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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31

전통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서

옛 전통 가구와 생활 소품에 새겨진 매란국죽, 모란 등의 문양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왼쪽부터 주병은 당초문청화백자, 정육면체 형태의 도장은 목화문, 사발은 연화문청자, 술잔대는 연화문청자, 술잔은 국화문청자, 육각 필통은 매화문자개육각필통, 모두 무명씨에서 선보이는 앤티크 제품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눈에 띄게 성장하며 주목받는 옥션 마켓에서 옛 물건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의 거의 모든 물건에 동물이나 식물 이미지와 문양이 새겨진 것을 알 수 있다. 전통 문양 중 이번에 다룰 식물 소재는 주변에서 눈에 자주 밟혀 사용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필자는 그것을 ‘상징성’이라 표현하고 싶다. 어떠한 사물에 대한 특별한 인식의 작용을 바탕으로 하는 상징은 예술에도 적용되는 감성적 복합체다. 특히 두 대상이 만나 하나의 상징이 된 경우 대부분 필연적 연관성은 없지만, 인간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을 붙여 표현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낼 때, 그리고 모든 이가 동의하며 의견을 같이할 때 그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우리 조상이 사랑한 자연 이미지 중 주요 소재가 된 것이 바로 꽃과 과일을 포함한 식물이다. 꽃은 아름다움을 대표하기에 별다른 상징성을 굳이 찾지 않더라도 미적인 부분뿐 아니라 장식적 효과까지 있다. 선비가 지녀야 할 품성으로 자리매김한 매화·난초·국화·대나무 같은 사군자와 모란·동백·연꽃·석류·가지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식용과 약용으로 널리 이용된 식물은 아름답거나 독특한 형상으로 일찍이 문양의 좋은 소재뿐 아니라 모든 생활용품의 예술적 모티브가 되었다. 식물 이미지는 새와 물고기 등 동물 문양이나 바위·산·구름·물 등 자연의 산수 문양과 함께 시문되어 삶의 즐거움과 올바른 삶의 방향, 부부 화합과 자손 번창, 수복 강령, 사후 세계에서의 영속과 행복을 기원하는 내세관 등을 담아냈다. 결국 인간이 바라는 모든 염원을 각 식물의 특성과 연결해 표현한 것이다.





왼쪽부터 떡살은 국화문옹기, 그 옆에는 매화문청자와 매화문백자 주병이 있다. 복숭아 모양 연적은 복숭아형매화문양청자, 사발은 국화문청자다. 모두 무명씨에서 선보이는 앤티크 제품이다.

모란
중국이 원산지인 모란은 꽃 지름이 10cm 이상으로 매우 큰 편이다. 겹겹의 꽃잎이 탐스럽고 화려해 꽃 중의 왕, 즉 화왕(花王)으로 불렸으며 부귀를 상징해 부귀화(富貴花)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모란은 도자기에 가장 많이 사용된 무늬로,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기품 있고 아름다운 여성에 비유되었고, 부귀와 화목을 상징했다. 따라서 모란을 형상화한 모란 무늬는 관직에 올라 오랜 기간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축원하고 부부가 오래 함께하면서 자손이 잘 살기를 바라는 기원을 함축하고 있다. 신라시대 때 선덕여왕은 당나라에서 보낸 모란 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는 꽃일 것이라 추측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사실 모란은 조선 초까지도 귀한 꽃으로 대접받았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자태 덕분에 조선시대에도 부귀를 상징하는 꽃 중의 왕으로 여기며 생활 공예품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결혼식 예복인 활옷 등 복식, 갖가지 자수 공예품 문양과 도자기 장식 문양, 민화에서도 주된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매화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는 선비에게 가장 사랑받는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화에 자주 등장한다. 추운 날 눈과 서리가 내려도 당당하게 홀로 꽃을 피우는 매화는 선비에게 지조와 절개·충정을 의미했고, 봄소식을 알리기에 희망과 회춘을 의미했으며, 그 꽃의 아름다움으로 단아함과 고결함·기품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문인에게 사랑받은 매화는 당시 공예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 양반집 여인네의 은비녀에 새겨진 문양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늙은 가지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고 추위를 다스려 꽃을 피우는 특징을 지녀 늙지도 쇠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5개의 꽃잎을 두고 오복(五福)을 표시한다 하여 길한 의미의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선비들은 혼란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산중에서 매화를 벗 삼으며 은거하는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송나라 시인 임포(林浦) 임화정은 결혼도 하지 않고 고산에 매화를 심어놓은 뒤 홀로 매화를 감상하며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요즘 잣대로 백수였던 그가 조선에서는 풍류의 아이콘이 되어 많은 선비의 이상형으로 꼽혔다. 지금도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보면 잠시 현실을 잊게 되지만, 생활에서 현실을 직면하지 않고 은둔하거나 은둔을 꿈꾸는 이에게 칭송받은 그 시대 매화가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난초
유교에서 군자의 덕성에 비유하며 사군자에 포함된 난초는 군자의 덕(德)에 어울리는 향기를 지녔다 해서 난지향(蘭之香) 또는 ‘왕의 향취’라고 표현했다. 향 중의 왕(최고)이 아닌 왕의 향취라고 불렀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난초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성은 향에서 비롯되는 고고함이다. 산중에 홀로 피어 멀리 은은한 향을 내뿜는 난초는 지조 있는 선비와 귀한 여인에 비유되었다. 쭉 뻗은 잎은 군자의 기상을 이르고, 난초를 기르면 우환을 막아준다고 여겨 난초 그림을 집 안에 걸어두고 벽사를 염원하기도 했다.

인동초
인동 무늬는 야생에서 자생하는 겨우살이 넝쿨식물인 인동초를 모티브로 한 식물 문양이다. 인동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인동초는 추운 겨울에도 잎과 줄기가 시들지 않으며, 혹한을 견뎌낸 뒤 봄이 오면 다시 꽃을 피운다. 이러한 이유로 인동문은 장생과 영속, 번영의 의미를 지닌다. 인동문을 포함한 넝쿨 무늬는 넝쿨이 뻗어나가는 형상을 도안화한 것으로 중국 당나라 시대에 널리 활용되면서 당초문으로 불렸다. 자생력이 강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속성을 지닌 넝쿨은 쉬지 않고 살아간다는 장생의 의미를 함축해 고려시대 도자기, 기와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궁궐 지붕의 인동문 기와는 국가, 즉 그 왕조의 영속과 번영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연꽃
태양, 생명, 재생, 순수, 청결, 청렴을 의미하는 연꽃은 음을 따라 ‘연이어 계속하다’라는 뜻도 지녔다. 열매와 씨가 함께 있어 사랑과 장수, 애정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조선시대 엘리트의 산실이던 성균관에서도 시험에 합격한 이에게 다른 숫자의 연꽃을 사용하게 한 것은 군자를 상징한 연꽃의 청렴한 의미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징성이 시대에 따라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하는지 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만약 현대에서 고위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들에게 청렴의 의미로 연꽃 무늬를 바탕으로 한 임명장이나 기념품을 준다면 특정 종교를 부각한다는 여론의 따가운 뭇매를 맞을 일이다.

국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꽃으로 당나라 때 이전부터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 원산지인 중국의 문화적 인식과 관념도 그대로 전해진 듯하다. 특히 달여 마시면 장수하는 신비한 영약이라 믿었던 황국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환갑이나 진갑 등에 바치는 꽃으로 사용되었다.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으로 일컫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둥근 꽃송이가 위를 향해 피어 있으니 하늘에 뜻을 두고, 순수하고 밝은 황색은 땅을 뜻하며, 일찍 싹이 돋아나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은 군자의 덕을 지녔다는 것을 이른다. 찬 서리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은 고고한 기상을 의미하고, 찻잔에 동동 떠 있으니 신선의 음식이라고 했다. 국화에 관해서는 시인 도연명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며 살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국화에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군자’, ‘속세를 떠나 숨어 피는 꽃’ 등의 별명이 붙은 건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늦은 서리를 견디며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의 생태는 길상과 상서의 의미로 받아들였고, 나이 든 식물 또는 천대에 걸쳐 볼 수 있는 식물이라 하여 장수를 상징했다. 국화를 떡살에 시문하고 도자기에 표현한 것은 이러한 상징성이 주는 의미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사진 박우진
손란(무명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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