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의 맛있는 미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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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7

취리히의 맛있는 미술

스위스 취리히에서 4번 트램을 타는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크로넨할레를 방문해보자.

가을의 취리히는 관광객에게 지상낙원이다. 자연의 풍요로움과 도시의 세련됨을 모두 갖춘 까닭이다. 관광객은 여행 스타일에 따라 도시를 색다르게 누릴 수 있는데, 제법 매력적인 건 4번 트램을 타고 떠나는 문화 예술 순례다. 출발지는 중앙역. 혹 독일어를 몰라 중앙역을 그냥 지나칠 것 같은가? 염려 마시라. 빨간색 초침이 돌아가는 시계를 발견했다면, 이미 여행의 서막이 오른 것과 다름없다. 참고로, 스위스 기차역을 상징하는 이 시계는 클래식 디자인으로 손꼽히는 한스 힐피커(Hans Hilfiker)의 작업이다.
지금부터는 각자 관심사에 맞춰 트램을 오르내리면 된다. 4번 트램은 제조 공장을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시프바우(Schiffbau), 양조장을 개조한 예술 공간 뢰벤브로이(Lowenbrau) 지역, 현대미술의 메카 쿤스트할레 취리히(The Kunsthalle Zurich), 르코르뷔지에와 르네 부리, 프라이탁 등으로 대표되는 스위스 디자인을 엿볼 수 있는 디자인 박물관, 모차르트의 <마적>과 함께 시작한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등을 잇는 황금 노선이기 때문이다.
도시 정취에 젖는 것도 좋지만, 가을 여행을 보다 풍족하게 만드는 건 단연 식도락이다. 골목길의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지만, 기왕 4번 트램을 타고 문화 예술을 체험 중이라면 미술품을 옆에 두고 “레커스슈메커(Leckerschmecker, 정말 맛있는)”를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허기진 타이밍에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있다면, 도보 3분 거리에 자리한 레스토랑 크로넨할레에 가보자. 1924년 문을 연 이곳에선 스위스 고전 요리와 프렌치 스타일의 브래서리를 만날 수 있다. 그중 얇게 썬 송아지 고기에 크림소스와 버섯을 곁들인 취르허 게슈네첼테스(Zurcher Geschnetzeltes) 스타일의 디시는 놓치지 말 것. 특별한 날에 먹는 향토 요리 중 하나인 이 음식은 원기 회복은 물론, 여행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로맨틱한 분위기도 체크포인트. 바 인테리어는 바우하우스와 데 스틸의 영향을 받은 로베르트 하우스만(Robert Haussmann)이 맡았으며, 실내 곳곳에는 디에고 자코메티(Diego Giacometti)의 조명이 자리한다.







무엇보다 크로넨할레의 백미는 미술품이 자아내는 공기 온도다. 마치 미술관 안에 들어와 있는 듯 라우션버그, 로댕, 샤갈, 칸딘스키, 피카소, 호안 미로 등의 작품이 벽면에서 위엄을 뽐내고 있다. 비교적 한적한 시간에 방문하면 그림 속 주인공이 속삭이는 듯한 경험도 할 수 있을 터. 이렇게 멋진 작품이 한데 모일 수 있었던 건 크로넨할레가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1924년 버려진 레스토랑을 인수해 우아한 레스토랑으로 탈바꿈시킨 훌다 춤슈테크(Hulda Zumsteg, 1890~1985)와 그의 아들 구스타브 춤슈테크(Gustav Zumsteg, 1915~2005)의 공이 크다. 특히 구스타브 춤슈테크는 입생로랑에 실크를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했는데, 당시 모은 돈으로 작품을 구매한 덕분에 오늘날의 컬렉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처럼 크로넨할레는 눈과 입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취리히의 특별한 공간이다. 미술과 미식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크로넨할레로 발걸음을 옮길 것을 추천한다. 지금도 저녁이면 예술가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니, 그 옛날 유럽의 살롱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사진 제공 크로넨할레(Kronenh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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