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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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9

찬란한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1에서 홈 컬렉션을 선보인 에르메스의 완벽한 오브제 이야기.

위쪽 스튜디오 뭄바이의 암체어, ‘시아주 데르메스’. 아래쪽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체어.

디지털 런웨이로 대신하던 패션쇼를 예전처럼 오프라인으로 기획하는가 하면, 잠시 멈춘 각종 전시나 박람회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유럽 국가들. 여러 의미에서 특별했던 지난해를 거쳐 올 하반기부터 완연한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자유로운 분위기를 타고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테마의 전시가 펼쳐지는 ‘푸오리살로네(Fuori salone)’를 포함해 도시 전체를 디자인 갤러리로 변신시킨 밀라노 디자인 위크 역시 17개월의 공백을 거쳐 본고장에 돌아왔다. 매년 이벤트가 진행되던 4월이 아닌 9월에 열린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해외 방문객 수가 예년보다 적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졌다. 새롭게 시작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도약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2011년부터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가해온 에르메스는 2019년에 이어 올해에도 밀라노 시내의 ‘브레라 디자인 디스트릭트(Brera Design District)’에 자리한 ‘라 펠로타(La Pelota)’에 둥지를 틀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전통 스포츠 ‘펠로타’ 경기장을 개조한 전시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 또 다른 클래식한 스포츠 승마와의 인연에서 시작된 에르메스 메종에 더없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더구나 대형 모놀리스(monolith)가 연상되는 벽으로 나누어 5개 섹션으로 꾸민 2000m²에 달하는 내부는 어떤 전시 공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광경이었다. 족히 2층 건물 크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블록이 발산하는 압도적 존재감은 컬러풀한 그래픽 라인이 연출하는 우아한 유쾌함과 어우러져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2014년부터 큐레이터 출신 알렉시 파브리(Alexis Fabry)와 함께 에르메스 메종(홈 유니버스)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동하는 샤를로트 마코 페렐만(Charlotte Macaux Perelman)이 건축가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완성한 이 특별한 시노그래피에는 재질과 촉감 그리고 장인정신에 주목한 이번 컬렉션을 함축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거대한 벽면 외부는 석회암의 일종인 거친 질감의 라임(lime) 소재로 볼륨감 있는 텍스처로 마감했고, 스칼라극장 장인들이 3주 동안 직접 그린 컬러풀한 모티브는 공백기를 거쳐 밀라노에 돌아온 에르메스 메종의 설렘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시노그래피만으로도 ‘역시 에르메스’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이 공간에서 만난 오브제는 비대면 시대를 거친 현대인에게 메종이 건네는 일종의 ‘위안’으로 느껴졌다. 나무, 스톤, 가죽, 캐시미어 같은 천연 소재뿐 아니라 마이크로파이버를 함유한 혁신적 소재는 에르메스가 엄선한 장인의 섬세한 손놀림을 통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촉감이 부드러운, 지극히 현실적인 완벽한 오브제로 태어났으니 말이다.





구리 시트에 에나멜을 입혀 H 로고를 완성한 센터피스 시알크 컬렉션.





크로마틱 바스켓. ⓒ marvin leuvrey





위쪽 파크 보틀 바스켓. ⓒ marvin leuvrey 아래쪽 래커 핸드 페인트 박스. ⓒ marvin leuvrey





히포모빌 (Hippomobile)디저트 플레이트. ⓒ marvin leuvrey

이번 컬렉션의 마스터피스는 단연 스튜디오 뭄바이(Studio Mumbai)와 협업한 ‘시아주 데르메스(Sillage d’Hermes)’. ‘배가 지나간 물 위에 남은 흔적(sillage)’을 의미하는 시적인 이름을 지닌 이 널찍한 암체어는 나무 재질의 구조를 바탕으로 그 위에 셀룰로스 마이크로파이버를 포함한 파피에 마셰(Papier mache, 종이 같은 재질에 풀을 섞어 만든 공예용 반죽) 코팅을 입힌 다음 촘촘한 라인 모티브를 핸드 페인팅으로 하나하나 그린 작품이다. 텍스처가 살아 있는 유기적 라인으로 재해석한 투박함 속에 새로운 소재와 장인정신을 결합한 이 놀라운 피스 외에도 스튜디오 뭄바이와 에르메스는 스톤 테이블 ‘리냐주 데르메스(Lignage d’Hermes)’도 함께 소개했다. 천연 자재와 사람의 만남을 상징하는, 블루 스톤 위에 석공 장인이 빗살처럼 그려낸 섬세한 라인이 일종의 경건함마저 느끼게 했다면, 텍스타일 피스는 두 가지 상반된 시선을 제안했다. 핸드 타이드 캐시미어 ‘H 다이드’ 플래드 컬렉션은 메종 특유의 우아한 컬러 조합 노하우를 엿보게 했고, 금색 실만으로 심플한 그래픽 패턴을 재현한 캐시미어 펠트 플래드와 매사추세츠 출신 퀼트 장인이 제작한 퀼트 베드 커버는 화이트 캐시미어 자체의 소재와 미감을 담백하게 강조했다.

고대 시대부터 사용해온 오랜 기술을 에르메스가 역사 속에서 다시 꺼낸 점도 이번 컬렉션에서 주목할 만하다. 에나멜을 고온에서 단시간에 구워 구리 시트에 입히는 ‘에나멜 구리’ 기법을 이용해 베니스의 유리공예 장인이 완성한 H 모티브는 ‘시알크(Sialk)’ 라인을 통해 선명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6개의 센터 피스로 태어났다. 또 메종의 아카이브에서 찾은 말 모티브를 위트 있게 재해석해 믹스 매치를 즐길 수 있도록 한 티타임 테이블웨어 세트, 프랑스 장인들이 완성한 보틀 바스켓과 선명하게 염색한 송아지 가죽을 더한 고리버들 바스켓, 테이블 램프 ‘사라진(Sarazine)’과 래커 핸드 페인트 박스를 함께 소개했다.

“완벽함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고 말한 생텍쥐페리의 명언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좋겠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난 에르메스의 새로운 홈 컬렉션은 지나친 화려함이나 불필요한 라인 없이 그저 고급스러운 소재와 그를 다듬는 장인의 섬세한 손길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완벽한 미감을 완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니. 간결함 속에 완벽함을 담아내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엄청난 내공이 요구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에르메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어려운 작업을 이토록 우아하게 표현한 유일한 메종이기 때문이다.





H 다이드 플래드 컬렉션 캐시미어 블랭킷.





샤를로트 마코 페렐만(왼쪽)과 알렉시 파브리. ⓒ Sylvie Becquet

 Exclusive Interview 

Noblesse(이하 N) 코로나19 시대에 밀라노 페어에 참가한 소감은?
샤를로트 마코 페렐만(Charlotte Macaux Perelman, 이하 CMP) 코로나19 시대에도 우리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사유에서 출발한 결과물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함께 나누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다.

N 이 놀라운 시노그래피를 제작한 배경이 궁금하다.
CMP
거친 텍스처의 벽면을 제작한 후 그 위에 에르메스 컬렉션에 담긴 그래픽 드로잉을 손으로 완성했다. 플래드나 플레이트에 담긴 메종의 모티브를 건축학적 크기로 확대해 완성한 이번 작업은 오브제의 스케일과 볼륨을 중요시하는 에르메스의 철학과 맞아떨어진다. 알렉시 파브리(Alexis Fabry, 이하 AF)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전시 공간이라는 일종의 ‘포장’이 ‘내용물’ 즉 컬렉션을 이룬 아이템을 빛나게 하는 역할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N 매년 새로운 디자인팀과 새로운 오브제를 선보이는데, 이번 컬렉션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진행했나?
CMP 에나멜 처리된 구리, 셀룰로스 마이크로파이버 같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재질과 장인의 섬세한 손놀림이 만나 연출한, 부드럽고 관능적인 촉감. 이 매력적인 콘트라스트와 소재 그 자체에 집중했다. AF 이는 에르메스 메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에르메스는 가죽 등의 최고급 천연 소재를 가장 내추럴한 방식으로 접근해왔다.

N 스튜디오 뭄바이와 컬래버레이션한 계기는?
CMP
나는 언제나 비조이 자인(Bijoy Jain)의 작업을 좋아했다. 그는 심플하고 거친 소재와 장인정신을 절묘하게 활용하면서도 모던한 결과물을 완성해내는 건축가다. 소재 그리고 장인과의 협업을 중요시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은 에르메스와 많이 닮았다.

N 스튜디오 뭄바이와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공통점이 있다면?
AF
우리와 함께 협업한 또 다른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이 기획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작가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스마트하게 디자인된 채망이나 삽 같은 일상의 오브제에 주목한 전시 <슈퍼 노멀(Super Normal)>이 생각난다. 비조이 자인의 디자인 철학도 비슷한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역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를 컨템퍼러리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니까. 에르메스 메종의 헤리티지를 포함해 기존 사물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점이 비슷하다.

N 스튜디오 뭄바이와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나?
CMP
비조이 자인을 파리에서 만났고, 짧은 대화 끝에 ‘시아주 데르메스’ 암체어의 소재가 된 파피에 마셰를 활용해 작업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1년 후 우리가 인도에 갔을 때 그는 이미 완벽한 상태의 암체어 프로토타입을 석고로 완성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 일이다. AF 이후에는 이 제품을 가장 에르메스답게 만드는 작업이 이어졌다. 견고함, 촉감 같은 것을 완성하는 과정 말이다. CMP 에르메스 오브제는 일상에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시아주 데르메스에 캐시미어 쿠션을 더해 편안함을 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N 이번 컬렉션을 포함해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오브제는 어떤 것인가?
AF 크기, 비율, 균형, 섬세한 콘트라스트 등 모든 것이 ‘딱 적당하다’는 느낌을 주는 오브제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딱 적당하다는 표현은 다소 주관적 개념이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에르메스의 헤리티지까지 포괄한 ‘적당함’이다. 지난 시즌에 함께 작업한 스페인 디자이너 토마스 알론소(Tomas Alonso)가 에르메스의 오브제 앞에서 내린 겸손한 정의가 말 그대로 딱 적당하다. 그저 아주, 잘 만들어진 오브제.





Zoom in Studio Mumbai
샌프란시스코와 런던을 거쳐 1995년 자국 인도에서 스튜디오 뭄바이를 설립한 비조이 자인. 파리 퐁피두센터와 샌프란시스코 모마(MoMA)를 포함한 전 세계 모던아트 뮤지엄에 영구 소장된 그의 작품은 예술과 건축, 재료의 경계를 탐구한다. 이번 에르메스와의 협업에 대해 “상호 교환으로 사고, 아이디어, 윤리 그리고 제작 능력을 전달하는 경계를 넘나든 작업”이었다고 회상한 그는 “특정한 시간에 순간적으로 만들었다”는 소재를 활용해 이번 홈 컬렉션의 마스터피스 시아주 데르메스 암체어를 완성했다. 작품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인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비조이 자인의 설명은 혁신적 소재와 장인정신 그리고 유기적 디자인을 절묘하게 결합한 이 암체어만큼 매력적으로 들렸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현지 취재 배우리(파리 통신원)
사진 제공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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