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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6

열정으로 가득찬 도시

지루한 펜데믹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캘리포니아의 초여름. 이곳에 알렉산더 맥퀸과 퀴페이의 패션 세계가 펼쳐진다.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과 중국의 국민 디자이너 궈페이의 패션 세계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 County Museum of Art, LACMA)과 샌프란시스코 미술관(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FAMSF)을 수놓았다. 두 전시 모두 미국 서부 지역에선 관람객과 처음 만나는 자리인지라 미술·패션업계와 대중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 설치 전경. © Museum Associates/LACMA

영감과 창작의 여정을 따라가다
‘앙팡 테리블’, ‘패션계의 훌리건’, ‘전위적이고 창조적인’ 등의 수식어와 함께 패션계의 독보적 존재로 알려진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1969~2010). 현재 LACMA에서는 2010년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실험적 도전을 멈추지 않은 맥퀸의 디자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이 열리고 있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탄생한 그의 디자인 70점과 미술관의 영구 소장품을 함께 선보이는 이 자리를 기획한 큐레이터 클라리사 에스게라(Clarissa Esguerra)와 미카엘라 한센(Michaela Hansen)은 이에 대해 “회화, 조각, 사진, 장식미술 등 미술사의 맥락에서 영감을 받은 맥퀸이 이를 어떻게 디자인에 녹여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LACMA 레스닉 파빌리온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건 과거 맥퀸이 패션쇼에 사용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다. 전시 동선을 비교적 느슨하게 구성한 덕분에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마치 런웨이를 누비는 듯한 느낌이다. 리듬에 몸을 맡기며 걷다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그의 유작 컬렉션 ‘Angels and Demons’(2010)의 황금색 자카드 재킷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 속 천상의 천사와 타락한 천사의 날개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재킷은 맥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탄생한 결과물이라 느낌이 남다르다. 더욱이 그 옆에 16세기 르네상스 예술가 얀 만데인이 대리석으로 조각한 천사상까지 있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뇌하게 한다.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흰색 무대 위에서 달리기를 하는 듯한 역동적 몸짓의 마네킹을 만난다. 이는 시드니 폴락의 영화 <그들은 말을 쏘았다>(1969)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컬렉션 ‘Deliverance’(2004)다. 경제공황 시절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젊은이들이 상금을 손에 쥐기 위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춘 댄스 마라톤을 담아낸 작품은 삶의 비전과 목적을 상실한 막막함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실제 이 작품은 영화 클립과 당시 맥퀸의 런웨이 사진을 병치해 보는 이의 시선을 한참 머물게 한다.
전에서 특히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건 프란스 푸르부스 2세가 그린 초상화 ‘프랑스 왕 루이 13세’(1616)와 맥퀸의 오트 쿠튀르 드레스 ‘Widows of Culloden’(2006)이 만난 장면이다. 루이 13세가 입은 의상의 정교한 골드 레이스와 러플은 반짝이는 골드 시폰과 섬세하게 수놓은 비즈로 이루어진 맥퀸의 순백 드레스에 영향을 준 듯하다. 이와 관련해 미술관 디렉터 윌리엄 애넌버그(William Annenberg)와 관장 마이클 고반(Michael Govan)은 이렇게 말한다. “맥퀸의 의상과 함께 그가 참고 자료로 활용했을 다방면의 예술 작품을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이는 관람객이 옷 자체만 감상할 때보다 폭넓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이 전시는 예술 작품을 찬찬히 따라가며 디자이너의 머릿속을 이해하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전 설치 전경.
Photo: Drew Altizer. Courtesy of the FAMSF

증오와 상처로 얼룩진 모두에게 치유를
배우 장쯔이와 판빙빙, 팝 가수 리애나 모두 그의 옷을 입고 레드 카펫을 걸었다. 또 새로운 중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려 야심 차게 준비한 2008 베이징 올림픽 공식 행사의 여성 의상도 그가 디자인했다. 그는 바로 중국의 국민 디자이너 궈페이(Guo Pei, 1969~)다. 궈페이는 특유의 상상력에 정교한 공예와 호화로운 중국 전통 자수, 틀을 벗어난 봉제 테크닉, 중국 황실 유산과 유럽 궁중 문화 등을 덧입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컬렉션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는 디자이너다.
지금 FAMSF에서 열리고 있는 는 궈페이의 지난 20년을 들여다보는 자리다. 큐레이터 질 달레산드로(Jill D’Alessandro)의 진두지휘 아래 FAMSF는 쿠튀르 궁전으로 탈바꿈했으며, 각각의 전시관은 ‘자수, 건축, 꽃의 정원, 판타지’라는 주제에 걸맞은 궈페이의 디자인과 미술관 소장품으로 가득 채웠다. 이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세 가지다. 첫 번째 주인공은 ‘Legend of Dragon’ 컬렉션에서 선보인 오트 쿠튀르 의상 ‘Phoenix’ 그리고 바로크와 로코코 작품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당당히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 삼사라(Samsara) 쇼의 ‘Dajing’이다. 수천 개의 빛을 발하는 보석과 화려한 금사가 인상적인 오간자 드레스의 밑단이 커다란 꽃잎을 하나하나 붙여 만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002 Nights’ 컬렉션의 푸른빛 도자기가 떠오르는 드레스 ‘Porcelain’도 눈에 띈다. 과거 유럽으로 수출된 중국 도자기들이 곁에 있어서일까? 드레스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선이 고운 중국 청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Amazing Journey in a Childhood Dream’ 컬렉션에서 선보인, 촘촘한 오리가미(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중국식 극장 복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어린 시절 작가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모티브가 된 복장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디자인한 컬렉션이라 그런지 동심의 천진한 상상력을 더 넣은 모양새다. 여담이지만, 문화혁명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관통한 어린 시절, 궈페이는 외할머니에게 들은 중국 고전과 황실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을 키웠다고 한다.
미국에서 처음 열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궈페이는 “관람객은 아트 피스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성장 배경에도 상당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제 작품은 조국이 제게 미친 영향의 산물입니다. 아름다운 중국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오해와 편견의 중국이 아닌, 다른 모습의 중국을. 예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근 미국에선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전시가 증오와 상처로 얼룩진 모두에게 미약하나마 치유의 장이 되길 바란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김문영(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LACMA, FAM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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