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2022년 영화 이야기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FEATURE
  • 2022-12-07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2022년 영화 이야기

<헤어질 결심>, <오징어 게임> 등 2022년 영화계에 일어난 영화 같은 일을 모았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 CJ ENM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여자는 여자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또 한번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할 때 배우, 미학적 요소, 각본 등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관객이 보여준 ‘분석할 결심’을 주목했다. 많은 관객은 영화에 드러난 미장센과 상징을 읽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이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한번 영화관을 찾았다. CGV 데이터전략팀 분석에 따르면, 올해 개봉해 1주 차에 관객 수 50만 명을 돌파한 한국 영화 다섯 편 중 2회 이상 관람한 비율은 <헤어질 결심>이 3.3%로 가장 높았다. 초반에 <헤어질 결심>은 누적 관객 수 188만 명을 기록했으나 소위 ‘N차 관객’ 덕분에 장기 흥행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다. 이후 각본집은 출간 전부터 예약 판매로만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정도로 흥행했다. 관객들은 각종 SNS와 유튜브 콘텐츠 등에서 생산된 해석 영상을 보고 다시 극장을 찾는 식이었다. 감독이 숨겨놓은 영화 속 장치를 캐내려는 대중의 열망은 그간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하지만 A라는 상징에 B라는 의미를 매칭하는 수동적 해석은 영화를 온전히 감상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온전한 감상은 적어도 ‘이 영화의 미장센을 모조리 읽을 수 있다’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일상에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에 가깝지 않을까. 더불어 균열이 관객 개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면 감독이 의도한 바에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그 감상은 언제나 유효하다. ‘분석할 결심’은 <헤어질 결심>을 하나의 상품으로서 온전히 소비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다만 이러한 결심이 다양한 영화를 입체적으로 감상하고 경험하는 시네필을 더 많이 탄생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박찬욱 감독의 이름 앞에는 작가주의나 예술영화 같은 수식이 곧잘 따라붙는다. 두 가지 단어의 공통점을 범박하게 찾아보자면 상업 영화의 흥행 공식만 따르기보다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에 더 힘을 실은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제2의 ‘박찬욱’이 있을지 모를 한국 예술영화계에선 올해 두드러지는 목소리가 있었다. 연령, 직업 등 다양한 층위에 있는 한국 여성의 목소리다. 대표적으로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미군 위안부였던 박인순이 이름 없이 떠나간 기지촌 여성을 위해 일종의 연극적 제의를 치르는 모습을 담았다. 이 외에도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학업과 노동을 이어가던 ‘시다’를 조명한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 팔에 용 문신을 새긴 혜영이 부당함에 맞서는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의 행적을 좇는 이야기 <오마주>, 디지털 성범죄를 겪은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경아의 딸> 등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빛나는 영화가 다수 있었다. 한편 올해 국내 최다 관객을 모은 1~3위 영화(<범죄도시 2>, <한산>, <공조 2>)에 모두 영웅화된 남성 주연이 등장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 넷플릭스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 (주)시네마달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 (주)시네마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아시아 배우가 에미상 주연상을 받은 것도, 비영어권 드라마가 감독상을 받은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전례 없는 기록은 단순히 한국 콘텐츠의 저력만으로 얻은 결과는 아니다.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을 거치지 않았다면 아무리 콘텐츠가 훌륭해도 28일 동안 누적 시청 시간 16억5045만 시간을 기록하며 94개국 시청자를 끌어모으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약 300억 원을 들여 1조 원의 수익을 냈고, <오징어 게임>으로 구독자도 440만 명이나 급증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아무리 잭팟을 터뜨려도 국내 제작자와 창작자에겐 추가 수익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 지식재산권(IP)은 넷플릭스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OTT가 남긴 숙제라며 재주는 곰이 부리는 형국이라 꼬집기도 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몸집을 불리는 플랫폼 경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누벨바그를 이끈 감독으로서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별세 소식이 전 세계 시네필의 마음을 울렸다. <비브르 사 비>, <열정>, <네 멋대로 해라> 등 전설적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 이면에 대해 말해온 장 뤼크 고다르. 그의 죽음 앞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은 것은 그가 조력 자살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우리가 삶을 대하는 보편적 태도에서 벗어나 낯선 방식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그는 생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며 주체적으로 삶을 대하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목표는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본성을 가리는 온갖 허위와 문명의 껍데기를 덜어내고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 뤼크 고다르는 필모그래피에서 나아가 자신의 삶 자체로 우리에게 마치 영화처럼 삶의 여러 단면에 대해 진지한 대화의 물꼬를 터주었다.
어떤 일을 수식할 때 “영화 같다”는 표현은 매번 좋은 뜻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 보편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황에도 영화 같다는 말을 쓰기 때문이다. 2023년에는 부디 영화(榮華)로운 일만 있기를, 특히 돌아오지 못한 이를 그리워하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욱 그러하기를 바랄 뿐이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백가경(프리랜서)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