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 사진의 거장, 랠프 깁슨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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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6

20세기 현대 사진의 거장, 랠프 깁슨

랠프 깁슨의 사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대담한 동시에 낯설다. '2021 라이카 명예의 전당'에 오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21 라이카 명예의 전당’ 수상자 랠프 깁슨. 그는 60년 넘게 라이카와 시대를 초월한 사진 작품을 만들어왔다. © Ralph Gibson

지난 11월 5일, 세계적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가 국제적 사진상 ‘2021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2021 Leica Oskar Barnak Award, 이하 LOBA)’ 수상자를 발표했다. LOBA 올해의 사진상 수상자는 베네수엘라의 아나 마리아 아르벨로 고센(Ana María Arévalo Gosen). 베네수엘라와 엘살바도르 감옥에 수감된 여성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영원한 날(Días Eternos)’ 시리즈로 기록하며 전 세계 여성의 삶을 조명해 국제사회에 뜻깊은 울림을 전했다. LOBA 신인상의 영예는 1994년생 독일 작가 에밀 뒤케(Emile Ducke)에게 돌아갔다. 그는 ‘콜리마 – 노동자, 각고의 길을 조명하다(Kolyma – Along the Road of Bones)’라는 작품으로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을 하던 사람들의 흔적을 파헤치며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은 노동자의 삶을 조명했다.





1975년 ‘Quadrants’ 시리즈.

이날 라이카는 ‘라이카 명예의 전당(Leica Hall of Fame)’ 수상자도 발표했다. 라이카 명예의 전당은 2011년부터 시작된 헌정상으로 스티브 매커리(Steve McCurry), 바바라 클렘(Barbara Klemm), 르네 뷔리(René Burri) 등 사진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올해의 수상자는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랠프 깁슨(Ralph Gibson). ‘초현실주의 사진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는 기록 매체로서 사진을 넘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과감한 구도와 극단적 클로즈업, 일부러 흐리게 만든 노출 등 1970년대 그가 시도한 상징적 기법은 교본이 되어 오늘날까지 사진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독일 베츨라어(Wetzlar)의 라이카 갤러리에선 현재 그의 수상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앞서 이 상을 수상한 동료 작가들과 나란히 설 수 있어 기쁩니다. 이렇게 상을 받으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습니다. 전시는 50여 점의 작품을 선별해 제 작품 세계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작은 회고전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전설의 시작은 그가 1950년대 후반 미 해군의 사진 부서에 배치받으면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커다란 카메라인 K-20을 사용했습니다. 사진의 기본 테크닉을 익힌 귀중한 시간이었죠. 전역 후에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서 공부했습니다.” 랠프 깁슨은 커리어 전반에 걸쳐 다양한 라이카 카메라를 사용해왔는데, 그 시작은 1961년 구입한 라이카 M2였다. “몇 번 촬영해본 것만으로 다른 카메라가 필요 없다고 느꼈습니다. 슬로 필름 시절엔 레인지파인더 라이카가 유일하게 쓸 만한 카메라였죠.”





왼쪽 2013년 ‘Mono’ 시리즈.
오른쪽 1983~1990년 ‘Gotham Chronicles’ 시리즈.

1960년대 랠프 깁슨은 전설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도러시아 랭(Dorothea Lange)과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정립했다. “도러시아 랭과의 만남은 인생 최대 선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만난 위대한 사진작가였어요. 그녀는 대공황 시절 거리로 나가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죠. 그 사진을 본 정부가 가난한 부모에게 일자리를, 배고픈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요. 그녀의 의도는 아주 분명했습니다. 사진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 저는 이것이 사진의 본질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1966년 그는 국제 자유 보도사진 작가 그룹인 뉴욕 매그넘 포토(Magnum Photos)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곧 그만두고 ‘몽유병자(Somnambulist)’ 시리즈를 비롯한 예술 사진 작업에 집중했다. “10년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성장했기 때문에 처음 매그넘에 소개될 당시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죠. 하지만 이 시기 저는 로버트 프랭크와 함께 영화를 찍기도 했습니다. 기존 다큐멘터리 사진과 구별되는 주관성이 개입된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로 알려진 그는 독창성이 아티스트의 전부라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이런 부분을 고민하다 보니 스스로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지각적 행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즉 아티스트로서 일하고 싶었던 겁니다.”





위쪽 1970년 ‘The Somnambulist’ 시리즈. © Ralph Gibson/Leica Hall of Fame Award 2021, Wetzlar 2021
아래쪽 1983~1990년 ‘Gotham Chronicles’ 시리즈. © Ralph Gibson/Leica Hall of Fame Award 2021, Wetzlar 2021

‘데자뷔(Deja Vu)’, ‘바다의 날들(Days at Sea)’ 시리즈 등 그를 대표하는 작품에선 강한 흑백 대비가 돋보인다. 분명 현실을 담아냈지만, 어딘가 초현실적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 어디서 본 것 같지만, 한편으론 기이한 사진을 통해 그는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당신의 질문이 좋은 답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뜻깊은 사진은 사진 자체를 보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사진 자체보다는, 우리가 사진을 바라볼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흑백사진 작업으로 알려졌지만, ‘고섬 크로니클(Gotham Chronicles)’이나 ‘암스테르담(Amsterdam)’ 시리즈 등 컬러 사진 작업도 그에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모두가 흑백사진이 더 극적이고 추상적이라는 걸 압니다. 보통의 컬러 사진은 강렬한 흑백사진만큼 효과가 있죠. 제게 컬러 사진은 다루기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인 부가 언어입니다.”
랠프 깁슨은 2013년 작업한 ‘Mono’ 시리즈를 시작으로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한 사진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아날로그카메라로 작업하다 디지털카메라로 바꾼 건, 회화 작가가 조각가로 전업한 것 같은 큰 변화로 느껴진다. “오랜 기간 디지털카메라에 회의적 입장이었습니다. 라이카 모노크롬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죠. 처음 그 카메라를 받았을 때 사용법을 몰라 막막하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곧 밖으로 나가 맨홀 뚜껑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자전거 한 대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나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카메라 뒷면 디스플레이를 보고 ‘내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Mono’ 시리즈는 디지털카메라 사용법을 익히는 한 남자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기술에 흥미를 느낀 그는 암실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작업 공간을 개조했다. 하지만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랠프 깁슨만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다만 아날로그카메라 효과를 모방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디지털카메라를 통해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어요.”





2016년 ‘The Vertical Horizon’ 시리즈.

랠프 깁슨을 언급할 때 음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훌륭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기타라는 악기의 유려한 선을 탐구한 2003년 ‘Light Strings’ 시리즈로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은 물론 2000년대 후반 영화와 사진, 음악을 동시에 선보이는 라이브 퍼포먼스 ‘Ich Bin die Nacht’를 펼쳐 보였다. “음악과 사진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음악과 멜로디, 사진과 현실의 관계가 그렇죠. 사진을 찍을 때 현실을 담지 않아도 매체적 요구 사항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향이 지나치면 사진과 본질에 도전하게 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멜로디를 도외시하면 소리 혹은 소음처럼 느껴지니까요. 제게 음악과 사진은 똑같이 중요한 예술입니다.”
얼마 전 랠프 깁슨은 [Refractions 2] 출판 준비를 마쳤다. 60년 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온 그의 사진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집.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 사진이 무엇인지 물었다. “1839년 사진이 발명된 후 180여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어떻게 찍는지는 알겠는데 이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는 사진은 전달 체계(delivery system)라고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니까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1961년~1962년 ‘San Francisco’ 시리즈.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제공 라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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