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패션을 이끄는 디자이너 김영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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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3

한복 패션을 이끄는 디자이너 김영진

단순한 한복의 현대화를 말하고 싶지 않다. 한복을 오롯한 '패션'으로 승화하고 싶은 디자이너 김영진의 옷에서 그 이상을 엿보았다

영화 <해어화>부터 국립오페라단의 <동백꽃 아가씨> 무대에 이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 굵직한 공연과 드라마에 의상 디렉터로 함께한 디자이너 김영진. 2004년부터 지금까지 전통 맞춤 한복 브랜드 ‘차이 김영진’과 현대적 코드를 접목한 기성복 브랜드 ‘차이킴’을 운영하며 한국적 멋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김영진의 브랜드 차이킴의 ‘차이’는 ‘다르다’는 뜻의 그 차이를 의미한다. 사람이 모두 다르다는 것, 아주 작은 차이가 좋은 옷을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
특별한 날을 위해 단속곳부터 치마와 저고리까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커스텀메이드도 하지만 한국 전통 연희 중 하나인 남사당패의 자유로운 노매드 감성을 기본 컨셉으로 하는 기성복 제작도 함께 가져가는 것이 김영진의 특징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디자인을 실용적 한복이나 생활한복이 아니라 ‘레디투웨어’로 정의하는 그녀는 실크, 면, 리넨, 데님, 맨투맨 소재 등 다양한 패브릭을 사용하거나 저고리를 퍼프소매로 디자인하고 한자를 새긴 금박을 새로운 단어나 음식으로 대신하며 아이덴티티 강한 디자인을 선보여왔다. 기성복 라인 중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 일상에서도 쉽게 입을 수 있어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가 많은 ‘철릭 원피스’는 시중에 복제품이 많이 돌아다닐 정도로 그녀를 대표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2015년 추석을 맞아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해 트래블 플랜 파우치 한정판을 선보이고, 2019년에는 동인비와 함께 차이킴 헤리티지를 담은 스카프를 만들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협업에도 자유로운 그녀는 지난해 12월 문화재청이 한국의 미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제작한 영상 ‘코리아 인 패션’에도 패션 디렉터로 참여했다. 당시 우리 역사 속 ‘공주의 하루’를 컨셉으로 홍보 영상을 풀어냈는데, 올여름엔 그 두 번째 편 <공주의 꿈>을 제작해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이후 우리나라 공주가 해외 공주들을 초청해 한복을 입고 연회를 즐기는 행복한 상상을 담았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단 그리고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이 영상을 30초짜리 광고로 제작,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지난 6월 4주간 1000회 상영하며 유튜브에서도 이슈 몰이를 했다.
MZ세대가 좋아하는 한복 디자이너이자 한복의 세계화를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그녀를 한남동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연극 무대에서 패션업계로 이동, 그리고 한복 디자인을 시작해 한복을 패션의 범주에 자리매김하기까지 김영진의 고집과 노고가 실로 대단했음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지난해에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단이 제작한 영상 ‘코리아 인 패션’에 패션 디렉터로 참여하셨습니다. 한복과 궁궐의 아름다움을 담은 콘텐츠인데, 처음 공개한 <공주의 하루>에 이어 올해 6월에도 <공주의 꿈>을 선보이셨습니다. ‘공주’를 키워드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전부터 만약 서울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면 궁궐에서 공주 놀이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궁을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 ‘공주 열전’ 같은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이라는 걸 같이 하자면서 “패션으로 한복을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느냐” 하셔서 “저는 서울 사람이고 외국인이 왔을 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게 궁이니 궁에서 공주를 주인공으로 영상을 찍자”고 제안했어요. 그간 우리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한 왕비들은 사실 어릴 때 사가에서 살다 궁에 입궐했지만, 공주는 궁에서 태어난 ‘본투비 로열패밀리’잖아요. 그들의 모습에 차이킴을 대입하고 싶었어요.
두 편의 영상은 각각 어떻게 기획하셨어요? <조선공주실록> 등 여러 책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 상상 속 공주를 만들었어요. 1편 <공주의 하루>는 우리 역사 속 베일에 싸인 공주의 삶에 현대적 상상력을 가미해 역동적으로 자신의 꿈을 좇는 공주의 하루를 컨셉으로 풀어냈습니다. 복온공주, 덕온공주 등 역사 속 공주의 의상을 모티브로 ‘현대의 공주라면 어떤 궁중복과 당의를 입을까’ 상상했죠. <공주의 하루>가 11월과 12월에 촬영해서 F/W 컬렉션 분위기였다면, <공주의 꿈>은 꽃이 만개했을 때 촬영한 거라 색감이 밝아요.
말씀처럼 <공주의 꿈>은 궁의 봄을 모티브로 한 덕분에 아름다운 색감과 영상미를 자랑합니다. 그 영상에서 총 서른한 벌의 한복을 소개했는데, 영상과 한복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공주의 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경궁과 창덕궁, 복원 후 처음으로 공개하는 조선 최초의 식물원과 대온실에서 촬영했어요. 우리나라 공주가 팬데믹이 끝난 후 세계 여러 나라의 공주를 초대해 연회를 연다는 스토리죠. 그렇게 전 세계 공주가 입은 한복은 서른한 벌처럼 보이지만 한복 속에 갖춰 입은 옷까지 더하면 백 벌이 넘어요. 엄청난 작업이었습니다.
대표님은 2004년에 ‘차이 김영진’으로 시작해 20년 가까이 한복의 커스텀메이드와 레디투웨어를 함께 추구하고 계십니다. 프랑스 레이스 같은 수입 원단부터 모시, 상주 명주 등 전통 원단까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디자인이 신선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특히 한복에 잘 사용하지 않는 소재로 디자인할 때 어떤 기준을 따르는지요?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의 원단도 가져와 한복을 만드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는 편인데, 사실 소재를 잘못 쓴 옷은 매우 부조화스러워요. 그걸 잘 골라내서 매치하는 눈이 필요한데, 저 같은 경우 기준이라기보다는 저만의 시각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취향이 확실한 편이었는데 패션계에 몸담으며 트렌드나 고급 소재 등을 보는 눈이 생겼죠.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면서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죠.





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서 온라인으로 선보인 ‘수묵 패션쇼’. 김영진 대표는 수묵의 아름다움을 담은 한복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2012년부터 기성복 라인을 시작했는데 여전히 공방 형태로 운영하고 계십니다. 맞춤 한복만 할 때와는 운영 면에서도 다를 것 같은데 어떠세요? 맞춤옷은 제가 손님과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어가며 만들기 때문에 괜찮은데, 기성복은 사실 좀 어려워요. 예를 들어 제가 A 디자인을 좋아해 많이 만들었는데 손님이 “소화하기 어렵다”며 잘 구매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직원들이 제 디자인 철학을 손님에게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100년 갈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데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한복도 시대별로 유행이 있습니다. 15세기, 16세기, 17세기 한복도 있지만 대표님은 18세기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한복의 아름다운 비율을 보고 직배래, 항아리 라인을 기본 컨셉으로 정하셨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으신가요? 아, 이제 좀 바꾸고 싶어요. 제가 30대에 한복 디자인을 시작해 벌써 50대에 접어들었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저도 생각이 좀 확장되는 걸 느껴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한복은 물론 다 달랐지만 대체로 기장이 길고 품이 낙낙했어요.
신라시대, 고려시대 복장처럼요. 근데 18세기에 들어오면서 비율이 너무 예쁜 거예요. ‘상박하후(上薄下厚)’라고, 위는 좁고 아래는 풍성하고 여유롭죠. 그러니 얼마나 섹시하겠어요. 근데 그건 제가 30대일 때 생각이거든요. 지금은 ‘굳이 30대일 때의 미적 취향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요즘은 약간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이 좋아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그 이전의 복장을 찾아보면 최근의 퓨처리즘 같은 부분이 있어요. 예전엔 정직하게 패턴이 딱 떨어지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거기서 해방돼 현 시대상을 반영하는 방식이 좋더라고요.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자유로운 젠더리스 디자인을 구상 중이에요.
문득 대표님은 어릴 때 어떤 패션을 추구하셨을지 궁금해집니다. 잘 입고 다녔대요.(웃음) 저는 교복을 입지 않은 세대라 오히려 유행에 민감할 수 있었는데, 그 유행이라는 게 너무 싫었어요. 예를 들어 중·고등학생 때 더플코트가 유행이라고 하면 저는 오히려 세컨드핸드 숍이나 보세집에 가서 생소한 디자인의 옷을 골라 입었어요. 심지어 당시에도 레이어드를 많이 해서 입었는데, 저번에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네가 그때 입던 게 지금에야 유행한다”고. 생각해보면 30대 때도 주변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트레이닝팬츠에 밍크코트를 입는 건 너밖에 없을 것”이라고요. 어릴 때부터 패션에 유독 자유롭고 탄력적이었어요.
여러 예술가가 대표님의 디자인을 좋아합니다. 특히 가야금 연주자 주보라나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이자람 같은 경우는 대표님의 의상을 즐겨 입죠. 젊은 팬들을 보면 마음이 어떠세요? 이자람 씨의 ‘이방인의 노래’ 공연을 제가 정말 좋아해요. ‘최연소 춘향가 8시간 완창’ 기록을 기네스북에 올리기도 했잖아요. 그 정도 경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연습을 해야 했겠어요. 보라 씨의 음악에도 감동이 있어요. 패션쇼의 음악감독을 맡기면 정말 책임감 있게 해요. 특히 제가 국립창극단의 <귀토> 같은 창극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는 하는 행동이나 태도가 예쁜 친구가 많아서예요. 유태평양, 민은경 등 우리 소리를 확고한 자기 스타일로 해석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저도 힘이 나요. 폼 잡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한 작업을 하는 건 진실, 본질에서 시작한다는 거거든요. 그 지점이 저랑 맞물려요. 저도 한복을 가져와 김영진만의 스타일로 새로운 패션을 창조하니까요.





김영진 대표는 국립오페라단이 2018년 선보인 <동백꽃 아가씨>에서 의상 디자인을 맡아 매혹적인 실루엣의 한복을 선보였다.

창극 외에 영화 <해어화>, <조선마술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왕은 사랑한다>, 국립오페라단의 <동백꽃 아가씨>, 연극 <햄릿> 등에서도 의상 디렉터를 맡으셨어요. 바쁜 와중에도 영화와 공연에서 협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생이 재미없으면 공연을 보러 가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호기심이 많고 심심한 걸 못 참아요. 일을 벌이는 성격이죠. 공연 보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예전엔 직접 연극을 하면서 무대의 공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세상 시름 다 잊고 무대에 오르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죠.
말씀하신 것처럼 연극을 하다 패션계로 오셨는데,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연극 연출을 공부하고 무대에 섰는데, 언제부터인가 제 기질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자꾸 뒤돌아보는 성격인데, 연극 연출은 일방적 디렉팅이 많거든요. 그게 잘 맞지 않았는데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오래 한 것 같아요. 집에서 심하게 반대하는 연극을 했기 때문에 잘해내고 싶었거든요. 한참 고민하다 패션계로 넘어왔는데, 이게 의외로 잘 맞더라고요.
베이직진, 체루티 1881을 거쳐 루이 비통에서 슈퍼바이저로 일하셨습니다. 현장에선 어떤 것을 배우셨나요? 그 일을 하면서 남성복에 대해 많이 공부했어요. 남성복은 소재 회사가 매우 중요한데 로로피아나, 제냐, 브리오니에서 사용하는 소재를 많이 접하면서 이제는 만져만 봐도 캐시미어가 몇 퍼센트인지 알아맞힐 수 있죠. 구매, 세일즈, 브랜딩, 매니지먼트 등을 같이 하며 일을 배웠어요. 소재를 보는 눈이나 감각, 경영에 대한 노하우도 그때 많이 배웠죠.
루이 비통을 그만두고 쉬면서 취미로 한복 디자인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릴 적 리틀엔젤스 단원인 언니의 한복 케이스를 본 후로 늘 한복에 대한 동경이 있으셨다고요. 취미로 시작한 일이 어떻게 디자이너 김영진으로 발전할 수 있었나요? 회사를 그만두니 우울증이 오겠더라고요. 옛날부터 한복 디자인을 하고 싶었는데 어려울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심플하게 취미로 시작해보자 마음먹었어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1호인 침선장 박광훈 선생님을 찾아가 배냇저고리부터 시작했어요. 그렇게 1년 정도 배웠을 때 주변에서 누군가 저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복을 해달래요. 그래서 만들어주는데 제가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걸 입은 지인도 예쁘다며 좋아했고요. 주변에서 점점 “넌 정말 이거 해야겠다”라는 말을 하고 그래서 조그만 아트 문화 살롱처럼 2004년에 시작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한남동 아틀리에 2층에는 차이킴 레디투웨어 쇼룸이 있다.

연극 무대에 오른 경험, 그리고 패션과 명품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 등이 지금의 일에 시너지를 낼 것 같은데 어떠세요? 맞아요. 새로운 소재를 한복에 매치하는 것도 그렇고, 제가 공연이나 영화 등의 의상 디렉터를 할 때도 그래요. 제가 연극을 했기 때문에 배우들이 어떤 의상을 입어야 무대에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지 알거든요. 심지어 저도 모르게 캐릭터 분석을 하거나 무대연출에 관한 의견을 내다 보니 연출가들이 저를 좋아해요. 그런 걸 보면 우리 삶에서 지나온 길은 하나도 버릴 게 없는 것 같아요. 나쁜 만남도 결국에는 버릴 게 없어요. 깨달음으로 돌아오니까요.
대표님 이후 젊은 디자이너들이 한복의 세계화에 힘을 쏟는 모습입니다. 좋은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디자이너도 있지만, 간혹 한복의 모티브를 서양 복식에 장식적으로 믹스한 것 같은 옷을 볼 때가 있어요. 하나의 새로운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이도 저도 아닌 디자인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분이 차이킴의 철릭 원피스를 사랑하는 이유는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게 바로 차이킴의 아이덴티티죠. 그런데 조금 전 말씀하신 옷은 아이덴티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옷은 취향의 문제라 좋은 옷, 나쁜 옷을 구분 짓기 어려운데, 아이덴티티가 있는 옷은 좋은 옷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스타일’이니까요. 저는 제 옷이 100년, 200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 새로운 전통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옷을 지어요.
단속곳부터 치마와 저고리까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드는 맞춤 한복은 주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주로 어떤 분이 주문을 하시나요? 혼례복이 가장 많고, 코로나19 이전에는 해외여행이나 출장에서 공연장이나 갈라 파티 등에 입고 갈 옷을 많이 부탁하셨어요. 모두 차이 김영진 한복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시는 분이죠.
대표님이 지은 옷은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 디자이너에게 꿈의 무대가 아닐까 싶은데, 박물관 측에서 먼저 연락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저는 외국의 패션학과 교수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10년 전 해외에서 저를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거든요. 한국인도 저를 잘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교수들이 계속 조사하며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다니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차이킴의 디자인을 봤느냐”고 물었대요. 학생들이 그렇게 차이킴 브랜드를 알게 된 것 같아요. V&A가 소장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은 명확했어요. 컨템퍼러리 아티스트! 전통 한복을 가장 실험적이고 컨템퍼러리하게 만드는 디자이너. 그게 기준이었어요. 그래서 저를 선택했고, 소장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제가 두 벌을 보냈어요.





최근 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서 온라인으로 선보인 ‘수묵 패션쇼’가 화제가 됐습니다. 패션쇼 연출을 대표님이 맡으셨는데, 수묵의 아름다움을 담은 한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패션쇼를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와 비엔날레 홈페이지에 게시했어요. 이번 패션쇼에는 제가 영감을 받은 부분이 반영되었는데, 바로 저 초상화의 주인공인 이채 선생이에요. 조선 선비인데, 제가 조선시대 초상화 화집을 보다 너무 근사한 차림의 남자가 많아서 충격을 받았어요. 관직에 몸담은 관리들이 입는 관복이 있는가 하면, 관직에 나가지 않은 선비의 복장을 뜻하는 야복도 있어요. 복건이나 동파관, 정자관을 쓰고 심의나 도포를 입고 있어요. 성리학자가 많이 입은 의복이죠. 그 초상화를 쭉 보는데, 바로 수묵과 연결이 되는 거예요. 그걸 이번 패션쇼에 반영해 디자인했는데, 이렇게 패션에 대한 제 시각이 또 한번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여성의 비율, 저고리의 섹시한 비율 등을 고민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더 매력적인 게 있는 거죠. 그런 걸 발견하면서 이번에 좀 자신감이 생겼어요.
매번 새로운 것을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발전하실 것 같아요. 패션쇼를 준비할 때는 자료 찾아 공부하면서 만들어보고 또 만들어보고 해야 해요. 옷이라는 게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림과 같이 해봤다가 이게 아닌데 싶으면 다시 만들고, 이 재료로 실패하면 다른 재료로 또 만들고. 그런 실험을 통해 내가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거예요.
꼭 한번 패션쇼를 해보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요? 몇 주 전 지인들과 경주 독락당과 옥산서원 계곡이 있는 곳에 갔어요.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따로 지은 사랑채 건물이에요. 그 옆을 흐르는 자계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회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옥산서원이 있어요. 개방감이 상당한 곳으로 단풍도 정말 예쁘더라고요. 거기서 꼭 한번 패션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표님은 “내가 만드는 것이 꼭 한복이라고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김영진의 옷, 그리고 김영진이라는 디자이너를 어떤 문장으로 기억했으면 하세요? 김영진이라는 사람이 한국적 아이덴티티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이너였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코코 샤넬은 샤넬이란 브랜드가 아니라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그처럼 제 옷을 보고 한복의 새로운 혁명을 이뤄냈다고 봐주면 좋겠어요.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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