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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4

이름만큼 새로운

아마도 당신이 몰랐을, 또 그래서 당신이 알았으면 하는 이스탄불의 다양한 표정.

비잔틴 건축의 정수라 불리는 아야 소피아는 2020년 박물관에서 모스크로 탈바꿈했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탑승하자 짧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이스탄불이 한눈에 보이는 갈라타탑(Galata Kulesi), 비잔틴 건축의 정수로 평가받는 아야 소피아(Ayasofya) 등 유적지를 가볍게 훑어주는데, ‘헬로 튀르키예(Hello Tu rkiye)’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알고 보니 터키의 영문 국호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캠페인 영상이다. 그때 새삼 느꼈다. ‘터키’가 아닌 ‘튀르키예’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도쿄나 홍콩 정도는 아니어도, 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꽤 친근하게 느껴진다. 왜 세계사 시간에도 배우지 않았나.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유일한 도시, 비잔틴과 오스만 등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 기독교와 이슬람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도시. 그런 특징이 담긴 역사적 이정표가 이스탄불 곳곳에 자리하고, TV 방송이나 여행 유튜브를 통해 종종 소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왠지, 그 정도로 소개하긴 싫었다. 국호 변경이 기묘한 사명감을 부여했달까. 그래서 역사적 이정표 뒤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미처 기대하지 못해 다채롭고 아름다웠던 이스탄불의 면면을 전한다.





크루즈가 정박한 갈라타포트 이스탄불.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카라쾨이.
럭셔리 브랜드가 한데 모인 니샨타쉬.


이스탄불의 럭셔리, 니샨타쉬
튀르키예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국가지만, 그중 가장 ‘세속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중심인 탁심 광장(Taksim Meydanı) 북쪽에 위치한 니샨타쉬(Nis¸antas¸ı)는 그런 튀르키예의 일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 니샨타쉬라는 명칭은 술탄들이 여흥을 위해 빈 언덕을 겨냥해(니샨) 쏜 화살이 떨어진 곳이나 총으로 맞힌 접시가 깨진 곳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돌(타쉬)에서 유래했다. 19세기 중반 서구 문물에 매료된 술탄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닮은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어 정착하자, 고관대작들도 그 근처인 니샨타쉬 언덕에 커다란 집을 지었다. 유서 깊은 부촌이라 그런지 오늘날 니샨타쉬는 우아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지역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마카 공원(Mac¸ka Parkı)에서 니샨타쉬 중심부로 이어지는 아브디 이펙치(Abdi I˙pekc¸i) 거리에는 샤넬, 루이 비통, 구찌 등의 매장이 모여 있는데, 쉽사리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브랜드라 그런지 거리가 비교적 한산하다. 스치는 사람의 옷차림과 향수 냄새, 길가에 선 차량도 고급스럽다. 여러모로 청담동 명품 거리와 닮았다.
물론, 니샨타쉬엔 니샨타쉬만의 매력이 있다. 청담동의 휘황찬란한 플래그십 스토어에 비하면 니샨타쉬의 럭셔리 브랜드 매장은 ‘생얼’로 느껴질 만큼 수수해 보인다.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이스탄불 여러 지역이 그렇듯, 니샨타쉬에도 적어도 수십 년 된 건물이 군데군데 서 있다. 탑승자가 문을 수동으로 닫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튤립이나 포도 문양을 정성스레 양각한 건물. 콧대 높은 브랜드들이 그런 건물 사이에 겸손하게 자리한 건, 거리에 퇴적된 시간이 브랜드를 빛내는 가장 훌륭한 장식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또 니샨타쉬엔 시선을 끄는 로컬 톱 디자이너의 쇼룸이 많다. 아나톨리아 반도의 고대 건축과 전통 패턴에서 영감을 받아 여성복 컬렉션을 전개하는 루그 본 시가(Lug Von Siga), 동서양 문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주얼러 베귐 칸(Begu m Khan), 이스탄불 스트리트 패션의 현재를 보여주는 커먼 피플(Common People) 등. 이스탄불 여행을 기념할 특별한 기념품을 찾는다면 이들의 쇼룸을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성공적 도시 재생 모델, 카라쾨이
카라쾨이(Karako y)는 원래 이스탄불에서 크게 유명한 지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환골탈태에 성공, 현지 20~30대가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로 거듭났다. 전통적 튀르키예식 선술집 메이하네(Meyhane)부터 젊은 셰프가 이끄는 트렌디한 레스토랑, 감각적 인테리어로 무장한 카페까지! 지금의 카라쾨이는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갖췄다. 건물 외벽을 그라피티로 수놓아 어떻게 찍어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지만, 하이라이트는 우산 골목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형형색색 우산이 그물 상단에 가득 걸려 있는데, 디즈니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라쾨이에서 보스포루스해협을 따라 북쪽으로 걷다 보면 지난해 10월에 오픈한 갈라타포트 이스탄불(Galataport Istanbul)이 시작된다. 길이 1.2km, 축구장 53개 크기로 규모가 엄청난 갈라타포트 이스탄불은 이 도시를 세계적 크루즈 정박지로 만들기 위한 초대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크루즈가 정박하지 않는 날에도 사람이 많은데 미식과 쇼핑,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온종일 즐겨도 모자랄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공한다. 여러 건물로 구성한 갈라타포트 이스탄불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은 포스트 오피스 패션 갈레리아(Post Office Fashion Galleria). 과거 우체국으로 사용하던 이 건물은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데, 세심한 복원을 거쳐 튀르키예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로컬 디자이너의 부티크를 품은 곳으로 변모했다. 혹시 이곳에서도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근처 토파네(Tophane) 지역으로 발길을 돌릴 것. 아이단 외네르(Aydan o ner), 외즐렘 튜나(ozlem Tuna) 등 실력을 갖춘 디자이너의 쇼룸이 모여 있어 ‘이스탄불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위쪽 이스탄불 문화 예술의 중심, 아타튀르크 문화센터.
아래쪽 이스탄불을 관통하는 보스포루스해협은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모두 끌어안는다.

이스티클랄 거리와 예술
이스티클랄(I˙stiklal) 거리는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유럽식 건물과 그 사이를 지나는 빨간색 트램이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상점, 영화관, 학교, 종교 시설이 밀집해 시민들도 이곳으로 모여든다. 이스탄불의 역동적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걸어봐야 할 곳. 그리고 하나 더.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이에게도 한 번쯤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거리 안팎으로 훌륭한 전시장과 공연장이 여럿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페라 뮤지엄(Pera Mu zesi)은 수나 앤 이난 크라츠 재단(Suna and I˙nan Kırac¸ Foundation)이 2005년에 설립한 박물관이다. 미술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재단의 컬렉션은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계량 및 측정의 역사를 조명한 [The Art of Weights and Measures], 오스만제국의 커피 문화를 주제로 한 [Coffee Break]는 모두 재단 컬렉션으로 꾸린 상설전이다. 이 전시도 좋지만, 지금 페라 뮤지엄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제17회 이스탄불 비엔날레(9월 17일~11월 20일)가 열리는 여러 장소 중 한 곳이기 때문. 다양한 배경의 아티스트 사이에 접점을 만들고 대화를 끌어내고자 하는 올해 비엔날레의 원대한 목표에 걸맞게 한두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의식을 자극하는 현대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스탄불을 걷다 보면 사진 속 멋진 중년 남성과 자주 눈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 rk)로, 튀르키예의 세종대왕이자 이순신 장군이다. 아타튀르크 대로,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처럼 주요 도로와 건물에 그의 이름이 붙을 정도로 그에 대한 튀르키예인의 존경심은 하늘을 찌른다. 아타튀르크 문화센터(Atatu rk Ku ltu r Merkezi)도 그렇다. 지난해 10월 탁심 광장 건너편에 문을 연 이곳은 2040석을 갖춘 이스탄불 최고의 오페라 홀부터 410m² 규모의 갤러리, 예술과 디자인 분야 서적 2만 권을 소장한 라이브러리,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전용관까지 문화 예술을 위한 거의 모든 것을 갖췄다. 꼭 근사한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지 않더라도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 공간인 이곳은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위쪽 느긋하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쿠즈군죽.
아래쪽 이스티클랄 거리의 상징인 빨간색 트램.

이스탄불에서 느끼는 여유, 쿠즈군죽
이스탄불 관련 서적을 보면 보스포루스해협 동쪽, 아시아 지구에 관한 언급은 별로 없다. 대체로 거주 지역이다 보니 관광지로서 중요도가 낮기 때문. 하지만 어딘가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관광지에 싫증 난 여행객에겐 오히려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쿠즈군죽(Kuzguncuk)으로 향한 이유다. 유럽 지구에서 페리를 타고 위스퀴다르(u sku dar) 선착장에서 하선, 북쪽으로 20분 산책하듯 걸으면 나오는 동네다. 앞쪽으론 바다, 뒤쪽으론 녹지를 낀 쿠즈군죽에는 오스만 양식의 파스텔 톤 목조 주택이 줄지어 있다. 동화적 풍광 덕분에 이곳은 영화나 광고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쿠즈군죽은 비잔틴과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같은 이방인이 살았던 지역이다. 현재는 흩어진 지 오래인 데다 튀르키예 무슬림이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여러 민족이 모여 산 흔적이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다. 모스크와 유대교회당, 그리스정교회, 아르메니아교회가 이 작은 동네에 모두 있는 것. 또 쿠즈군죽은 카페 거리로도 유명한데, 열에 아홉은 야외 좌석을 갖춰 따사로운 햇살 아래 진한 튀르키예식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다. 하지만 자그마한 방해꾼을 조심해야 한다. 주변을 맴돌며 끊임없이 손길을 요구하는 고양이들이다. 이스탄불 어디에나 길고양이가 많지만, 이곳엔 ‘고양이 튀어나옴’이라는 표지판이 붙을 정도로 그 수가 많다. 한국의 ‘개냥이’도 여기서는 까칠하게 느껴질 정도. 쿠즈군죽 고양이가 유독 친근한 이유는 이곳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또 하나의 주민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 풍속, 동물까지 포용해온 쿠즈군죽의 넉넉함과 관대함은 여행객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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