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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5

요즘 시대, 요즘 컬렉팅

미술 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새로운 형태의 미술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요즘, 컬렉팅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바나나, 스카치테이프, 2019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작품 수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탈리아의 명가 메디치(Medici)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15세기 피렌체를 기반으로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은 상속과 구매를 통해 막대한 미술품 컬렉션을 보유하기 이르렀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과 그곳에 소장된 작품 역시 메디치 가문에서 출발했다. 이는 요한 조파니(Johann Zoffany)의 그림 ‘우피치의 트리뷰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최고 걸작만 모인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도대체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뭐냐고? 조파니의 작품을 한번 살펴보자. 과거 ‘수집’이라고 하면 회화나 조각, 태피스트리, 주얼리, 오브제같이 물리적 형상이 있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물체 위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수집 형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뉴미디어, 디지털 아트처럼 이전과 다른 형태의 장르가 등장해도 미술 시장에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회화와 조각 작품이다. 예술은 르네상스 이후 종교화에서 벗어나 점차 무엇을 만드는 행위보다 예술가의 사유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뒤샹으로 대변되는 다다이즘, 도널드 저드가 이끈 미니멀리즘, 요셉 보이스와 솔 르윗, 제니 홀저 등 현재까지도 그 계보를 이어오고 있는 개념 미술 등 다양한 미술 사조를 통해 발현되었다. 이제 작품은 형태도, 미감도 작가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렇게 예술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지금, 회화와 조각 컬렉팅에만 집중했던 눈을 돌려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은 어떻게 거래가 이뤄지는지, 또 이 시대 컬렉팅의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왼쪽 백현진의 ‘생분해 가능한 것 21-04’는 모두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재료로 만든 회화 작품이다.
오른쪽 코디 최가 선보인 데이터베이스 작품은 PKM 갤러리에서 열린 <1999 코디 최 +NFT>전에 소개됐다.

2019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 바젤에 참여한 페로탱 갤러리에서 소개한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 ‘코미디언’이 그 겨울 미술계를 뜨겁게 달궜다. 작가는 부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흰색 벽에 바나나 하나를 회색 덕트 테이프로 붙였다. 그간 아트 페어 같은 곳에서 쉽사리 볼 수 없던 카텔란의 작품이라는 점과 관점에 따라 저속한 ‘농담’처럼 보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과연 ‘이게 미술이냐, 아니냐’를 놓고 미술계 안팎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열띤 토론에 불을 지핀 데는 작품의 가격 또한 한몫했다. 한화 약 1억5000만 원에 팔렸기 때문이다. 이를 소장한다는 얘기는 ‘바나나’ 자체가 아닌 14페이지에 달하는 작품 설치에 관한 세심한 지시 사항과 함께 정품 보증서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텔란은 이 작업을 통해 예술적 가치가 없는 물체에 작가의 사유를 담으면 예술 작품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이후 행위 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는 그때 처음으로 사용한 바나나를 맛있게 먹어버리는 ‘예고되지 않은’ 퍼포먼스를 펼쳐 더욱더 관심을 불러 모았다. 페로탱 갤러리와 작가는 ‘코미디언’이란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설치 관련 지시 사항과 작품 보증서이기 때문에 먹어치운 바나나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이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바나나’가 아닌, 이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개념’을 구입한 것이다. 회화와 조각 작품이 즐비한 아트 페어에서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또 거대한 미술 시장에서 예술을 구매하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거리를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다.
요즘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화되어 꼭 전시장과 같은 오프라인 공간이 아닌 곳에서도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다. 결국 온라인에서 태어나 네트워크상에서 감상 가능하며, 종국에는 이곳에서 유통되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마련된 셈이다. 그중에서도 NFT(Non-Fungible Token) 아트가 대표적인데, 세계적 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처음 NFT 예술을 유통한 이후 너도나도 작가들의 작업을 디지털화해 판매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코디 최 작가는 1999년부터 디지털에서 만든 진짜 ‘디지털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왔다고 한다. 시기가 맞아떨어져 2021년에 ‘NFT 아트’라는 이름으로 데이터베이스의 축적과 확장, 중첩을 통해 작업한 회화 작품 ‘1999 Database Painting Series 1’, ‘Blue Cat #00’, ‘Animal Totem/Death Cult 0496’ 등 여섯 점의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NFT 덕분에 ‘원본성과 진본성’이 결여되어 있는 기존 디지털 아트의 위험성에서 벗어나며 발터 베냐민이 말한 예술 작품의 ‘지위’와 ‘오라’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NFT 예술을 컬렉팅한다는 것은 물질적 형태를 갖춘 예술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누구라도 볼 수 있게 작품이 공개되었다 하더라도 그 작품의 원본과 소유권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서를 갖는다. 결국 이 또한 우리가 익숙하게 해오던 작품 컬렉팅과는 다른 형태임을 확인한다.





우리는 요한 조파니의 ‘우피치 트리뷰나’에서 고전적 작품 수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PKM 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말보다는>에서 생분해 가능한 천연 재료로만 작업한 회화 작품을 선보인 백현진. 회화, 퍼포먼스, 연기, 음악 등 예술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작업 영역으로 확장한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과 컬렉터에게 아주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썩어 없어질 작품인데, 과연 누가 구매할까요? 또 작품 컬렉팅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유화물감으로 그린 회화 작품은 영원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본 작가는 자연의 일부인 ‘내’가 과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듯한 작품을 계속 만들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캔버스부터 안료, 틀 등 작품에 사용한 모든 재료가 모두 분해되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백현진은 “쿨한 수집가가 ‘이 작가 꽤 웃기네’ 하고 작품을 충분히 감상한 후 뒷동산에 그냥 던져 자연으로 돌려보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술 작품에 얽힌 한 가지 최근 이슈를 조금은 불편하게 짚어낸다. 바로 작품을 ‘재물’로, ‘투자 수단’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故 이건희 회장처럼 자신이 모은 예술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 컬렉터는 대부분 이를 자식에게 상속하거나 2차 시장에서 되팔아 차익을 실현하는 일도 부지기수이기 때문. 과연 영원히 지속할 무엇으로 작품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예술 자체에 매력을 느껴 이에 대해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는 것이 맞는지, 백현진 작가는 작품을 소유하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이 모든 이야기를 종합했을 때, 우리는 예술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다. 과거 수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메디치 가문의 예술품 수집은 예술가에 대한 직접적 후원의 연장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술가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이후 그 작품을 소중히 자신의 수장고에 보관하고 보존함으로써 후대에까지 그 위대함을 알리는 것. 이제 작품 형태가 다양해진 만큼 컬렉팅 형태도 다양해지고, 그 안에 담기는 의미 역시 이에 맞게 변화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의 ‘기호’가 사회 모든 면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이니, 컬렉팅을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랑의 표현’과 ‘지원’이라고 생각하면 작가와 컬렉터 사이에 더 끈끈하고 건강한 유대감이 형성될 것이라 믿는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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