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장인이 만들어낸 맑은 바람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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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9

부채 장인이 만들어낸 맑은 바람

마크 테토가 합죽선의 역사를 찾아 전주로 향했다. 65년째 수공예로 부채를 만드는 김동식 선자장과 김대성 계승자를 만났다.

마크 테토와 이야기를 나누는 김동식 선자장과 김대성 계승자.

대나무 껍질을 얇게 깎아 부챗살을 만들고 종이를 붙인 합죽선은 과거 사대부만 소장할 수 있는 귀한 부채였다. 부챗살 개수로 신분을 가늠하기도 했다. 조선 전라 감영에서는 선자청이라는 관청을 두어 합죽선을 만든 뒤 임금에게 진상했다. 선풍기, 에어컨 같은 강력한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 전통 부채의 가치가 퇴색한 지금, 고집스럽게 전통을 잇고 있는 선자장의 우직한 집념은 우리의 감흥을 일깨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김동식 선자장과 5대를 잇는 김대성 계승자.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The Balvenie Makers Campaign)’ 진행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마크 테토가 고집과 땀으로 합죽선을 완성하는 두 사람을 만났다.

마크 테토 선생님을 만나뵙기 전에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고귀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어떤 계기로 합죽선과 인연을 맺으셨나요?
김동식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당시 외갓집은 부유한 편이라 삼시 세끼를 해결하기 위해 외가에 들어가 합죽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외할아버지(고 라학천)가 고종황제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만큼 기술이 뛰어난 선자장이었거든요. 열네 살 때니까 벌써 65년이 흘렀네요.
마크 테토 그 시절에는 부채 만드는 장인이 많았나요?
김동식 1960~1970년대만 해도 부채 만드는 사람이 많았죠. 선풍기,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라 부채가 생활 필수품이었어요. 문명이 발달하면서 부채도, 장인도 자연스럽게 밀려난 거죠.
마크 테토 부채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김동식 예전에는 부채 만드는 일이 부업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농사짓고 농한기인 겨울에 부채를 만들었죠. 그래서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며 형편이 어려워졌어요. 부채 만드는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는데, 친구가 당시 돈으로 400만 원을 빌려주며 “왜 좋은 기술을 버리려 하느냐, 계속하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 덕에 부채의 맥을 다시 잇게 된 셈이죠.
마크 테토 힘든 시기지만 포기할 수 없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
김동식 제가 아니면 전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러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어요. 2005년에는 지방문화재로, 2015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았으니까요.





왼쪽 합죽선의 형태를 만들고 있는 김동식 선자장.
오른쪽 130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수작업 방식을 고수해 만드는 발베니 30년과 합죽선.

마크 테토 집안 대대로 합죽선의 맥을 이어온 명가로 알고 있어요.
김동식 외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물림한 가업으로 제가 4대째고, 아들이 5대를 잇고 있습니다.
마크 테토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계신데,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김동식 좋은 재료에 대한 고집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보통 시중에서 판매하는 대나무는 5~6년 혹은 그 이상의 다년생이 많아요. 그런 대나무로 부채를 만들 수 없습니다. 너무 뻣뻣해 일하기도 힘들뿐더러 색깔도 예쁘지 않거든요. 우리는 2~3년 정도 된 대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래야 합죽선이 오래가요. 부챗살을 깎는 기술도 중요합니다. 부챗살을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부채 모양이 좌우되거든요.
마크 테토 원래는 부채를 만들 때 여러 명이 분업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혼자 다 하신다고요.
김동식 합죽선 제작 과정은 2부(골선부·수장부) 6방(합죽방·정련방·낙죽방·광방·도배방·사북방)으로 나뉩니다. 부채의 골격을 만드는 골선부는 대나무를 자르고 쪼개 부챗살을 깎는 합죽방과 부채 형태를 만드는 정련방으로 구성되고요. 수장부는 인두로 문양을 그려 넣는 낙죽방, 모양을 곱게 다듬는 광방, 부챗살에 종이를 오려 붙이는 도배방, 부채 머리를 장식으로 고정하는 사북방으로 이뤄져요. 예전에는 이렇게 여섯 사람이 분업해 부채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생활고로 그만두기도 하고 돌아가신 분도 계시죠. 같이 작업할 때는 800개 정도 만들었다면 지금은 많아야 1년에 250개 정도밖에 못 만들어요.
마크 테토 부채 한 개를 만들려면 시간이 대략 얼마나 걸리나요?
김동식 시간으로 따지기 힘들어요. 최소 150번은 손이 가야 하나의 부채가 완성되거든요. 끈기와 인내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죠. 일본, 중국의 부채 기술자들이 합죽선을 배우겠다고 방문한 적이 있는데, 쉽게 따라 할 일이 아니라며 그냥 돌아갔어요. 합죽선은 세계적으로 전주에서만 몇 분이 작업하고 계십니다. 힘들지만 그만큼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해요.
마크 테토 전통 합죽선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요?
김동식 현대의 부채가 화려하다면 합죽선은 절제된 멋이 있고, 선이 매우 아름답죠. 대나무로 만들어 손에 착 감기는 맛도 있고요. 접었다 펼칠 때 나는 소리도 다릅니다. 소리꾼들이 부채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접었다 펼치는 부채 소리가 장단이 된다고 해요. 바람도 다릅니다. 대나무와 종이가 만나 맑은 바람을 만드니 더욱 시원하죠. 합죽선은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지만, 역사와 혼이 깃든 아름다운 공예 작품이라는 것을 많은 이에게 알리는 것이 제 일인 것 같습니다. 마크 테토 아드님인 김대성 계승자는 합죽선을 만든 지 얼마나 되었나요?
김대성 가업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일을 조금씩 도왔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버지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된 2015년부터예요. 사실 어릴 때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누군가 해야 하는데 달리 할 사람도 없잖아요.(웃음) 내 몫이다 싶었죠.
마크 테토 스승인 아버지가 특별히 강조한 부분이 있을까요?
김대성 늘 정직하게 하라고 말씀하시죠. 전통은 결국 속이지 않는 정직한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재료를 거르고, 잘못된 것은 다시 고치고요. 잘못된 공정 하나라도 그냥 넘어가면 좋은 부채가 나올 수 없거든요.
마크 테토 부채의 대중화나 새로운 쓸모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나요?
김대성 처음에는 다르게 해보자 싶어 형태를 비롯해 이런저런 시도를 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본질로 돌아올 때 가장 예쁘더라고요. 새로운 변화보다는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생각이에요. 합죽선은 아버지의 희로애락이 담긴 작품입니다. 아버지의 인생이자 앞으로 제가 써 내려가야 할 인생이죠.
마크 테토 합죽선처럼 발베니 역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130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수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그래서 두 분의 이야기가 더욱 공감됩니다. 두 분에게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요?
김동식 장인은 헛된 생각을 하면 안 돼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장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부채였고요. 저는 고집도 있고 오기도 있습니다. 한번 밀어붙이면 끝을 내야 합니다. 장인정신은 결국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정신인 거죠.
김대성 아버지가 늘 정직과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것처럼 저 역시 그대로 따르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것이 장인정신의 근간이자 본질인 것 같습니다.

 

에디터 설미현(프리랜서)
사진 김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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