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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21

시티팝의 매력 속으로

몇 년 전 시작된 시티팝 열풍이 사그라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시티팝 명곡 ‘Plastic Love’로 재조명 받고 있는 다케우치 마리야.
윤종신은 본격적으로 시티팝 열풍이 불기 전부터 다수의 시티팝 음악을 발표해왔다. 사진은 2017년 ‘월간 윤종신’ 7월호 ‘Welcome Summer’.


누군가 계속 불쏘시개를 넣는 것 같다. 어디선가 풀무질을 열심히 하는 듯하다. 뭉근한 불기운이 좀처럼 가실 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온도를 높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불씨도 여기저기 퍼뜨려 불길의 범위를 키운다. 몇 해 전 부활한 ‘시티팝(city pop)’이 막강한 화력을 뿜어내고 있다.
그렇다. 되살아났다. 197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 움튼 시티팝은 1980년대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접어들면서 일본에서는 하우스 음악 등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에 펑크(funk), 솔뮤직, 보사노바, 프렌치팝 등 여러 양식이 가미된 시부야케이(Shibuya-kei)가 만개하기 시작했다. 또 같은 시기 전 세계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힙합이 일본에서도 주류로 떠올랐다. 시티팝은 시부야케이와 힙합의 득세에 맥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오랜 기간 과거에 포박돼 있던 음악이 갑자기 풀려난 것이다.
시티팝 부흥의 중심에는 다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가 자리한다. 1984년에 나온 이 노래는 당시에는 이렇다 할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1980~1990년대 음악, 광고, 드라마, 영화 등에서 추출한 소리를 활용해 곡을 제작하는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 베이퍼웨이브(vaporwave)가 네티즌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특히 베이퍼웨이브에서 파생한 퓨처 펑크(future funk)는 대부분 1980년대 시티팝 노래를 바탕으로 한다. 2016년 유튜브에 한국 퓨처 펑크 DJ 나이트 템포의 ‘Plastic Love’ 리믹스 버전이 게재됐고, 이 영상이 입소문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원곡도 음악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청 빈도가 높은 영상을 메인 화면에 내보내는 유튜브의 알고리즘 덕에 ‘Plastic Love’는 더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이후 유튜브에는 신드롬 수준으로 수많은 커버 영상, 리믹스 버전이 올라왔다. 열띤 성원에 힘입어 지난해 ‘Plastic Love’가 재발매되기도 했다.
나이트 템포와 유튜브가 ‘Plastic Love’를 소개하고 광고하는 역할을 했다면, ‘Plastic Love’는 시티팝의 매력을 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람들은 이제 다케우치 마리야 외에 야마시타 다쓰로, 마쓰바라 미키, 오오타키 에이이치, 가도마쓰 도시키 등 다른 시티팝 가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많은 이가 시티팝 특유의 보드라운 톤에 매료된 것이다.
시티팝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성행했던 요트 록이 핵심 인자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요트 록은 요트에서 여유롭게 즐기기 좋은 록을 뜻한다. 요트 록은 소프트 록, 팝 록, 재즈 퓨전, 스무드 재즈, R&B, 디스코 등 요소를 포괄해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럽고 적당히 흥겹다. 요트 록의 성격을 이어받았으니 시티팝도 같은 기운을 띨 수밖에 없다. 요트 록의 토대 위에 시티팝은 신스팝의 성분 정도만 추가한다. 고운데 처지지 않아 많은 이가 좋아할 만하다.
헤아려보면, 우리나라 음악 팬도 한국 대중음악으로 일찍이 시티팝을 즐기고 있었다. 시티팝이라는 개념과 명칭이 통용되던 시절은 아니지만, 샤프 ‘연극이 끝난 후’, 김현철 ‘오랜만에’, 빛과 소금 ‘돌아와 줘’, 나미 ‘가까이 하고 싶은 그대’처럼 시티팝이라 부를 만한 노래가 있다. 재즈 퓨전, 소프트 록 성격을 지녔기에 시티팝으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네이버는 2018년과 2019년 ‘온스테이지 디깅클럽서울’이라는 시리즈로 죠지, 백예린, 데이브레이크, 새소년 등 젊은 세대에게 유명한 가수와 한국의 과거 시티팝 노래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가까이 하고 싶은 그대’가 수록된 나미의 7집 정규 앨범 ‘Cameleon’.
시대를 앞서간 숨은 음악을 재조명한 디깅클럽서울 프로젝트. 2018년 죠지는 김현철의 시티팝곡 ‘오랜만에’를 리메이크했다.


시티팝 열풍이 불어닥친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시티팝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하게 생산, 소비되는 중이다. 윤종신은 2017년부터 ‘Welcome Summer’, ‘Summer Man’, ‘내 타입’, ‘Rainy Happy Day’ 등 다수의 시티팝 곡을 발표하며 시티팝 리바이벌의 선봉에 섰다. 김아름, 레인보우 노트, 제인팝, 유키카 등도 부흥에 가세했다. 시티팝 스타일의 곡을 한 번이라도 발표한 인물까지 언급하자면 끝도 없다. 음원 플랫폼 이용자들은 적극적으로 시티팝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홍보를 돕는다. 시티팝은 201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가요계를 관통하고 있다.
시티팝이 이처럼 활황을 누리는 데에는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큰 지분을 차지한다. 명칭이 귀띔하듯, 시티팝은 도시의 낭만적 삶과 달콤한 사랑을 중심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도시의 삶은 삭막하기만 하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의 증가가 사회현상으로 뿌리내렸다. 많은 이에게 수도권에서의 자가 주택 마련은 언감생심이며, 부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진다. 도시 풍경은 연일 화려해지고 있지만, 자신의 처지는 초라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 정서적 피폐함을 나긋나긋한 노래로 달래고자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재정적으로 풍요로운 상태에 대한 동경 또한 시티팝의 새로운 번영을 도왔다고 할 수 있다. 시티팝은 부를 입고 탄생한 음악이다. 1980년대 일본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일본 음반사들은 미국에서 으뜸가는 연주자와 엔지니어를 초대해 스무드 재즈, 소프트 록 음반을 제작했다. 이런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자 자국 뮤지션들이 그와 유사한 음악을 만든 것이 시티팝의 시작이다. 세련된 이미지의 시티팝은 듣는 이로 하여금 윤택한 삶을 상상하게 한다.
흔히 LP라 부르는 바이닐 판매량 증가도 시티팝 유행의 조력자 중 하나다. 최근 디지털 문물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LP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턴테이블이 없음에도 SNS에 취미 활동을 올릴 목적으로 LP를 구매하는 이도 많다. 시티팝은 노래 분위기를 고려해 화사하거나 청량감을 풍기는 음반 커버를 갖추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집이나 매장을 예쁘게 꾸미는 소품으로도 시티팝 앨범이 자주 선택된다.
지난 4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인지도를 높인 정호연이 캐나다 가수 위켄드의 ‘Out of Time’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세계적 팝스타의 뮤직비디오에 한국 배우가 캐스팅됐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노래가 나왔을 때 음악 팬들이 놀라워한 점은 따로 있었다. ‘Out of Time’이 아란 도모코가 1983년 발표한 ‘Midnight Pretenders’를 샘플로 썼다는 사실이다. 시티팝이 이제는 팝 시장 한가운데 침투했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뜨거운 2차 황금기를 만끽할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한동윤(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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