고 자전거나 바이크, 자동차같이 탈것을 좋아해 늘 나만의 개러지를 갖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토미 킴의 차고에는 픽스트 기어 바이크부터, 로드 자전거, MTB 그리고 접이식 자전거가 두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자전거도 있고, 해외에서 직수입한 제품도 있다. 최신형보다는 바이크의 역사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취미이자 컬렉팅인 셈이다.” 토미 킴은 10년 전 한국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자전거와 함께했다. 개러지 벽면을 장식한 자전거를 볼 때면 ‘한국에서 보낸 10년의 추억을 전시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이곳이 더욱 특별하다. 그의 개러지는 단순히 자전거와 바이크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자전거를 정비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춰 직접 만지고 해체하며 조립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어쩌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자전거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덕분에 동호회를 비롯한 여러 모임도 갖게 됐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그는 바퀴 달린 건 뭐든 좋아한다. 차고에는 자전거 장비는 물론 헬멧을 비롯한 바이크용 장비와 정비용품도 가득하다. “자전거나 바이크를 타고 달리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가지 않던 길도 가고, 매일 보는 것도 새롭게 느껴진다.” 토미 킴은 어린 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 캐나다에 이민을 간 교포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이력에 대해 토미 킴은 “역이민을 온 것”이라 말한다. 그만큼 그에게 한국 생활은 물리적, 정서적으로 적응이 필요했을 것이다. “캐나다에서 생활할 때 카페에서 공부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카페가 내겐 쉼터와도 같다.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머문 동네는 빌딩 숲 같아서 너무 답답했다. 우연히 필동을 발견했고, 한적한 동네 분위기에 반해 오게 됐다. 셸터(shelter)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카페 운영으로 이어졌다.”





덕후의 아카이브,
유광진의 키덜트 룸







유광진에게 수집은 취미이자 자신의 역사를 담은 아카이브다. 유년기부터 소문난 덕후(?)였던 그가 30년 동안 수집한 컬렉션은 6평 남짓한 방 한 칸을 통째로 채우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로봇 만화, SF 영화 관련 피겨, 각종 게임기와 팩 그리고 포스터와 굿즈 등 삶의 추억을 품은 수백 점이 주문 제작한 수납장과 방 곳곳에 가득하다. “중학생 때부터 수집을 시작했다. 게임기나 로봇 피겨 같은 것인데,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관심사가 점점 넓어졌다. 자랑할 만한 컬렉션은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것을 모아놓은 창고 같은 곳이다.”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선수만 모인다는 키덜트 커뮤니티에서 닉네임 ‘광삼’으로 이름을 알린 컬렉터다. 가장 눈에 띄는 컬렉션은 13종류의 아이언맨 다이캐스트(Die Cast, 금속 정밀 주조 방식으로 제작한 모형). 2008년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작품 <아이언맨>을 본 뒤 금세 빠져들었다. 그러나 컬렉션의 시작은 훨씬 전부터다. 1980년대 당시 한국에선 희귀하던 ‘조이드’ 로봇 피겨부터 3세대 콘솔 게임기 ‘패미콤’, 아케이드용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의 고전 ‘골든액스’ 포스터까지 지금은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유물이 한 보따리다. 특히 국내 피겨메이커 블리츠웨이가 한정 출시한 ‘헌터스’ 시리즈는 현재 프리미엄이 붙어 출시 가격의 3~4배까지 거래되고 있다. 컬렉션의 값어치를 따지면 웬만한 수입 중형차 한 대값이다. 그러나 소장품의 가격엔 관심이 없다. 유광진에게 컬렉션은 팔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끔 제품을 팔라고 연락이 오는데 거절한다. 수집은 재테크를 위한 게 아니라 취미다. 이것으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컬렉션이 보다 풍성해지면 키덜트 전문 카페 같은 것을 열어 관심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1년 전부터는 주위의 권유로 키덜트 전문 유튜브를 시작했다. ID는 ‘DK 광삼’. 덕후를 뜻하는 DK와 자신의 어린 시절 별명인 광삼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유한 컬렉션이나 신규 키덜트 제품 소개, 게임 리뷰 같은 덕후들을 위한 방송을 한다.





오직 소리만을 위한 공간,
정종렬의 심학산 청음실











경기도 파주 심학산 산기슭과 맞닿은 2층 건물엔 오롯이 소리만을 위한 공간이 있다. 정종렬이 꾸린 ‘심학산 청음실’이다. 클래식부터 오페라, 록, 가요, 트로트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사랑하는 그는 행여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봐, 또는 온전히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따로 공간을 마련했다. 극성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청음실에 세팅한 장비 목록을 보면 수긍이 간다. 아이 키만 한 메인 스피커 한 쌍과 서브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최대출력은 눈앞에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처럼 바닥을 울린다. “처음에 얻은 청음 공간은 주택가였다. 방음 설비를 갖췄지만 이웃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더라. 자연경관이 좋고 인적이 뜸한 곳을 찾다 보니 이곳으로 오게 됐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관람하는 소소한 공간이다.” 소소하다 말하기에 정종렬의 취향은 본격적이다. 그가 선호하는 음색은 미국 오디오 브랜드의 또렷하면서도 호방한 사운드다. 현재 메인 스피커로 사용하는 제품도 미국 클립쉬(Klipsch)의 클립쉬혼(Klipschorn)으로 아날로그 오디오 시대를 풍미한 하이파이 스피커의 대명사다. 서브 스피커 역시 클립쉬의 헤레시(Heresy)를 쓴다. 오디오 세트 중앙엔 3개의 턴테이블이 놓여 있다. 턴테이블의 명기로 불리는 가라드 401(Garrard 401)과 린 손덱(LINN Sondek), 야마하 GT2000(Yamaha GT2000)이다. 모두 같은 턴테이블이지만 미세한 음역대와 감성이 갈려 장르별로 기계를 번갈아 사용한다. 이 외에도 창고(?) 안에는 사용하지 않는 고가 앰프와 스피커가 가득하다. 굳이 돈으로 환산하면 수도권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오디오 장비에 들어갔다. 정종렬은 섬세한 리스너이기도 하지만, 직접 앰프를 제작하는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오디오 세트 하단에 있는 삼극관과 오극관 진공관 앰프는 오디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여러 고수와 함께 제작했다. 기업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IT업체 대표가 어떻게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인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오래전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 라디오를 통해 팝이나 클래식을 시작으로 록이나 포크,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러다 보니 LP나 CD가 제법 모이더라. 결혼하고 나서는 오디오에 관심이 생겼다.” 현재 정종렬이 보유한 LP만 약 2000장, CD도 3000장 가까이 된다. 외장 하드에 보관 중인 무손실 음원 파일은 웬만한 방송국 수준을 상회한다. 그가 심학산에 청음실을 차린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좋은 사람들과 차 한잔, 와인 한잔 즐기며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다.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음악을 듣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행복하다. 이곳은 오다가다 편안하게 들러 머무는 곳이다.”

 

에디터 <노블레스 맨> 피처팀, 양보연(프리랜서)
사진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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