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정원에서 영감 찾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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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9

푸르른 정원에서 영감 찾기

푸르른 정원은 예술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왼쪽 모네의 ‘수련’ 연작 가운데 역대급 대작이라 꼽히는 ‘수련’은 현재 프랑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sophie boegly 사진 제공 오랑주리 미술관
오른쪽 프랜시스 버넷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정원을 통해 치유했다. <비밀의 화원>은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녹인 작품.

누군가 에디터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권하는 책이 있다. 프랜시스 버넷의 <비밀의 화원>. 세계 명작 전집을 통해 한 번쯤 읽어봤겠지만,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인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 소녀 메리 레녹스는 콜레라로 부모를 잃고 영국 요크셔 귀족인 고모부 크레이븐 경의 집으로 온다. 병약하고 제멋대로이던 메리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집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방치된 화원과 열쇠를 발견한다. 메리는 히스테릭한 사촌 콜린 크레이븐과 함께 ‘비밀의 화원’에 식물을 가꾸고 동물을 키우면서 점점 생명력 넘치는 곳으로 변화시킨다. 이 정원을 매개로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결말. 알다시피 영국은 ‘정원’의 나라로, 영국 사람들은 식물을 가꾸고 정원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영국 출신 작가는 대체로 자연과 정원을 묘사하는 데 남다른 소질을 보인다. 프랜시스 버넷 역시 두 번의 이혼과 첫아들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아 몸과 마음이 병들었는데, 오랫동안 버려진 정원을 손질하며 장미 화원을 조성하고 붉은가슴울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의 개인적 경험은 <비밀의 화원> 속 메리 레녹스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에디터는 <비밀의 화원>을 읽을 때마다 가본 적 없는 영국 요크셔의 정원을 상상한다. 그리고 버넷이 마음을 다해 가꾸고 사랑했을 정원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이렇듯 정원은 독자가 작가의 세계를 오롯이 이해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 역시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 독일과 스위스 접경 지대에 자리한 보덴 호수 인근의 가이엔호펜이라는 마을에는 그가 살던 주택과 정원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그는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와 화가, 디자이너의 정원에 대해 꼼꼼하게 파헤친 책 <예술가의 정원 이야기>에 따르면, 정원은 그에게 시끌벅적한 문명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장소이자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시대에 영혼이 평화를 찾는 곳이었다. 가이엔호펜의 정원은 헤세의 첫 번째 정원이다. 직접 밤나무 . 배나무를 심고 채소원과 장미원을 꾸몄으며, 수필 <정원 일의 즐거움>에서는 정원을 가꾸며 느낀 점을 써 내려갔다. 현재 복원한 이 정원은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둘러보며 헤르만 헤세처럼 마음의 휴식을 얻기도,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한다. 결국 식물을 가꾸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음을 역설한 헤세가 지구상에서 ‘한 조각 땅’을 책임지는 방법을 깨닫는 일은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그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음이 틀림없다.





위쪽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의 스튜디오가 있는 정원 전경.
아래쪽 2020년 블루메미술관에서 열린 <재료의 의지-정원에서의 대화>전에 출품한 김지수 작가의 ‘공중정원’.

그렇다면 이번엔 미술로 눈을 돌려보자. ‘정원’이라는 키워드를 보자마자 단번에 떠오르는 화가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인상주의 화풍의 대가 클로드 모네다. 현재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가로 22m 크기의 작품 ‘수련’은 그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수련’은 지베르니라는 작은 마을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모네는 1926년 8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43년간 이곳에서 지내며 정원과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500여 점을 그렸다. 1890년 이곳에 온 그는 이듬해 봄부터 과수원을 정원으로 가꿨고, 1897년에는 화실이 있는 2층 주택을 지은 뒤 주변의 목초지를 사들였다. 작은 수로와 연못을 만들어 매일 주변을 거닐며 ‘수련’ 연작 250여 점의 유산을 남겼다. 형상이 아닌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을 담는 인상주의를 이끌던 모네였기에 그가 자연과 정원에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하다. 시시각각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연구 주제였다.
또 한 명의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가 살던 프랑스 카뉴쉬르메르의 레 콜레트 집과 정원에는 현재 그의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르누아르의 작품에서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던 따뜻한 시선과 사랑, 즐거움,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50대 초반부터 류머티즘을 앓던 그는 따뜻한 프랑스 남부로 이사한다. 그는 레 콜레트라는 농원을 구입한 뒤 아내의 권유로 나무를 베지 않고 농원 한가운데에 집을 지었다. 그렇게 탄생한 농가에 르누아르는 이젤을 설치해 온종일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그는 ‘레 콜레트의 농가’, ‘레 콜레트의 정원’, ‘레 콜레트의 풍경’, ‘카뉴 레 콜레트의 농장’ 같은 작품으로 자신의 정원과 농가를 찬양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후세에 전해져 그가 느낀 자연 정취와 편안함을 엿보게 한다.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레 콜레트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레 콜레트의 농장’.

지금도 많은 작가가 정원에 관심을 보인다. 경기도 파주에 자리한 블루메미술관은 아예 미술이 바라보는 자연과 정원을 살펴보고, 작가들은 어떤 작업적 영감을 받는지 주목하며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2013년 개관한 이곳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아름드리 참나무를 베지 않고 감싸듯 지은 자연 친화적 미술관이다. 이곳에서는 주기적으로 ‘정원’에 관한 전시가 열린다. 그중 김지수 . 제닌기 . 최병석 작가가 참여한 2020년 전시 <재료의 의지-정원에서의 대화>전은 팬데믹 시대에 정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통 방식을 살펴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금 연결하는 자리로 마련했다. 세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돈독해지기 위해서는 재료(자연)와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능동적이며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를 정원에서 찾았다.
찬란한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인문주의자라 불리는 이탈리아 시인이자 정치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이렇게 말했다. “정원은 사색과 성찰, 시를 위한 가장 이상적 환경이다.” 그는 자신의 집에 정원을 만들어 정원론을 실천했다. 신을 중심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페트라르카는 정원을 통해 ‘인간’이 창조하고 관여할 수 있는 자연이자 이상적 환경에 대한 담론을 제기했다. 앞서 말한 작가 외에도 제인 오스틴, 애거사 크리스티,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이 자신의 정원에서 안식과 작품의 실마리를 찾았고 세잔, 고흐, 샤갈 같은 화가들도 작업의 원천으로 정원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자연에 주목했다. 앞으로 이들의 작품을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자신만의 언어로 이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살펴보자.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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