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글쓰기에 진심인 편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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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4

몽블랑, 글쓰기에 진심인 편

오랜 준비 끝에 독일 함부르크에 문을 연 몽블랑 하우스에 <노블레스>가 다녀왔다.

필기구 패키지를 오마주한 몽블랑 하우스.

글쓰기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 있으니, 바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1839년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Edward Bulwer Lytton)이 발표한 희곡 <리슐리외 또는 모략(Richelieu; Or the Conspiracy)> 속 대사인 이 문장은 ‘글쓰기와 사상이 무력과 폭력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사실 물리적으로는 칼이 펜보다 몇 배는 강하다. 체감이 안 된다면 칼날에 베일 때와 펜촉에 찔렸을 때 느낀 통증을 비교해보자. 비슷한 맥락으로 맥아더 장군은 누군가 펜이 강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가 아직 자동화 무기의 위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맥아더는 펜을 쥔 국가 수뇌부에 의해 경질됐다. 또 다른 역사도 있다. 식민 지배라는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한 것은 어느 시인의 펜 끝에서 완성된 글이었다는 사실. 이처럼 칼은 살을 베지만, 글은 마음을 엔다.
엄지손가락의 짧은 리듬에 맞춰 작성한 텍스트가 주를 이루는 시대, 매일 3000억 개 이상의 이메일이 전송되는 시대에 웬 손으로 쓰는 글이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를 화두로 던진 건 글쓰기에 진심인 몽블랑 지분이 절대적이다. 알프스산맥의 ‘몽블랑(Mont Blanc, 흰 눈이 덮인 산)’에서 이름을 본뜬 몽블랑은 1906년부터 만년필을 제조해온 회사다. 그러나 처음부터 몽블랑이란 회사명을 등록하진 않았다. 몽블랑이 전면에 등장한 시점은 높은 품질의 만년필을 강조하기 시작한 1909년. 이때를 기점으로 명품 필기구를 주인공으로 한 전설의 서막이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블랑 만년필은 닙(펜촉)에 18K와 14K를 사용하며, 닙 위에 정교하게 각인을 하고, 이리듐 소재의 닙 끝부분을 완벽하게 다듬는 작업 모두 손으로 한다. 이로 인해 만년필 한 자루를 만드는 데 6주 이상 시간이 걸릴 정도. 이렇게 장인정신으로 점철된 만년필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어니스트 헤밍웨이·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작가는 물론 빌 게이츠·워런 버핏·존 F. 케네디 같은 저명인사가 애용했으니 몽블랑 만년필이 ‘성공의 상징’으로 자리할 수밖에.





위쪽 예술로 승화된 손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테마 ‘전 세계의 손 글씨’(오른쪽). 종이를 영감의 원천이자 창작의 시그니처 자료로 활용한 마리안 구엘리 스튜디오(Studio Marianne Guély)의 작업(왼쪽).
아래쪽 글쓰기의 힘과 가치를 강조하는 테마 ‘글쓰기의 활력’.

이러한 몽블랑의 발자취를 집대성한 ‘몽블랑 하우스(Montblanc Haus)’가 지난 5월 16일 독일 함부르크에 정식 개관했다. 이곳은 몽블랑의 타임라인과 필기구를 제작한 사람들, 그리고 필기구를 활용해 인류애에 대한 흔적을 나눈 사람들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 공간이다. 니에토 소베하노 아키텍토스(Nieto Sobejano Arquitectos)가 설계한 몽블랑 하우스의 첫인상은 직관적이라는 수식어가 적합하다. 알프스산맥과 필기구 패키지를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먼저, 브랜드를 대표하는 검은색을 덧입힌 파사드에는 흰 눈으로 덮인 산맥이 자리하며, 그 위로 육각별 로고가 환히 떠 있다. 건물 입구는 움푹 들어가 있는데, 1924년 탄생한 만년필 마이스터스튁(Meisterstück)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모양새다. 3600m² 면적의 3층 건물 내부 역시 매력적이다. ‘글쓰기의 영감(inspire writing)’이라는 몽블랑의 신념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한 덕분이다. 이와 관련해 몽블랑 CEO 니콜라 바레츠키(Nicolas Baretzki)는 “사람들이 글쓰기의 놀라운 힘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발휘할 수 있는 감정과 상상력, 창의력을 발견하거나 재인식할 수 있는 장소를 마음속으로 그렸다. 1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글쓰기 문화의 중심에 있던 한 회사가 눈으로 직접 목격한 발견 과정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몽블랑 하우스를 구상했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손 글씨를 디지털 방명록에 남길 수 있는 테마 ‘마크 메이킹’.





라이팅 아틀리에(Writing Atelier)에선 캘리그래피, 글쓰기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몽블랑 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건 벵디 앙드뢰(Wendy Andreu)의 작업이다. 높이 2.5m, 길이 9m의 텍스타일 작업은 산과 파도를 연상시킨다. 멀리서 볼 땐 만년필로 쓴 글씨 일부분을 확대한 듯한데, 시선을 달리하면 펜으로 시작해 펜으로 끝나는 전시 여정을 묘사한 듯하다. 계단을 통해 전시장에 올라가면 6개 테마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글쓰기의 활력(The Pulse of Writing)’에선 글쓰기의 힘과 가치를 강조하는 경험을, ‘레거시와 비전(Legacy and Vision)’을 통해선 메종과 마이스터스튁 이야기를 접할 수 있으며, ‘전 세계의 손 글씨(Handwriting from around the World)’에 가면 예술로 승화된 손 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장인정신과 혁신(Craftsmanship and Innovation)’은 필기구 개발·제작에 관한 브랜드의 노하우를 설명하고, ‘몽블랑 컬렉션(Montblanc Collections)’은 리미티드 에디션과 하이 아티스트리 아이템 등을 선보인다. 압권은 단연 ‘마크 메이킹(The Mark Making)’이다. 박서보·비틀스·알베르트 아인슈타인·프리다 칼로 같은 유명인의 자필 기록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손 글씨를 디지털 방명록에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보존된 그들의 글씨와 픽셀로 보존될, 흰색 벽면 위에 투사된 자신의 글씨를 동시에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스마트폰 대신 손으로 뭔가 적어야 할 것 같은 감정이 피어오른다.
몽블랑 하우스는 이처럼 몽블랑의 모든 것, 다시 말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데 모은 공간이다. 3층 건물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만년필 제작 공정과 브랜드가 거쳐온 시간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니콜라 바레츠키의 말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코로나19 이후 몽블랑 만년필 수요가 더욱 늘었다고 한다. 추측하건대, 비대면의 현실에서 진심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가 아닐는지. 문자메시지와 전화기가 있음에도 결국 마음과 마음이 공명하는 건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쓴 글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겪어봐서 잘 안다. 소설가 아나이스 냉(Anaïs Nin)은 말한다. 글을 쓰는 것은 그 순간과 추억 속에서 인생을 두 번 맛보는 것이라고. 지금 여기 정취를 표현한 글을 세월이 흘러 다시 꺼낸다고 생각해보자.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찡하지 않은가. 켜켜이 쌓인 흔적의 두께는 분명 훗날의 나를 충만하게 만들 것이다. 115년 넘게 글쓰기라는 한길을 오롯이 걸어온 몽블랑이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벵디 앙드뢰의 작품 앞에선 알렉사 슐츠.
몽블랑의 귀한 보물이 있는 아카이브.
1961년과 2021년을 잇는 박서보 화백의 엽서.


 알렉사 슐츠(Alexa Schilz) 
Brand Heritage, Culture & Sustainability 디렉터 Interview

함부르크에 몽블랑 하우스를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몽블랑이 탄생한 곳이니까요. 처음 설립한 날부터 지금까지 몽블랑 필기구는 함부르크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해 브랜드의 장인정신뿐 아니라 필기구에 내재한 창의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오랜 시간 전 세계 글쓰기 문화 중심에 있는 몽블랑이란 회사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살펴보길 바랍니다. 글쓰기가 동시대에 어떤 의미인지도 고민해보면 좋을 것이고요.
몽블랑 하우스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디지털 설치 작업입니다. 만년필 이미지 때문에 대부분 아날로그적 요소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만년필 단면을 닮은 방 안에 들어가면 디지털로 전환된 글자에 둘러싸여 과거·현재·미래가 어우러진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몰입감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직접 쓴 글씨가 디지털 아트로 전환되는 경험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펜의 움직임이 픽셀에 의해 아름답게 재탄생하거든요. 두 번째는 230개의 마이스터스튁 만년필로 구성한 설치물로, 몽블랑이 걸어온 발자취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카이브를 꼽고 싶네요. 모두에게 개방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몽블랑의 귀한 보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건물 외관이 왠지 낯설지 않은데요. 설계를 맡은 니에토 소베하노 아키텍토스가 아카이브를 살펴보다 전통적 패키지를 오마주한 것입니다. 그 결과 몽블랑의 상징인 검은색을 건물 외부에, 흰색을 내부에 사용했죠. 몽블랑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건축입니다. 외관이 패키지와 닮았다면, 내부는 만년필에 들어간 복잡한 기술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의 펜이 탄생하려면 금속 가공, 닙 제조, 조립 등 과정이 정교하게 맞물려야 합니다. 층마다 공간 배치와 층고 등이 다르지만, 머릿속에 도면을 그리다 보면 서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결국, 복잡한 레이어는 필기구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죠.
1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글쓰기의 미학을 알리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펜보다는 액정 속 텍스트가 더 중요시되는 시대 아닌가요?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유대감을 중요시하고 있어요. 이때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지만, 직접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하거나 손으로 뭔가를 적어 표현하는 게 더 진정성 있다고 믿거든요. 실제로 고객이 직접 손으로 작성한 피드백을 보낼 때마다 글쓰기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또 펜은 뇌 활동의 연장선이기도 해요. 손 글씨를 쓸 때 우리 몸속에서 다양한 신경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됐어요. 특정 순간의 감정과 상황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면, 종이에 글을 써야 합니다. 이내 마음에 새겨지거든요.
‘마크 메이킹’ 테마에 박서보 화백의 편지가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평범한 어린아이의 글씨도 있더군요. 박서보 화백이 몽블랑 컬렉터라는 소식을 듣고 연락했습니다. 그의 손 글씨는 우리에게 매우 특별합니다. 1961년 파리에서 아내에게 보낸 엽서 원본과 이번 전시를 위해 2021년 제작한 엽서를 함께 보내왔거든요. 두 장의 편지를 나란히 배치하니 시공간을 뛰어넘는 강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는 몽블랑 직원의 아들이에요. 유명인은 아니지만, 펜으로 남긴 흔적은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손 글씨를 부탁했습니다. 엽서에는 함부르크와 알프스산맥의 몽블랑을 잇는 터널이 개통돼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면 좋겠다고 적혀 있어요.
몽블랑 하우스 콘텐츠를 한국에 소개할 계획도 있나요? 모든 사람이 함부르크를 방문할 수는 없기에, 팀원들과 함께 몽블랑 하우스 콘텐츠를 어떻게 선보일지 고민 중입니다. 그중 하나가 몽블랑 유튜브와 홈페이지의 ‘Montblanc Signed’입니다.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몽블랑의 역사, 마이스터스튁 개발 같은 브랜드 이야기를 볼 수 있으니까요. 전 세계인에게 우리 콘텐츠를 전달한다는 마음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몽블랑 하우스 오프닝을 무사히 마쳤으니 곧 여러 나라에 있는 동료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할 예정이에요. <노블레스> 독자 여러분이 한국에서 몽블랑의 글쓰기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할 것입니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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