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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05

동네 한 바퀴

용산의 핫 플레이스, 용리단길과 백빈건널목을 걸었다.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전시 콘텐츠까지 풍부한 이곳의 인기는 한낱 유행으로 그치지 않을 듯하다.

레트로 감성이 살아 숨 쉬는 백빈건널목.

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한 동네를 꼽으라면 단연 용산이다. 지난 3월 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 이전을 발표하면서 온 국민의 시선이 이곳으로 쏠린 것.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최근 이슈 말고도 용산은 주목할 이유가 많은, 그래서 진즉에 힙스터가 모이는 성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 중심에는 ‘용리단길’과 ‘백빈건널목(땡땡거리)’이 있다.
용리단길은 국방부 후문 쪽, 그러니까 삼각지역에서 신용산역 사이의 골목 상권을 지칭한다. 에디터는 용리단길을 걸을 때마다 감개무량한데, 2014년 국방부에 복무할 때만 해도 이곳은 오래되고 조용한 주택가였다. 물론 평양집과 원대구탕 같은 ‘네임드’ 노포를 비롯해 군인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가게가 제법 있었지만, 교통 좋은 것 빼고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요소가 부족했다. 그런데 대단지 주상복합아파트와 신축 오피스 상권이 완성되고, 결정적으로 2018년 아모레퍼시픽그룹 세계 본사가 들어서며 큰 변화가 생겼다. 골목 사이사이에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속속 들어선 것. 홍콩식 중식을 맛볼 수 있는 ‘꺼거’, 여성 최초 국가대표 바리스타 유연주가 운영하는 로스팅 카페 ‘쿼츠’ 등이 대표적 예다. 코로나19는 명동을 위시한 기존의 대규모 상권을 초토화시켰지만, 실력과 개성을 갖춘 용리단길의 젊은 가게에는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이 늘었다.
용리단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백빈건널목은 또 어떤가. 조선시대 궁에서 퇴직한 백 씨 성을 가진 궁녀가 이 근처에 살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이곳은 경의중앙선과 경춘선 화물열차가 통과하며 울리는 신호음 덕분에 생긴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하루 300여 차례 어디선가 역무원이 나타나 건널목을 막아서는 모습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찻길주점’ 같은 동네 술집에서 땡땡 소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낭만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건만,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경찰수업> 촬영지로 알려지며 유명해졌다. 이렇게 유니크한 곳에 인증샷 남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리고 새로운 가게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 다행인 점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것이 아닌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꽤 괜찮은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20대 청년과 40대 아저씨, 60대 할아버지가 나란히 걸어도 위화감 없는 신구의 조화는 백빈건널목과 용리단길만의 진짜 매력이다.
이 동네를 주목할 이유는 또 있다. 거리의 멋과 음식 맛 이상의 즐거움이 기다리는 것. 몇 년 사이 용리단길과 백빈건널목 주변에 생겨난 문화 예술 공간의 존재는 전국 각지의 양산형 ‘~리단길’과 차별화된, 이 동네를 몇 번이고 방문하게 하는 이유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지난 3월 개관한 용산역사박물관이다. ‘뉴비’를 먼저 언급한 이유는 용산에 퇴적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 외관부터 포스가 남다른데, 100년 역사의 용산철도병원을 레노베이션했기 때문이다. 붉은 벽돌과 내부 창호, 스테인드글라스, 벽면 타일을 그대로 보존해 진짜 레트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건물 가득 채운 콘텐츠도 알차다. 상설전 주제는 ‘보더리스 용산(Borderless YongSan)’으로 용산 대표 콘텐츠인 철도·군사·다문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한양의 길목이라는 입지적 특성에 세곡이 집결되어 생긴 용산의 변화상, 미군이 용산에 주둔하며 이태원 일대에 생긴 기지촌과 남산 자락에 형성된 해방촌 이야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모여 살며 형성된 새로운 문화까지! 특히 에디터는 상설전을 관람하며 오랫동안 품어온 의문, 왜 용리단길에 표구사가 많은지를 해소할 수 있었다. 과거 미군이 삼각지에 있던 화랑에 초상화를 주문하거나 전통 그림을 사 가면서 화랑 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렇듯 용산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전시를 보고 거리를 나서면 익숙하던 풍경도 달리 보인다.





위쪽 용산의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용산역사박물관.
아래쪽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Andreas Gursky]전.

다음으로 소개할 공간은 하이브 신사옥 지하에 자리한 하이브 인사이트(Hybe Insight). ‘음악으로 감동을 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나누며 삶의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하이브의 지향점이 녹아든 복합 문화 공간이다. BTS 팬이 아니어도 한 번쯤 방문을 권하는데, K-팝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오감으로 느낄 수 있어서다. 지하 2층 ‘네트워킹 라운지’에서 관람 안내를 받은 후 빛과 소리가 싱크되어 몰입감을 선사하는 ‘인트로: 포털’을 건너면 ‘이노베이티브 사운드(Innovative Sound)’와 ‘다이내믹 무브먼트(Dynamic Movement)’, ‘인스파이어링 스토리(Inspiring Story)’라는 전시 공간이 나온다. 프로듀서와 아티스트의 작업 공간을 360도 카메라로 섬세하게 촬영한 이미지를 이리저리 움직여 들여다보고, 아티스트의 음악에 스며든 스토리를 독창적 방식으로 구현한 구조물 등을 살피다 보면 미술관도 이제 긴장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8.5m 높이의 트로피 월을 감상하고 지하 1층으로 올라가면 음악을 보다 넓은 감각으로 즐길 수 있는 체험 전시가 준비되어 있다. 기획전도 열리는데, 그라피티 아트의 전설 푸투라(Futura)와 BTS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을 선보이는 [Humble Souls]가 5월 29일까지 열리니 참고할 것. 100% 사전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되기에 충동적 방문은 어렵지만, 오히려 그래서 모바일 앱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성으로 작품 해설을 듣는 아티스트 도슨트 서비스와 일부 전시 공간에서 아이템을 찾는 AR 미니 게임 등을 쾌적한 환경에서 누릴 수 있다.
용리단길과 백빈건널목을 거닐면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용산의 랜드마크인 아모레퍼시픽그룹 세계 본사에 자리한 이 미술관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선대 회장이 한국의 전통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여성, 화장, 녹차와 관련한 공예품과 도자기를 수집한 것에서 출발했다. 1979년 태평양박물관을 개관해 활동을 시작했고, 30년이 지난 2009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렀다. 2018년 새롭게 문을 연 후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 메리 코스(Mary Corse) 등 세계적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해온 이들은 또 한번 역대급 전시를 준비했다. 바로 현대사진의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의 개인전. ‘파리, 몽파르나스(Paris Montparnasse)’와 ‘99센트(99 Cent)’ 같은 기념비적 작품부터 그간 어디서에도 공개하지 않은 신작 두 점까지 총 40점을 선보인다. 공장이나 아파트 같은 현대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를 포착해 사회 속 개인의 존재를 숙고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에서 사진 장르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8월 14일까지 열리는 이 개인전은 올 상반기 최고 전시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오는 6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완료되면 한국의 새로운 중심 용산, 그리고 용리단길과 백빈건널목을 찾는 사람이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니 망설일 시간이 없다. 계절의 여왕 5월, 조금이라도 더 조용하고 여유로울 때 느긋한 마음으로 동네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점심은 힙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은 정감 가는 노포에서, 그 사이 시간을 전시 관람으로 채운다면 완벽에 가까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용리단길 인근의 아모레퍼시픽그룹 세계 본사. ⓒAmorepacific





하이브 인사이트 전시 풍경.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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