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대를 쓴 최초의 미술사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SPECIAL
  • 2023-01-16

위대한 시대를 쓴 최초의 미술사

아트나우에서 연재를 시작한 예술의 역사와 인문학.

미켈란젤로, David, 1504, Collection of Galleria dell’Accademia

불과 500여 년 전만 해도 예술가는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16세기에도 화가나 건축가는 단순히 손재주가 좋은 기능공이나 수공업자 정도로 인정했을 뿐이다. 예술가가 천부적 재능을 바탕으로 창조적 일을 하는 지위에 오른 데에는 미술사의 아버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공이 크다. 르네상스 시대의 바사리를 기점으로 미술사의 포문이 열린다. 그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구축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술이 겪은 변화상을 조명하며 처음으로 역사적 시각으로 미술을 바라보았다.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이 지금도 미술사의 고전으로 호명되는 이유다. 미술사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아니 미술을 알고 싶다면 먼저 바사리를 만나야 한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바사리는 문화와 예술이 찬란하게 꽃피운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 등장한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가 활동한 무대다. 메디치 가문과 같이 막대한 부를 쌓은 상인들이 예술 후원자를 자처했고, 바사리 역시 메디치 가문의 수혜를 입은 화가이자 건축가다. 엄격한 종교 질서를 강요한 중세에서 벗어나 경제적 후원을 업고 개인의 자유가 분출하면서 획기적인 예술 실험이 흥하고, 회화·조각·건축 분야에서 대담한 도전이 이어진 것은 물론이고 당시 피렌체에서 오페라가 탄생했으니 진정한 문화 황금기다. 무엇보다 신이 아닌 인간 중심 세계관으로 재편되면서 개인의 삶을 향한 관심이 높아졌다. 작가의 삶에서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찾아내고자 한 바사리의 미술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희대의 역작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은 1550년 탄생했다.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작가를 비롯해 바사리와 동시대에 활동한 작가까지 200명이 넘는 미술가를 무려 4000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책에 담아냈다. 그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바사리는 약 10년 동안 이탈리아 곳곳을 여행하며 작가를 만나고 자료를 수집했다. 예술계에서 쌓은 인맥과 권력을 십분 활용해 예술가의 전기, 미술 이론서, 역사서뿐 아니라 때로는 풍문으로 전해지는 일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료를 확보했다. 작가를 만난 후에는 그림 그리는 습관을 관찰해 기록을 남겼고, 원작을 보지 못한 경우 시중에 유통되는 판화를 근거로 작품을 묘사했다. 그렇게 바사리가 발로 뛴 피렌체의 미술 현장이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에 고스란히 담겼다.





왼쪽 자코포 주치(Jacopo Zucchi), Portrait of Giorgio Vasari, 1571~1574, Collection of Uffizi Gallery
오른쪽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사 평전>(1550) 표지.

단순히 백과사전식으로 미술가를 나열하고 작품 목록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인명사전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 독보적인 미술사 명저로 남은 이유는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고 평가하는 데 바사리가 역사의식을 여실히 발휘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역사를 저술하는 사람이라고 여긴 바사리는 시대를 통찰하는 폭넓은 시각으로 고대 그리스부터 당대까지 미술의 흐름과 변화상을 추적했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며 인생의 절정을 맞고는 점점 늙으며 죽음으로 향한다. 바사리는 역사도 발전하다 정점에서 쇠퇴하는 이 굴레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인간은 한 번의 주기를 겪고 삶이 끝나지만 역사는 이 주기가 계속 순환한다. 바사리에겐 미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사리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예술이 높은 경지에 올랐고 로마가 이를 계승했다고 보았다. 중세에는 고대 미술과 건축물이 파괴되며 예술이 쇠퇴했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비로소 부활해 절정에 이른다. 예술의 탄생을 알린 이가 조토(Giotto de Bondone)고,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와 미켈란젤로는 완성된 경지에 닿은 인물이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은 되찾은 황금기인 르네상스 시대를 다시 14세기 유아기, 15세기 준비기, 16세기 절정기의 3단계로 나누어 순환의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이제는 익숙한 ‘르네상스’라는 용어도 이 책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영광스러운 과거의 명성과 명예를 회복하는 것을 르네상스에 비유하곤 한다. 바사리는 고대 그리스 문화가 부활했다는 의미로 그가 살던 시대를 ‘리나시타(rinacita)’라고 일컬었다. 16세기에는 인문주의가 활기를 되찾아 고대 그리스 문화를 재조명했고,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재생했다고 보았다. 이탈리아 단어로 시작된 이 흐름은 프랑스로 건너가 널리 퍼진다.
바사리에게 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이때는 중세의 거칠고 조악한 표현 방법에서 점차 벗어나 자연을 모방하고 실물과 유사하게 표현하는 데에 이른다. 치마부에(Giovanni Cimabue)는 르네상스 미술이 정점으로 향하는 여정의 출발선에 놓인 인물로, 그의 제자 조토는 그림 속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을 훨씬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혁신을 이룬다. 조토가 스승 치마부에의 그림에 파리를 그렸는데,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했는지 스승이 파리를 쫓으려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극사실주의 회화를 맛본 21세기의 눈으로 볼 때 14세기 그림은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림을 볼 때는 당시의 눈으로 시간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뻣뻣하고 어색한 중세 그림 속 인물과 비교한다면 14세기 미술의 변화가 느껴질 것이다.





보티첼리, The Birth of Venus, c.1485, Collection of Uffizi Gallery

두 번째 단계인 15세기는 예술이 완성의 경지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인 시기다. 이때는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c.1485)으로 유명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르네상스 최고의 발명인 원근법을 소화한 마사초(Masaccio de San Giovanni) 등이 포진해 있다. 마사초는 ‘성 삼위일체(Holy Trinity)’(1425~1428)에서 뒤쪽으로 갈수록 사물이나 인물을 작게 그려 그림에 깊이를 더하는 원근법을 최초로 실험했다. 아치 아래 공간이 깊숙이 들어간 듯 보이고 십자가상이 눈앞에 걸린 듯 생생한 그림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림의 구성이 십자가 아래, 그러니까 화면 중앙에서 조금 아래로 모인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2차원인 그림 화면에 3차원의 입체 공간을 만들어주는 마법, 즉 원근법의 소실점이다. 바사리는 이 시기의 작가들이 원근법과 단축법 등 회화의 표현 기법을 터득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상을 묘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한 경지에 다다르기에는 부족하다.
바사리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의 시대인 16세기에 비로소 예술은 최고조에 도달한다. 이제 예술가들은 인물이나 대상을 사실처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른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인물은 궁극의 예술을 이끈 미켈란젤로다. 바사리는 미켈란젤로가 신이 지상에 내려보낸 인물이라 여겼고, 그리스·로마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로 인식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완벽한 비례나 사실적 표현에 꼭 맞지는 않다. 하지만 ‘다비드(David)’(1504) 같은 작품은 기술과 기교를 넘어 어떤 시대, 어떤 지역 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아함과 아름다움, 완벽함을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에게 ‘아담의 탄생(The Creation of Adam)’(1510)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역시 이전 시대의 원근법 같은 기술을 쓰지 않았지만 더욱 생생하고 진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미켈란젤로의 진면목이 드러난 이 작품에 대해 바사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암흑에서 헤매던 모든 그림과 세계를 비춰주는 예술의 진정한 횃불이 되었다”라고 평했다.





라파엘, Madonna in the Meadow, Between 1505 and 1506

미켈란젤로를 통해 예술이 정점에 올랐을지라도 운명의 굴레 속에서 예술은 쇠퇴기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가 오면 르네상스 황금기를 꽃피운 작품도, 그들의 이름도 잊힐 것이다. 바사리는 예술이 파괴되고 혼돈에 빠질 때 자신의 책이 예술가들의 이름을 지켜 세상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책은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예술의 생명을 지탱하고 수렁에 빠진 예술가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가 르네상스 작품에 찬사를 보내고 그 후 예술이 계속해서 명맥을 이었으니 바사리의 바람은 이루어진 걸까?
르네상스 미술을 품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등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르네상스 작품 앞에 서면 미적 완성도와 풍부한 표현, 명작이 뿜어내는 오라에 압도당한다. 여기에 바사리는 펜으로 완벽을 더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수많은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고 시대의 흐름을 분석하면서 미술사라는 분야가 체계를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이론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술과 미술사가 존재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위대한 예술가의 역사를 기록한 위대한 이론은 르네상스와 현대미술, 지금의 우리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김유미(미술사)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