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그렇게 게임이 된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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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9

영화는 그렇게 게임이 된다

5인의 게임 관련 종사자들이 상상한 영화 기반 게임.

현실과 메타버스를 이어줄 매개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2018)은 불과 3년 전에 개봉한 영화다. 감독은 마치 게임처럼 구현한 가상현실 오아시스(Oasis)를 배경으로 영화 속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게임 속 성공이 현실에서 성공으로 이어지는 궁극의 메타버스(metaverse)를 그려냈다.
공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일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를 합친 것 같은 사람이 현시대에 갑자기 나타나 오아시스를 게임으로 만들어내는 상상을 해본다. 오아시스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인 동시에, 증권시장에 상장한 주식회사이기도 하다.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게임은 한 명의 최종 우승자가 정해지면 한 시즌을 마감하는 시즌제로 운영된다. 우승자는 보상으로 기업의 지분 일부를 받은 뒤 다음 시즌을 기획하고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 스필버그가 1980년대 대중문화를 그려 넣었듯, 우승자는 메타버스라는 무한한 가능성과 시공간을 자신의 유토피아로 그려낼 수 있다. 동시에 회사의 성장과 주식 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게임 장르만큼이나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어떤 방법이든, 어떤 이유든 게임은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이 현실에 좀 더 자연스럽고 이질감 없이 스며들면 게임은 긍정적 문화이자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메타버스는 그런 점을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이자 도구다.
현재의 IT 기술은 메타버스의 기능적 부분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기술의 성숙도가 높지 않아 충분한 성능 즉 만족할 만한 경험을 주지 못하지만,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거부감 없이 메타버스와 현실을 이을 수 있는 해법은 여전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듯하다. 게임은 그러한 필요성을 메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자 솔루션이 될 수 있다. _ 이홍철(게임 개발자)





욕망과 이상 사이의 타임 어택
영화 <박쥐>

피는 생명을 상징하지만, 인간이 다른 이의 피를 빠는 흡혈은 악행으로 분류된다. 박찬욱의 영화 <박쥐>(2009)는 성직자인 주인공이 겪는 욕망과 이상 사이의 갈등을 불륜과 흡혈귀라는 두 가지 테마로 엮어냈다. 영화에서 피는 생명과 욕망, 더럽혀진 무언가와 같은 온갖 이미지를 버무린 소재로 자리한다. 흡혈귀의 피를 마셔 무한한 힘을 얻은 주인공 상현(송강호)은 성직자로서 의식을 놓지 않은 탓에 사람을 죽여 흡혈하는 일을 거부하고자 제3의 길을 모색하지만, 그런 주인공으로부터 흡혈귀의 피를 받아 되살아난 태주(김옥빈)는 자신에게 주어진 흡혈귀로서 권력을 만끽하며 욕망을 채우는 데 몰두한다.
많은 게임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박쥐>의 설정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흡혈귀가 주인공이 되는 게임은 당연히 주인공 캐릭터의 생존을 위해 흡혈을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생존 요소를 도입해 일정 시간 피를 빨지 않으면 게임 오버를 맞이하는 설정을 기본으로 잡고 갈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화 <박쥐>에 기반한 게임은 생존 요소인 피 마시는 행위 자체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고,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퀘스트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색다른 흡혈귀 게임의 얼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게임 속 주인공인 성직자 캐릭터가 피를 마셔 생명을 유지하지만, 흡혈을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 캐릭터의 성향이 변하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우연히 살인을 행하지 않고 피를 마시는 법을 찾아내더라도, 점차 강해지는 흡혈의 욕망이 주인공의 윤리의식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게임 시리즈 ‘위쳐’에서 모든 선택지가 언제나 양날의 검이었듯 <박쥐> 플레이어가 흡혈이 좋다, 나쁘다를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게임 속 흡혈이라는 행위를 단순한 공격 양식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층적 의미의 가능성을 내포한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여긴다면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더 많은 결말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_ 이경혁 (게임평론가)









생각지 못한 일탈이 주는 스릴감
웹 드라마

21세기의 화두는 무엇일까? 미래학자들은 20세기의 화두가 ‘효율성’이라면, 21세기의 화두는 ‘재미’라고 한다. 배우자의 이상형 순위에서 ‘유머 있는 남자’가 ‘돈 많은 남자’를 제쳤다. ‘놀이 문화’라는 말이 있으니, 놀이를 문화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1938)에서 저자 호이징가는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연재된 김보통의 만화 는 웹진 ‘레진코믹스’에서 1000만 뷰를 찍었다. 4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드디어 넷플릭스 드라마 (2021)도 높은 인기 순위를 달리고 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음 수순은 ‘D.P. 게임’일 것이다. 게임의 4요소는 미케닉, 스토리, 테크닉, 미학이다. D.P. 게임에서 이 4요소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할까?
첫 번째, 미케닉(게임의 룰)
군탈체포조(deserter pursuit)는 군 복무 기간(부제목처럼 ‘개의 날’ 동안) 탈영병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활동비는 제한되어 있고, 체포 성공 시 휴가라는 보상을 얻는다. 하사관과 정보병이 이들을 돕는다. 하사관은 장교의 지휘를 받는다. D.P.의 성과는 장교의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 탈영병의 탈영 기간이 길어질수록 장교의 인사고과는 떨어지고, 탈영병에 대한 벌은 무거워진다. 보통 탈영병이 속한 부대 동료나 가족은 탈영 원인을 제공한다. 이 게임을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만들면 플레이어들이 어떤 역할을 맡고 싶어 할까?
두 번째, 스토리
플레이어들이 어떤 역할에 몰입하기 쉬울까? 이 게임의 주요 유저가 작가 김보통을 좋아한다고 가정하면, ‘멋있게 탈영병을 잡는 D.P.’보다는 ‘탈영병에게 인간적으로 공감하는 D.P.’ 또는 ‘쫓기는 탈영병’ 역할에 더 몰입할지 모른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군가의 아들이자, 친구이자, 연인인’ 보통 사병으로 난데없이 던져진 억압적 환경 속에서 한 번쯤 탈영을 꿈꿔봤을 것이다. 1960년대 미드 <도망자(The Fugitive)>에서는 평범한 외과의사가 어느 날 갑자기 아내를 죽인 살인자가 되어 쫓기지만, 시청자들은 그를 응원했다.
세 번째, 테크닉
이 게임의 주제가 액션이 아닌 공감이라면, 그에 걸맞은 테크닉이 필요할 것이다. 2020년 4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적으로 발병하기 전 일본 제품 불매운동 기간이었음에도 닌텐도 ‘동물의 숲’ 판매율은 70% 이상 증가했고, 하드웨어 플랫폼인 닌텐도 스위치 가격은 몇 배로 뛰었다. 동물의 숲은 경쟁과 액션 없이 이웃과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주제였고, 이것이 코로나19로 움츠러든 마음을 위로했기 때문이다. D.P. 게임에서는 뇌파를 읽는 테크닉을 사용하면 어떨까 싶다. D.P.가 자기모순적 결정을 할 때 요동치는 뇌파를 통해 MBTI 유형을 게임 결과로 도출시키는 것. 예능에서 많이 사용하는 ‘Yes or No’ 거짓말 탐지기 같은 원리인 셈이다.
네 번째, 미학
김보통의 그림은 단순하다. 게임의 4요소에서 미학은 주로 그림이나 음악의 예술성을 뜻하는데, 이 게임에서는 절제미를 추구한다고 할까. 즉, 인간의 미묘한 심리학(delicate psychology) 같은 서사적 미학이 중요하다. 그림과 음악이 현란하면 서사성이 떨어진다. 드라마 의 시그널 영상에서도 태어나 군대에 오기 전까지 누구나 거쳤을 법한 장면을 흐릿하게 보여준다.
‘1981년 여름 내가 막 상병을 달았을 때 우리 부대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인질범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한 우리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그의 인질이었지만, 그가 총을 놓고 헌병들이 내무반에 들이닥쳤을 때 그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인간 방패가 되어주었다. 모두 울고 있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이러한 미묘한 심리가 게임에 담겨야 한다.
1980년대 병장 월급은 3700원이었다. 지금은 60만 원이 넘는다. 그래도 자살과 탈영은 끊이지 않는다. 물론 게임에서는 ‘재미’가 최고 가치지만, ‘D.P. 게임’을 하면서 동물적 잔인함이 조금씩 잦아들면 좋겠다. 문화는 놀이에서 시작된다. 드라마 에서 탈영병이 자살하면서 하는 얘기가 생각난다. “뭐라도 해야지.” _ 서덕영(경희대 전자정보대학 게임트랙 교수)





게임에 적합한 핵심 플롯
영화 <화차>·<엑시트>

영화와 가장 닮은 매체는 누가 뭐래도 게임이다. 같은 시각 매체일 뿐 아니라 사건으로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콘솔 게임에서 많이 활용하는 컷 신은 전형적인 영화 문법이다. 그럼에도 영화와 게임의 간극이 큰 편이라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는 한정적이다. 만약 영화를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면 “영화의 핵심 재미를 게임의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영화가 <화차>(2012)와 <엑시트>(2019)다.
<화차>는 선영(김민희)이 휴게소에서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사라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뒷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영이 문호(이선균)와 결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영에게 전화를 건 이는 누구이며, 그녀는 왜 사라졌을까? 이 설정을 활용하면 추리 어드벤처 게임 ‘화차’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게임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선영의 비밀을 추적하는 구성이 되어야 한다.
게이머는 문호나 문호의 의뢰를 받은 전직 형사 사촌형이 되어 사라진 여자친구를 찾아야 한다. 가장 먼저 4년 전 파산 신청한 선영과 문호가 결혼하려던 선영이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영화 내용을 그대로 활용하면 이력서와 탄원서의 글씨체가 다르다는 단서를 플레이어가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력서와 탄원서를 아이템으로 만들어 플레이어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임 속 제삼자가 수상한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력서와 탄원서를 제시하는 식의 플레이가 가능하다. 게임 <화차>는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미션을 해결하는 식의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 될 것이다. 아마도 고전 명작 게임 ‘역전 재판’과 비슷한 게임이 되지 않을까.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엑시트>는 스토리 자체의 특별함은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조정석이 연기한 용남의 클라이밍 액션에 있다. 아슬아슬한 액션의 쾌감이 확실하다. 게임에선 이 점을 잘 살려야 한다. 그래서 <엑시트>를 VR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실제로 ‘더 클라임2’라는 VR 게임이 있지만 스토리는 없다. 스토리는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최고의 도구다. 게임 ‘엑시트’는 스토리를 통해 게임 속 주인공이 액션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클라이밍 액션 게임에 머물지 않는다. 이해를 위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생존자들은 건물에 고립되어 있고, 밑에서 올라오는 유독가스로 인해 모두가 큰 위기에 빠진다. 건물 위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는 일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건물 옥상의 문은 잠겨 있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용남(조정석)이 되어 빌딩 옥상 문을 열어야 한다. 그냥 빌딩을 오르는 것과 이런 전후 맥락이 있는 상태에서 오르는 것의 몰입도는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VR에선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캐릭터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엑시트>에서 유명한 ‘따따따’ 장면 역시 그 느낌 그대로 경험 가능하다. _ 이진희(게임 시나리오 컨설턴트)





한국형 어둠의 세계 속 매력적인 캐릭터
영화 <범죄의 재구성>·<타짜>·<도둑들>

게임화할 만한 영화다. 일단 SF+액션 요소가 들어가면 좋겠다. N소프트가 투자한 메리크리스마스 배급사의 <승리호>라든가, <마녀> 같은 것도 괜찮겠지. 당연히 배틀그라운드풍 좀비 서바이벌 <부산행>도 괜찮을 거고. 가만, 그런 IP 기반의 게임화도 꽤나 그럴듯하지만, K-겸손뽕을 전 세계에 선사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을 상기해보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젊은 백수 시절 자신이 당한 사기 경험을 창작 에너지로 승화한 충무로 최고 흥행 감독 최동훈의 이야기도 있다. <범죄의 재구성>(2002), <타짜>(2006), <도둑들>(2012)로 묶이는 케이퍼 무비 3부작은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 구성과 함께 최고 캐릭터 영화로 인정받은 영화로, 전 세계에서 사기 범죄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게임화하기 적절한 영화가 아닐까?
지금까지 영화가 게임보다 우위를 가진 건 거대한 스케일에서 오는 스펙터클인 만큼, 영화의 게임화는 IP를 끌어와 그 스케일감을 어떻게 유저 레벨에서 구현할 것인가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극장에서조차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8K 영상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할 수 있는 게임 엔진이 나오는 시대에 스펙터클의 모사는 의미 없지 않을까. 잘 나와봐도 <배트맨: 아캄시티>나 <스파이더맨> 정도가 한계일 것. 결국 유저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캐릭터의 매력, 그 캐릭터가 유저와 상호작용하며 내뱉는 대사가 ‘영화화’의 큰 메리트가 될 것이다. <타짜>의 아귀, 정마담, <도둑들>의 예니콜처럼 매력적인 캐릭터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꽤 흥미로운 경험일 테니까. 비록 <사이버펑크 2077>은 망했지만.
최동훈 감독의 케이퍼 3부작 게임화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같은 인터랙티브 드라마로, 시리즈처럼 오픈 월드로, <용과 같이>처럼 액션 어드벤처로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 구시가의 음습함, 뒤늦게 개발된 유흥가 주변의 번잡스러움 등 어릴 적 꽤나 흥미롭게 느낀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경기 서부권에 있는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대한민국 사기꾼 집단을 게임 속 주인공으로 풀어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게임 회사 PD에게 “이런 게임 어때?” 하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형, 저한테 왜 이래요. 저 이대 나온 남자예요”였다. _ 신문철(게임 투자회사 CFO)

 

에디터 최고은(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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