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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31

자동차 브랜드의 진화

자동차 브랜드가 만드는 물건에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위쪽 볼보가 글로벌 패션 브랜드 3.1 필립림과 손잡고 노르디코 소재를 활용해 제작한 위크엔드 백.
아래쪽 페라리가 첫 번째 패션 컬렉션 런칭했다.

페라리 유튜브 채널을 구독 중인데, 몇 개월 전 아주 흥미로운 영상을 접했다. ‘Ferrari Live Fashion Show’라는 제목의 콘텐츠다. 영상을 클릭하자 카메라는 이탈리아 마라넬로 본사 공장을 비춘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BGM에 맞춰 복잡하게 엉킨 기계와 엔진 부품, 조립 공정에 들어간 새빨간 슈퍼카를 느릿하게 보여준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공장의 일상적 모습과는 사뭇 다른 영상미에 빠져들었다. 이윽고 조립 라인을 따라 길게 놓인 런웨이로 앵글이 옮겨가고, 공장 내부에서 패션쇼가 펼쳐진다.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종횡무진 움직이는데, 자세히 보니 페라리 로고를 강조한 셔츠와 바지, 벨트를 착용했다. 페라리 공장에서 펼쳐진 패션 브랜드의 행사가 아니라 페라리가 직접 패션 사업에 뛰어들어 첫 번째 컬렉션을 런칭한 것이다. 페라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돌체앤가바나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디자이너 로코 이안노네(Rocco Iannone)를 영입해 스포츠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재킷과 패딩, 드레스, 셔츠 등 컨템퍼러리 감성이 돋보이는 젠더 뉴트럴 아이템을 선보였다. 기계적 차가움 속 잠재된 감성을 표출한 것일까? 슈퍼카 브랜드의 후광과 상관없이 손에 넣고 싶을 만큼 탐나는 스타일로 가득했다.
사실 자동차 브랜드가 본업에서 벗어나 색다른 물건을 만드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산하에 산업디자인팀이나 디자인 자회사를 두고 텀블러, 우산, 모자 같은 굿즈를 선보이는 것이 가장 일반적. 나아가 자전거, 체어, 유모차 같은 생활용품을 제작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의미를 확장하거나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비행기와 요트에 이르는 완전히 다른 이동 수단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자동차 브랜드는 자동차뿐 아니라 그로 인해 확장될 삶의 모습을 함께 제시해왔다. 다만 자동차를 만들어온 기술력과 혁신적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물건’을 창조하는 것에서 나아가 요즘은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관을 담은 유의미한 프로젝트로 진화하는 추세다. 어떤 물건이냐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보는 게 중요한 것. 앞서 설명한 페라리만 해도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는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패션을 선택한 케이스다. “이번 컬렉션은 옷을 런칭한 것을 넘어 페라리 자동차처럼 ‘특별하지만 배타적이지 않은’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담았습니다.” 페라리 브랜드 다각화 부서 최고 책임자 니콜라 보아리(Nicola Boari)의 말처럼, 부의 정도와 취향에 관계없이 삶의 일부가 되길 원하는 페라리의 방향성이 옷으로 승화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현대자동차도 얼마 전 패션 아이템을 선보였다. 아이오닉5를 비롯해 친환경차 개발에 앞장서는 현대자동차는 ‘친환경자원 선순환’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 일환으로 2019년부터 매년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자동차 폐기물을 활용한 패션 아이템을 출시하는 리스타일(Re:Styl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패션 편집숍인 분더샵, 레클레어와 손잡고 자동차 폐기물과 아이오닉5의 친환경 소재인 리사이클 원사, 바이오 PET 원사로 제작한 재킷, 후디, 팬츠 등 12종의 의류를 런칭했다. 블랙과 카키 컬러 원단에 포켓과 벨트로 기능성을 더한 이번 컬렉션은 젊은 감각에 활동적 스타일이 눈길을 끈다. 업사이클링 트렌드를 알리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의 의미를 더해 MZ세대와 소통하려는 현대자동차의 의지가 느껴진다.







렉서스 New ES 에디션 중 이동주 작가가 버려진 자동차 트렁크 펠트 소재로 제작한 인센스 홀더와 트레이.
MINI가 김태식 작가와 협업해 선보인 피겨.
현대자동차가 분더샵, 레클레어와 함께 진행한 리스타일 프로젝트. 자동차 폐기물을 활용해 12종의 의류를 런칭했다.
페라리 911 GT3 오너만이 구입 가능한 911 GT3 익스클루시브 크로노그래프.


볼보는 안전과 환경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묵묵히 설파해온 브랜드다. 그리고 2040년까지 완전한 순환 비즈니스를 완성한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신차에 친환경 인테리어 소재를 적극 사용하고, 자동차 산업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소재를 고품질의 지속 가능한 공급원으로 대체한다는 것. 최근 그 행보를 뒷받침하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3.1 필립림과 손잡고 차세대 친환경 인테리어 소재로 명명한 ‘노르디코(Nordico)’를 활용한 위크엔드 백을 제작한 것.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텍스타일, 스웨덴과 핀란드 숲에서 얻은 바이오 기반의 소재, 코르크 마개 등으로 만든 혁신적 소재가 가방으로 재탄생했다. 겉보기엔 고급스러운 디자인이지만, 지속 가능하고 자연 친화적인 브랜드 철학을 품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남다르다.
‘즐거움’과 ‘다양성’을 최고 가치로 내세운 MINI의 선택은 피겨다. 국내에서 플레이모빌 커스텀 작가이자 사진가로 활동하는 김태식 작가와 협업한 피겨를 선보였는데, 각양각색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MINI 오너의 특성을 반영한 깨알 같은 디테일이 특징이다. 소장 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 일상에 작은 위로를 전하는 피겨 제작은 MINI다운 발상이다.
한편 특정 모델을 출시할 때 차량의 방향성을 대변하는 아이템을 함께 개발하기도 한다. 브랜드의 주요 모델을 강조하기 위함이자 차량의 아이덴티티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포르쉐는 최근 신형 911 GT3를 출시하면서 이와 좋은 한 쌍을 이룰 워치를 함께 공개했다. 포르쉐 디자인이 제작한 ‘911 GT3 익스클루시브 크로노그래프’가 그것. 극강의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차량만큼 강렬한 인상이다. 오직 911 GT3 구매 고객에게만 판매하는 이 워치는 티타늄 케이스, 직관적 가독성과 스포티한 디자인 다이얼 같은 요소들을 911 GT3의 스타일링에서 옮겨왔다. 스타트와 스톱, 리셋의 프로세싱을 하나로 통일한 플라이백 기능도 탑재했다. 서킷 주행을 즐기는 오너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는 매력 포인트다. 다이얼 컬러는 자신이 구입한 911 GT3의 외관 컬러와 동일하게 맞출 수 있으니, 단순한 워치가 아니라 911 GT3 오너만이 누릴 수 있는 징표인 셈이다.
렉서스는 전동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얼마 전 주력 하이브리드 세단 ‘ES’의 부분 변경 모델을 출시하면서 친환경 모빌리티 계획에 힘을 싣는 중이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고자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3인과 함께 제작한 공예 작품 ‘New ES 에디션’을 선보였다. 김지선·박정근·이동주 작가는 차량의 트렁크 펠트와 서비스 센터에서 사용하고 남은 에어캡 등 자동차 폐기물은 물론 공예 작업 후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해 트레이, 칠보 홀더·코스터, 인센스 홀더 등을 완성했다. 재료에서 느껴지는 날것 그대로의 매력에 공예적 미감을 더해 독창적 오브제가 탄생했다. 업사이클링 공예 작품은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렉서스 ES 모델의 방향성과도 맞아떨어진다.
가끔은 직접적 표현보다 간접적 어필이 더 강렬하게 와닿는다. 자동차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나 이념을 자동차라는 주요 결과물이 아닌, 전혀 다른 아이템을 통해 우회적으로 내비치는 것. 어쩌면 자동차 브랜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장 세련되게 전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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