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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5

올해의 작가상, 그 후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호명된 작가의 ‘넥스트 레벨’은 뭘까? 지난해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 참여한 방정아 작가를 만나 이후의 활동에 대해 물었다.

지난 10월 28일부터 내년 3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10년의 기록>전이 열린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열 번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개최해 매년 네 명씩 총 40명의 작가들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작품을 알렸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의 역사를 아카이브로 조명한다. 지난해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선정된 방정아 작가는 창작 후원금 4000만 원으로 총 일곱 점의 회화 작품을 만들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흐물흐물>전을 열었다.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가로 8.8m, 세로 7m에 달하는 ‘플라스틱 생태계’. 작가는 이 작품 못지않게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도 주목받길 바랐다고 말한다. 작품은 일명 ‘주피터 프로젝트(주한 미군이 부산에서 진행하는 생화학 실험 계획)’로 불리는 미국의 생화학 방어 체계 프로그램이 부산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문제 인식에서 비롯했다. 미국의 생화학 실험을 상징하는 주피터(유피테르, 제우스)가 노쇠한 모습으로 평범한 시민의 생활 터전인 아파트의 인공 정원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방정아 작가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금 이야기에 주목한다. 사회구조적 모순과 불합리한 행태를 직시하며, 30년 넘게 그녀만의 리얼리즘을 회화에 담아왔다. 30년 이상 작업해온 중견 작가에게 ‘올해의 작가상이란?’ 질문은 어쩌면 다소 식상하고 무례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진부하게 여기는 회화를, 그것도 부산에서 꾸준히 작업해온 작가이기에 그 수식어가 지닌 무게는 남다르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출품작,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





플레이스막2 갤러리 <너의 Rhyme 나의: 방정아×성유진>전 출품작, ‘눈물이 그치지 않아’.





지난해 올해의 작가상 4인 중 한 명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작가 경력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워낙 주목받는 전시다 보니 전보다 관심과 기대를 많이 받고 있다. 이름 앞에 항상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올해의 작가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후보 네 명을 선정하기 전 12명이 예선을 치르는데, 그때 면접을 준비하며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작가인가?’, ‘무슨 작업을 하고 있나?’, ‘어떤 주제 의식으로 전시를 치를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자신이 선정된 이유를 생각해봤을 것 같다. 짐작하기에 당시 작가 선정에서 지역성, 장르를 골고루 반영하려고 한 것 같다. 올해의 작가상은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하는 수상 제도다. 이제껏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동시대성을 드러내는 현대 작가를 소개할 때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회화 작가는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작업하면서 회화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느꼈나. 요즘은 미술관에서 회화 작품을 보기 어렵다. 매체가 워낙 다양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하는 작가에게 회화는 자칫 진부한 매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회화는 작가 자신을 드러내기 쉬운 매체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나와 네가 다르지 않고, 우리 모두는 보편적 존재임’을 보여주는 작업을 한다.
주로 대형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작업하는 이유가 있나.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 원전과 환경문제를 다룬 초대형 작품을 출품했다. 또 2019년 부산시립미술관의 ‘현대미술 작가 조명’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되어 ‘그녀가 손을 드는 순간’이 주목받았는데, 그 역시 7m짜리 대작이었다. 그 후 방정아 하면 대형 회화를 떠올리고, 전시를 제안하는 곳이 늘었다. 사실 작가라면 모두 대형 작업을 하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다. 큰 작업은 관람객에게 압도감이나 몰입감, 실재성, 숭고함 등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작업하면서 나보다 눈과 코가 큰 사람들을 그리고, 실물 크기보다 큰 새와 강아지, 나무와 꽃을 묘사하면서 작가인 나 역시 그림에 빨려들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내가 그림의 일부가 된 듯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큰 작업이 주는 묘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좀비주의>전 출품작, ‘핵 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





젊음의 서글픔 Acrylic on canvas 130×162.2cm 2022





방정아만의 화법이나 주제 의식이 있을까. 작가 인생에서 지금 이 순간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예전에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이게 나야’, ‘이게 내 작품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유연해지는 것 같다. 회화 작업을 하다 보면 점, 선, 면, 색, 형태 등 조형 요소에서 자기만의 감각이 축적된다. 나 역시 다양한 시도와 실험 끝에 나만의 ‘선’을 조금 찾은 듯하다. 사람을 그리면서 그 혹은 그녀의 신체에 감정적 선을 새긴다. 이는 그림 속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응축된 에너지나 감정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 선에 대체로 불안, 광기, 우울, 분노 등 정서가 담긴 듯하다. 예를 들어 지금 플레이스 막2에서 전시 중인 ‘눈물이 그치지 않아’, ‘젊음의 서글픔’이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좀비주의>전에 전시 중인 초대형 걸개 작품 ‘핵 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가 그렇다. 좀비를 다룬 작품이 독특한데,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사회문제가 낳은 병폐로서 좀비 영화나 TV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다. ‘굶주린 좀비의 도상이 현대인의 복잡한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전시의 기획 의도다. 주제에 맞춰 여러 작가가 작품을 출품했다. 나의 작품은 핵에너지 사용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에 기생해 살아가고, 오염된 존재를 좀비로 묘사했다. 좀비 군상 사이에 생존자들이 있는데, 선은 두 존재를 구분하는 요소 중 하나다. 네 폭으로 나눈 초대형 걸개그림 사이로 좀비와 관람객이 뒤엉키며 핵에너지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일상의 단편을 포착한 듯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경·여성·핵 등 고질적 사회문제를 반영한 작품이 많다. 요즘 관심이 가는 또 다른 주제가 있는지. 내년 3월 부산 신세계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주제가 ‘시뮬라크르’다. 요즘 모든 사람들이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재미난 놀이를 하는 것 같다. 가상공간에서는 할머니도 20대 아가씨가 되고, 사막에 숲을 조성할 수도 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이 숨어 있다. 우리는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그 욕망을 좇는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요즘 카페는 온갖 욕망이 투영된 공간 같다. 지금 작업 중인 ‘백작 놀이’는 오래된 다방에서 귀족처럼 호랑이를 안고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가상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여러 도상을 중첩하며, 불분명한 두 세계의 경계를 탐색하는 것이 재미있다.

 

에디터 손지혜
사진 이요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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