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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1

달콤한 나의 도시

언제부턴가 무채색 도시 서울이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네의 매력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앞장서온 도시 문화 기획자,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를 만났다.

‘캐비넷클럽’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연희동 깊숙한 골목길을 헤매던 중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는 대저택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입장한 것. 공간에선 자연의 안락함과 크리에이터의 독창적 아트워크, 예술품, 동네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루프톱 카페를 모두 즐길 수 있었다. 궁금했다. 아무리 서울 그리고 연희동이라지만, 이렇게 외진 곳에 엄청난 스케일로 온갖 ‘힙’을 모아놓은 용자가 누구인지.
바로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다. 캐비넷클럽은 빙산의 일각일 뿐, 방앗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식음료 편집 상점 ‘연남방앗간’,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크리에이터의 열린 작업실이자 쇼케이스 공간 ‘연남장’, 건강한 반려 문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크리에이티브 라운지 ‘연희대공원’ 등도 어반플레이가 운영한다. ‘연’ 자 돌림인 것 말고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공간인데, 어떻게 한 회사가 그 많은 다양성을 포괄하는 걸까? “어반플레이를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디벨로퍼’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는 크리에이터 개인을 중심으로 다변화되고 있는데, 저희는 그들이 만든 콘텐츠가 소비자에게 원활히 닿게 하는 역할을 하죠. 그런 역할에 집중하다 보니 다루는 콘텐츠가 늘고 사업 영역도 확장됐고요. 2018년 연남방앗간 오픈을 시작으로 여러 공간을 운영하면서 ‘공간 콘텐츠 전문 회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지자체 및 브랜드와 지역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아는 동네>라는 미디어로 로컬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리고 ‘로컬’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한 계기를 알려면 건축학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떤 콘텐츠가 채워질지 모르는 채로 건물을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면 아무리 설계가 훌륭해도 그 안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겐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죠. 이러한 고민은 자연스레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학부 졸업 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공부할 당시엔 스마트폰 보급과 맞물린 이커머스의 성장을 눈여겨봤다. “장기적으로 생활 편의 시설은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만 살아남겠더군요.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건 실력 있는 스몰 브랜드고요.”





읽고 쓰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 작업실이자 편집 상점인 ‘기록상점’.

어반플레이의 출발점은 2013년 연남동 작은 작업실에서부터. “홍대 인근에 큰 건물이 많은 것과 달리 단독주택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2010년 공항철도가 뚫리고 게스트하우스와 공방이 들어서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죠. 이러한 연남동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아볼 거라 생각했습니다.” 연남동과 그 옆 연희동까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데에는 플리마켓과 전시 등으로 연남동 곳곳을 체험하는 문화 프로젝트 ‘숨은 연남찾기’(2014), 맛집 음식을 할인된 가격에 맛보고 문화 공간을 탐방하며 스탬프를 찍는 등 이색적 체험을 제공하는 ‘연희, 걷다’(2015~)를 개최한 어반플레이의 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한 공간 외에도 동네 집수리 컨시어지 서비스를 하는 철물 편집숍 ‘정음철물’, 스토리텔러를 위한 콘텐츠 창작 및 교류 공간 ‘기록상점’ 등 연남동과 연희동 곳곳에 어반플레이의 문화 전파 기지가 구축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몇 년 사이 이들의 활동 영역은 성수, 강남, 부산으로 넓어졌다. 균형 잡힌 삶을 제안하는 웰니스 스트리트 ‘스테이블 성수’, 영도의 문화 공간 프로젝트 ‘피아크’가 대표적 예. “특별한 헤리티지를 지닌 동네를 선호해요. MZ세대가 만들어내는 창의적 콘텐츠가 그곳만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면서 스파크를 일으키거든요.” 어반플레이는 민간기업이지만, 침체된 동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도시 재생’이라는 공공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 주도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대부분 단발성에 그치는 반면, 어반플레이는 매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목표 설정에 차이가 있어요. 정부나 지자체 주도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예산을 잘 쓰는 게 중요하죠.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고 가정해봅시다. 예산을 태워 공연자에게 캐스팅비를 주고 무료 공연을 선보이면 그 무대를 즐긴 일부 사람들은 좋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날 예산이 끊기면 공연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죠. 반면 어반플레이는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요. 공연자와 열심히 준비한 무대가 반응이 좋으면 다음에는 더 큰 공연장을 잡는 거죠. 그래야 서로 동기부여가 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참여자 모두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게 노하우라면 노하우입니다.”





위쪽 취향의 발견과 몰입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아트 브랜드 ‘캐비넷클럽’.
아래쪽 ‘스몰글라스’는 크리에이터의 공예 작품과 함께 오감으로 미식을 경험하는 새로운 형태의 다이닝 라운지다.

문득 이런 걱정도 들었다. 어반플레이가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지역 활성화에 성공하더라도 그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크리에이터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유발자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어봤죠.(웃음) 지속 가능한 로컬 커뮤니티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반플레이의 공간 프로젝트 대부분은 건물 임대가 아닌 건물주와 매출을 일정 비율로 나누는 매출 셰어 방식으로 진행해요. 건물주, 어반플레이, 크리에이터가 공동 운명체인 거죠. 장사가 잘되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고 크리에이터를 내쫓는 일이 흔했어요. 건물주에게 수익이 집중되는 구조라 발생하는 문제인데, 어반플레이가 건물주와 크리에이터 사이에서 좀 더 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겁니다.” 건물주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닐 수 있지만, 높아지는 공실률이 이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남양주나 양평까지 가서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졌죠. 도시의 평범한 건물과 카페에는 사람이 없고요. 콘텐츠가 사람을 모으고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시대가 온 겁니다. 최근 좋은 크리에이터를 소개해달라는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인테리어를 지원하는 건물주도 늘고 있습니다.” 그는 코로나19가 공간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속화했다고 덧붙였다. “공간 비즈니스는 콘텐츠 중심으로 흘러갈 겁니다. 그만큼 경쟁력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대우받을 거고요. 앞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지리라 생각합니다.”
홍주석 대표가 공들여 진행 중인 빌리지 프로젝트도 그러한 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간 공간을 하나씩 만들었다면, 이제는 한 지역을 선정해 그에 맞는 공간을 개발하고 크리에이터에게 투자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동네만의 색깔을 지닌 브랜드들이 계속 탄생할 수 있는 하나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죠. 수원, 제주를 비롯해 전라남도와 강원도에서도 프로젝트를 추진하니 조만간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어반플레이의 시선은 어디까지 닿아 있는 걸까. “한국 도시들은 획일적인 편이잖아요. 저는 이 문제를 콘텐츠라는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스몰 브랜드를 위해 어반플레이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스몰 브랜드를 키워내 저희 크루로 만들고, 이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도록 돕는 것이 제 꿈이자 어반플레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입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JK(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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