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에 어울리는 향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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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5

독서의 계절에 어울리는 향수

시각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9개의 향수를 소개한다.

흙 내음을 품은 스모키한 베티베르가 자연의 신비와 따뜻함을 드러낸다. 레 조 드 샤넬 파리-에든버러 Chanel.

무한한 녹색 향
봄에 움트는 새순의 여린 향과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가득한 여름 숲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마른나무 밑동의 가을 향이 차례대로 코끝을 스친다. 후각이 감지하는 계절의 풍성한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메마른 가운데 미지의 광대함이 펼쳐진 사막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사막은 무(無)의 공간 같지만, 여느 대지와 마찬가지로 늘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갈증을 품고 있으니까. 이정진 작가의 [Desert]에는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약 5년간 그가 촬영한 미국 남서부의 사막이 담겼다. 바위 표면과 거대한 돌, 동굴과 절벽에 새겨진 층서 이미지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막 곳곳의 세세한 모습을 보여준다. 형태와 질감을 더욱 과감하고 강렬하게 드러내는 흑백 이미지로 표현했는데, 그 안에서 발현되는 섬세함이 무척 아름답다. 레 조 드 샤넬 파리-에든버러의 중성적 이미지와도 중첩되는 지점이다. _ 아트 북 큐레이터 현가비, 더레퍼런스





강렬한 포멜로를 시작으로 블랙 페퍼와 팔로 산토, 베티베르가 유혹적 하트 노트를 완성하는 오픈 스카이 Byredo.

긍정이라는 메시지
자유와 낭만, 탁 트인 대자연의 공기를 표현한 바이레도의 오픈 스카이. 언제나 남과 다른 관점을 향으로 표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벤 고헴의 시선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지금, 낙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해 형이상학적 경의를 표하는 향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에릭 매디건 헥(Erik Madigan Heck)의 사진집 [The Garden] 역시 세계 곳곳을 오가며 작업하던 작가가 팬데믹 때문에 미국 코네티컷주 록스버리에 위치한 집에 머물며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담은 사진집이다. 작가는 “어느 여름날, 우리 가족은 일상에서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는 아내 브리아나와 아이들을 모델로, 그리고 집 근처 자연을 배경으로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꿈을 꾸는 듯한 색채의 향연을 표현했다. _ 김진영 대표, 이라선





네롤리꽃 향을 베이스로 피렌체 지방의 리모네 체드라토 과일 향을 블렌딩한 알케미스트 가든 1921 오 드 퍼퓸 Gucci.

빛나는 기억
늦은 오후, 따뜻하게 데워진 모래사장 옆 선베드에 누워 오렌지 향과 지중해 바다 내음 섞인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레모네이드 한 잔 마시는 여름휴가의 한 장면.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던 그곳에 언제쯤 다시 가게 될까? 사진작가 쓰카오(Tsukao)는 팬데믹으로 잃어버린 찬란한 순간을 사진을 통해 잠시나마 돌려주고자 한다. 일상을 침범하는 우울한 소식에서 벗어나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서 마주한 빛나는 풍경으로 가득한 사진집 [ALL L/Right]는 구찌 하우스의 지난 모든 아름다운 기억을 오롯이 담고자 한 ‘알케미스트 가든 1921’과 중첩되며 희망과 긍정이라는 위로를 전한다. _ 차윤주 대표, 사진책방 고래





시더우드의 깊은 우디 향과 통카빈의 따스함이 어우러진 오르페옹 오 드 퍼퓸 Diptyque.

낭만의 시절에 대하여
양복을 맵시 나게 차려입고 중절모를 쓴 신사와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한 원피스를 입고 양산을 쓴 숙녀. 외국 영화에 나올 법한 신사 숙녀가 서울의 거리를 걷는 모습이란! 이제는 흑백사진 속 아련한 풍경으로 남은 이 장면은 사진가 한영수가 포착한 옛 서울의 모습이다. 향수가 어떤 특정 장소나 시절에 대한 후각적 기억에 대한 표현이라면, 딥티크의 오르페옹 오드 퍼퓸에서 전해지는 옛 파리의 멋진 시절에 대한 동경과 향수는 내게 모던한 정취와 낭만이 서린 옛 서울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한국전쟁 이후 암울함에 매몰되지 않고 아무도 보려 하거나 시도하지 않던 것을 찾고자 한 한영수의 뷰파인더에 담긴 [Seoul, Modern Times]로 서울의 낭만을 기억하며! _ 차윤주 대표, 사진책방 고래





갈바눔과 아이리스 유자를 베이스로 흙 내음이 나는 시트러스가 밝은 기운을 선사한다. 에레미아 Ae-sop.

도심과 자연의 공존
이솝의 에레미아에서 느껴지는 플로럴 향과 흙 내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각자의 집처럼 아주 익숙하고 오래된 공간에 들어선 듯한 느낌. 이는 도미니크 나보코브(Dominique Nabokov)의 [New York Living Rooms] 속 사진을 마주했을 때 책에 대한 인상과 많이 닮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거실을 찍어온 작가는 거실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뭔가를 더하거나 변경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태를 담고자 했는데, 자신의 사진을 ‘인테리어 초상 사진’이라 명명하기도. 강한 조명을 쓰지 않고 폴라로이드로만 촬영한 사진 속 거실은 이처럼 편안한 향이 머물던 공간이 아니었을까. _ 김진영 대표, 이라선





핑크 페퍼와 럼, 토바코잎의 향이 어우러지며 오랜 시간 녹진하고 따스한 잔향을 남기는 재즈 클럽 Maison Margiela.

주인공이 되는 순간
여러 인물의 모습을 담은 류 이카(Ryu Ika)의 사진집 [The Second Seeing] 표지는 은빛을 띤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이 무대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처럼 인물을 조명한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재즈 클럽을 맡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배경은 몸이 움츠러드는 추운 겨울. 근사한 코트를 걸친 남성이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맡은 첫 향 느낌이랄까. 원목 가구가 머금은 축적된 시간의 향과 글라스에 채워진 위스키 향의 조화 그리고 공간을 채운 재즈 음악과 사람들의 잔잔한 웃음소리, 유리잔에 부딪히는 얼음 조각 소리는 또 다른 음악을 만들어낼 테다. 도수 높은 술을 들이켜며 언 몸을 녹이고 공간과 음악에 동화되는 순간 그곳의 스포트라이트는 그에게 향할 것이다. _ 아트 북 큐레이터 현가비, 더레퍼런스





크리스챤 디올이 즐겨 먹던 페이스트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닐라의 풍부함을 감싸는 코코아와 오렌지 슬라이스가 조화로운 바닐라 디올라마 La Collection Privee.

가장 따뜻한 색, 바닐라
바닐라의 달콤한 향과 함께 상큼한 오렌지 향이 살짝 느껴지는 바닐라 디올라마는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평온함을 떠올리게 하며, 디에나 다이크먼(Deanna Dikeman)의 [Leaving and Waving]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27년간 자신을 배웅해주는 부모님의 모습을 담아 사진집을 만들었다. 부모님의 집에 들를 때마다 그는 아마도 잠시나마 현실의 걱정과 고민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책 중간에는 작가의 엄마가 입고 있던 옷 색을 반영한 네 가지 색 내지를 삽입했는데, 그 가운에 화사하고 따뜻한 바닐라 색지가 있다. 바닐라 향은 왠지 상대를 반겨주고 품어주는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_ 김진영 대표, 이라선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의 안개 낀 숲에서 영감을 받은 퍼퓸 드 샹테카이 오드 퓌메 Chantecaille.

트로피컬 모더니즘의 접점
스모키한 나무와 제라늄, 일랑일랑, 파촐리, 시더우드, 시스테 앱솔루트가 지극히 남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오드 퓌메에서 트로피컬 모더니즘이라는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21세기 들어 다시금 조명받는 스리랑카 건축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가 떠올랐다. 그는 변호사로 일하다 뒤늦게 건축에 입문했지만, 서구의 모더니즘에 지역 고유의 재료와 토착 양식을 더하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건축에 수용하는 혁신적 접근으로 스리랑카의 대표 건축가로 명성을 얻었다. [Mr. Bawa I Presume]은 이탈리아 사진작가 조반나 실바(Giovanna Silva)가 제프리 바와의 생애를 바탕으로 꾸민 픽션과 그의 대표작을 사진으로 기록해 엮은 아름다운 책이다. 모던한 북 커버 속 이국적 건축양식이 담긴 책과 직선적 보틀의 명료함에 담긴 이국적 향기가 몹시 닮았다. _ 조완 대표, 포스트포에틱스





베르가모트와 레몬 오일의 신선한 톱 노트를 시작으로 진한 소나무 향이 따스한 잔향을 남긴다. 버닝 바버샵 D.S & Durga.

직관적 시선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을 대표하는 포토그래퍼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 1977년 그는 미국 뉴욕과 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 일대를 여행하며 제조업의 몰락으로 많은 실업자를 양산한 뒤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지역의 우울한 풍경을 특유의 컬러 사진으로 담았다. 1891년, 뉴욕의 한 이발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타버린 셰이빙 토닉의 향기에서 영감을 얻은 버닝 바버샵은 직관적 이름에 걸맞는 독특하고 남성적인 향을 느낄 수 있다. 폐쇄된 공장과 인적이 끊긴 적막한 거리, 허무한 표정의 사람들, 쓸쓸한 술집 풍경 등을 담은 사진집 [Steel Town]이 떠오르는 향기다. _ 조완 대표, 포스트포에틱스

 

에디터 <노블레스 맨> 편집부
어시스턴트 박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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