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현대가 준비한 미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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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07

갤러리 현대가 준비한 미래

메타버스, 가상화폐, NFT 등 앞으로 점점 디지털화될 일상을 준비하는 이때 갤러리 현대 도형태 대표는 디지털 아트 NFT 플랫폼 ‘에트나(ETNAH)’를 런칭해 주목받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작가가 없으면 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우물을 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갤러리스트란 작가와 함께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에요.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잘 서포트하고, 그것을 프로모션해 판매까지 이어가야 하기에 그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하죠.”

1970년, 종로구 인사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상업화랑 ‘현대화랑’이 개관했다. 도형태 대표의 어머니 박명자 회장이 스무 살이 되기 전 이대원 화백의 서울 소공동 반도화랑에서 일하며 미술계와 인연을 맺은 지 9년 만에 설립한 화랑으로, 갤러리 현대의 출발이자 모체다. 올해 52주년을 맞은 갤러리 현대는 이중섭·박수근·장욱진·유영국·천경자·김환기·백남준 작가 등 한국 근현대미술의 뿌리가 된 원로 작가부터 문경원·전준호·이슬기 등 젊은 작가까지 심도 있는 전시를 국내외 무대에 소개해왔다. 또한 안드레아스 거스키·토마스 데만트·로버트 인디애나·아이웨이웨이·온 가와라에 이르는 유명 작가의 전시를 통해 세계 미술계를 조명했다. 2005년에는 케이 옥션을 세워 미술품 경매 시장 활성화에 앞장서며, 명실공히 반세기 넘게 한국 미술 시장의 중심에서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도형태 대표는 뉴욕 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프랫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뒤 1998년 갤러리 현대가 아트 바젤에 참여했을 때 갤러리 업무에 참여하기 시작해 2년 뒤 갤러리 현대에 합류했다. 2006년에는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젊은 작가들의 기획 전시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등 갤러리 현대의 본격적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했다. 도 대표는 갤러리 현대를 운영하는 동시에 작가를 육성하고 그들을 위한 전시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두아트를 서울과 베이징에 설립했다. 2010년에는 개성 있고 진취적인 국내외 작가를 위한 프로젝트 전시 공간 16번지(16bungee)를 오픈해 예술의 다양성을 적극 수용하는 데 앞장섰다. 예술의 실험성과 대중성을 함께 모색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늘 한발 앞선 도형태 대표가 올해 야심 차게 발표한 것은 디지털 아트 NFT 플랫폼 에트나(ETNAH). 클레이튼 파운데이션·샌드박스 등 블록체인과 메타버스를 리딩하는 다양한 파트너사와 협력해 구축한 에트나는 오는 5월 베타버전을 오픈하고 3개월간 시범 운영한 뒤 8월 중 정식 버전을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NFT 작품의 본질과 메커니즘을 온전히 이해한다면 이것을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도 대표를 만나 갤러리 현대와 작가, 컬렉터 사이에 구축된 굳은 신뢰가 앞으로 디지털 아트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오프라인 갤러리에서는 무엇이 더욱 중요해지는지, 갤러리스트로서 어떤 마인드로 20~30년 후를 준비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갤러리 현대가 운영하는 강남 VIP 프라이빗 스페이스 전경. 갤러리가 소개하는 작가들을 포함해 세계적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대표님은 2006년 대표이사직에 취임했다가 2013년 부사장으로 직책을 변경하고, 2016년 다시 대표이사직에 취임하셨습니다. 2006년과 2016년을 비교할 때 스스로의 모습에서 차이점을 발견하셨나요? 네, 2006년에는 어머니가 창업한 패밀리 비즈니스를 잇는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솔직히 준비가 덜 된 상태였는데, ‘내가 꼭 맡아서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죠. 2016년에는 그런 생각 대신 그동안 준비해온 것을 본격적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어머니의 경영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제 방식대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젊은 경영을 해야겠다는 명확한 판단이 섰죠.

프랫 아트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뒤 와인과 요리를 공부하러 파리에 갔을 때 외환 위기가 닥쳤고, 1998년 아트 바젤에 갤러리 현대가 참가하는 과정에서 갤러리 일에 처음 참여했습니다. 2000년부터는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도왔고요. 평소 가업을 잇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계셨나요? 어릴 때 어머니는 항상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할머니가 절 키워주셨는데, 항상 “네가 화랑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늘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술 작품을 가까이하는 환경에서 자란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안목과 감수성에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요. 특히 키워주신 할머니와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기억나는 추억이 있나요? 집 안에 항상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제가 “저 그림은 내 거예요. 그러니까 나중에 저건 나한테 주셔야 해요”라고 자주 이야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그림이 있을 때 한 개를 골라보라고 하면, 형은 “저 중에서 뭐가 제일 비싸요?” 하고 묻는데, 저는 그냥 좋아하는 걸 택했던 것 같아요. 형이랑 저는 그림 보는 눈이 서로 달랐죠.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이 미술 공부를 권한 적이 있나요?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안목이 있다고 믿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무엇을 공부해라, 하지 마라는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어요. 미술관에 가라, 미술 관련 책을 읽어라, 미대에 가라, 이런 말도 하신 적이 없죠. 대신 자연스럽게 제가 가는 방향의 길을 열어주셨어요. 저는 저대로 관심과 흥미대로 움직이다 보니 미술에 대한 안목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어머니 덕분에 많은 작가와 식사를 하고,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도 대표님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가 있을까요? 1990년대 미국 유학을 가서 만난 백남준 선생님이요. 그분은 제게 멘토 그 이상이었고, 아버지와도 같은 분이었죠. 작업실에 놀러 가서 가끔 청소도 해드리고 선생님이 생전에 좋아하신 햄버거를 같이 먹으며 수다 떠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전 그분을 천재라고 생각해요. 5개 국어를 하고 머리가 비상해서가 아니라, 시대에 맞게 살면서도 미래에 대한 어마어마한 예측과 예언을 했다는 점에서요. 선생님은 저랑 수다를 떨다가도 한마디씩 툭툭 던졌는데, 저는 당시에 그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것 같아요. 선생님 덕분에 비디오아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요. 솔직히 갤러리 현대가 운영하는 강남 VIP 프라이빗 스페이스 건물 1층에 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한 것도 백남준 선생님의 영향이 큽니다.

2세대 갤러리스트를 보면 1세대 창업주의 뜻을 잇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명자 회장님은 대표님에게 갤러리스트로서 어떤 가르침을 주셨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가 없으면 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우물을 파라”라는 철학입니다. 갤러리스트란 작가와 함께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에요. 작가가 좋은 환경에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잘 서포트하고, 그것을 프로모션해 판매까지 이어가야 하기에 그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하죠. 그렇기에 작가와의 관계,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가 이번에 시작한 NFT 관련 스타트업도 작가를 위한 일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50년 넘게 해온 것을 어떤 방법으로 50년을 이끌어가야 할까’ 하는 중대한 모멘텀에서 NFT라는 걸 알게 됐고, 그것이 소름 끼치도록 신기하고 매력적이라는 걸 깨달았죠. NFT는 7년 전 처음 접했지만, 실제로 공부한 지는 2년 정도 됩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났고요. 그분들 덕분에 이렇게 회사를 만들어 무난하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기존 갤러리의 비즈니스 성패를 가르는 것은 튼실한 가족 경영과 작가, 컬렉터와의 신뢰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대표님은 미래 세대의 갤러리 비즈니스 방향을 구축하는 데 NFT가 중요하다고 보신 거죠? 지금 당장 NFT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죠. 메타버스나 NFT에 관심 있는 연령대는 10대와 20대예요. 그들이 10~20년 뒤 우리 플랫폼을 보고 “아 내가 10~20년 전에 들어가서 본 작품이 여기 있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예요. 제가 어릴 적 어머니가 운영하던 화랑에서 컬렉터들이 당시 월급 3000원을 털어 작품을 사는 걸 봤어요. 사실 지금 메타버스에서 젊은 층이 그러고 있다고 봐요. 오프라인에서도 그들은 다른 곳에 쓸 돈을 아껴 몇백만 원에 달하는 한정판 나이키를 사죠. 그러한 성향을 지닌 세대에게 에트나는 충분히 매력적인 플랫폼이 될 수 있어요. 에트나를 통해 장기간 NFT에 대한 교육을 시키면 유저 입장에선 작품 보는 눈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고, 메타버스나 NFT 작품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죠. 그들이 나중에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됐을 때, 디지털 아트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생각을 확장하게 될 것입니다.

NFT 작품은 분명 트렌드지만,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대중도 있습니다. 대표님은 NFT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떠셨나요? NFT를 바라보는 시각은 반반이라고 봅니다. NFT 시장의 크기나 영향력 등에서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NFT 자체의 기능을 이해하면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Nonfungible(대체 불가능)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알고 그걸 왜 만드는지 알면 NFT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있죠.





위쪽 야외 전시 공간에 설치된 로버트 인디애나의 회화와 설치 작품. 일반 관람이 가능하며, 올 하반기 케니 샤프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아래쪽 갤러리 현대 강남 스페이스 1층에 자리한 너비 18m, 높이 4m로 국내 최대 크기의 3D LED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미술 감상이 가능하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인상주의 화가 작품을 생생하게 전하는 미디어 아트 전시 <라스팅 임프레션즈>가 열려 화제를 모았다.

알타바 그룹의 구준회 대표와 함께 조인트벤처 ㈜에이트(AIT)를 설립하고 에트나를 발표했습니다. 디지털 아트 NFT 발행과 거래, 플랫폼 운영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에이트 설립을 결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구준회 대표는 대학 때 친구인데, 10여 년간 보지 못하다 2년 전 다시 만나 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자는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알타바 그룹은 가상현실, 3D 모델링과 관련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입니다. 그 기술을 아트에 적용해 플랫폼을 만들었죠. 이 사업을 도모하면서 이익의 10%는 무조건 한국 근현대미술 발전을 위해 쓰자고 서로 협의했어요.

지난 2월 기자회견 때 에트나에서 선보일 NFT 1차 작가 리스트를 공개했습니다. 김환기, 이중섭, 이건용, 라이언 갠더, 곽인식, 이승택, 강익중, 문경원, 전준호 작가 등이 에트나에서 NFT 작품 발행을 준비 중이죠. 작가들은 이러한 작업 방식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김환기 작가나 이중섭 작가는 유족과 소통했고, 다른 작가에게는 새로운 세상에서 많은 관람객에게 NFT 작품을 교육적으로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득했어요. 이미 NFT 작품에 대해 이해한 분도 있지만, 아직 잘 모르는 분도 계셨죠. 하지만 “도형태 대표가 한다니 나도 할게”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지금 여러 작가와 함께 많은 고민을 나누면서 작품을 구상 중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호 작가 같은 경우 원래 작품도 이미 디지털라이즈된 것이기에 더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각자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열심히 토론하고 있습니다.

갤러리 현대의 모든 작가가 NFT 작품 제작을 반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작고한 작가의 유족들은 저와 비슷한 세대가 대부분이라 대화가 잘 통해요. 오히려 저작권에 대한 집념이 강해 에트나에 궁금증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일수록 앞으로 에트나에서 작품을 글로벌하게 디지털화된 방식으로 관람객에게 선보인다는 계획을 설명하면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함께 일하고 싶어 하세요. 문제는 방식에 대한 것이죠. 예를 들어 컨셉추얼 아티스트의 작품은 엔지니어와 컨셉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재미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김환기·김창열 작가처럼 평면 회화 작가의 작품이에요. 작품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서로 많은 토의가 필요합니다.

에트나가 미술 시장에 정착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요? 저는 1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5월에 베타버전을 발표하고, 8월 말에서 9월경 풀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한국 미술계가 활황을 이루는 저변에는 젊은 컬렉터의 유입이 있습니다. 대표님은 에트나가 작가 활성화뿐 아니라 새로운 컬렉터의 유입이나 수익 모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예측하시나요? 제 생각엔 NFT 작품의 개념을 설명하고 구매 결정을 이끌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럼 NFT 작품은 어떤 방법으로 구매할 수 있는가’ 하는 기술적인 부분이죠. 디지털상에서 자산 지갑을 만들고 암호 화폐를 구입하는 등 복잡한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 구조를 어떻게 잘 짜서 편안하게 작품을 구입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지 등에 대해 컬렉터에게 명확한 가이드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해요. 기존 컬렉터에게는 지금껏 우리가 보던 실물 작품과 NFT 작품을 어떻게 함께 즐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국내 갤러리 중에서는 이런 플랫폼을 구축한 갤러리가 처음이죠? 네. 저는 이 플랫폼을 글로벌하게, 그리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공간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다른 갤러리나 디지털 플랫폼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우리 플랫폼을 이용해 작가들을 프로모션하고, 우리나라 작가와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해외에 알린다면 그것이 바로 에트나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20~30년 후 미술 시장을 어떻게 예측하시나요? NFT 분야는 규모 면에서 솔직히 크게 성장하고 있어요. 앞으로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새로운 장치가 나오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그런 경우 오프라인의 성장성은 둔화될 수 있지만, 집중도는 오히려 엄청 커질 거예요. NFT로 오프라인 시장이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할 정도라면, 반대로 오프라인 작품의 가격이 일반 사람은 구매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올라 대중들이 컬렉션을 하는 기회가 줄어들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에트나가 앞으로 글로벌 미술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시나요? 에트나를 통한 제 꿈은 명확해요. 제가 글로벌하게 판을 짜면 갤러리와 작가들이 그 안에서 서로 네트워킹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투자하면 좋겠어요. 순수예술가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아트를 선보이는 최고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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