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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8

희망을 짓다

아픈 아이와 엄마를 위한 하우스를 짓는 RMHC 코리아. 그 여정에 기꺼이 동참한 고가영 부회장의 이야기.

플라워 프린트 톱 Jons.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Ronald McDonald House Charities, RMHC)는 1974년 작은 쉼터로 출발해 1984년 재단법인으로 발전, 현재 68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비영리법인이다. 각국 실정에 맞는 어린이 복지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중 핵심은 하우스 사업이다. 환아와 그 가족이 병원 근처에 머물며 치료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치료에 집중하도록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 전 세계에 368개 하우스가 있으며, 매일 환아 6000여 명이 하우스를 이용하고 있다.
한국에도 RMHC가 있다. 2007년에 설립한 RMHC 코리아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제프리 존스가 2015년 회장직을 맡은 후 하우스 건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20년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 문을 연 국내 1호 하우스가 그 결실. 여기엔 RMHC 코리아 고가영 부회장의 공이 컸다. 2017년부터 제프리 존스 회장을 도와 재단 실무를 담당하는 인물.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RMHC에 합류하기 전까지 기업인 이미지 컨설턴트와 전시 기획자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 2017년 DDP에서 아시아 최초로 개최한 피에로 포르나세티 특별전이 고가영 부회장의 작품이다. “회장님과는 20대 초반에 처음 연이 닿았어요. 당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니?’라고 물으시길래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죠. 초등학생 때 단짝이 소아암으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이후 형태는 다르지만 다른 사람이 빛나도록 돕는 일을 했고, 가정을 꾸려 엄마가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장님이 전화로 ‘이제 정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됐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고가영 부회장이 망설임 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던 건 RMHC 코리아의 하우스 사업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전부인 엄마를 도울 수 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죠. 소아암처럼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병이라면 어떤 엄마라도 심신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픈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드는데,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자책하게 되고 치료에 집중하기도 어렵습니다. 그게 저희가 환아의 엄마를 위하는 이유입니다.”
훌륭한 해외 사례가 많지만, 국내에 하우스를 짓는 건 처음이기에 새로 시작한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병원 근처에 하우스 부지를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병원 및 지자체와 조율할 부분도 많고요. 그럼에도 많은 분이 필요성을 알아주셨기에 1호 하우스를 열 수 있었습니다. 몇몇 기업에선 가구, 에어컨 등 자사 제품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도움을 주셨어요. 보통 ‘기부’라는 말을 들으면 금전적 지원이 떠오르는데, 현물이나 재능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예시를 제시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1호 하우스는 개별 욕실이 딸린 방부터 공동 거실, 공동 주방, 도서관, 놀이방 등을 갖춘 근사한 공간이다. “현실적으로 아픈 아이와 엄마는 여행을 떠나기 힘들어요. 그래서 입주 가족이 그간 하지 못한 걸 할 수 있는 리조트 같은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퇴원해도 통원 치료 과정에서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우스에 입주하면 한층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입주 가족 선정은 전적으로 의료진 판단에 따른다.





하우스 운영 외에도 RMHC 코리아는 스마일 프로그램, 중증 장애 아동 치과 치료 지원 사업, 그리고 울림 백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 중 울림 백일장은 중증 환아의 마음속 이야기를 시로 표현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달랠 기회를 제공하는 공모전이다. 이들이 병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지만, 그만큼 창의성과 감수성이 뛰어나다. “고(故) 박효진 양이 쓴 ‘산길’이라는 작품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산에 오르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꿋꿋이 정상을 향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죠. 이 시로 효진이가 연말 시상식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시상식을 앞두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효진이 할머니가 대신 참석해 시를 낭독하셨는데,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눈물을 훔쳤어요.”
지난 12월 초엔 3년 만에 올리비아 바자회와 갈라 디너가 열렸다. 특히 고가영 부회장의 기획으로 진행하는 올리비아 바자회는 하우스 설립을 위한 모금 활동의 일환이다. “ ‘저도 엄마입니다’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엄마로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아이와 엄마를 위한 바자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참여 브랜드를 모을 때 무작정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브랜드 홍보 담당자와 연결을 부탁했죠. 쉽지 않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단단해졌고, 바자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브랜드도 많아졌어요. 그 브랜드 대표님들은 저처럼 엄마이기도 하고요. ‘공감’으로 시작된 일이 지금의 올리비아 바자회를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팬데믹 여파로 1호 하우스 개관 소식 등 RMHC 코리아의 일을 온전히 알리지 못한 건 아쉽지만, 앞으로의 일을 세심하게 계획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2022년엔 다시금 달릴 준비를 마쳤어요. 올리비아 바자회와 갈라 디너가 시작이었습니다. 울림 백일장에서 수상한 아이들의 작품을 모은 시집이 출간을 앞두고 있고, 자선 골프 대회도 개최할 예정이에요.” 고가영 부회장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이자 목표는 2호 하우스 건립이다. “현재까지 210여 가족이 1호 하우스에 머물렀어요. 중증 환아들이 모이는 수도권에 하우스가 생기면 더 많은 아이와 엄마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홍콩에만 하우스가 세 곳 있는데, 국내엔 아직 그 수가 부족해요. 2호 하우스는 물론 3호, 4호 하우스 건립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 새삼스러우면서도 감격스러운 이 말에 공감한다면, RMHC 코리아가 일궈내는 ‘함께 만드는 특별한 기적’에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헤어 & 메이크업 김민지
스타일링 윤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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