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헤리티지를 전하다

ISSUE

2023-07-17

모던 헤리티지를 전하다

작가와 함께한 시간을 밑거름 삼아 그들만의 역사를 써가는 갤러리

자비에르 후프켄스 갤러리(생조르주) 외부 전경.

자비에르 후프켄스 갤러리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철학은 예술 그 자체의 의미에 중점을 둡니다. 이를테면 자유, 호기심, 반항, 변화 같은 것이죠. 우리와 함께하는 아티스트는 이런 아이디어를 작품에 구현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경계를 허무는 이들입니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사람 그리고 의미 있는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기에 관람객이 갤러리에 들어설 때는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인체와 공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영국의 조각가 앤터니 곰리와 우리의 오랜 협업을 지켜보면 갤러리의 핵심 가치를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갤러리 오픈 이후 줄곧 함께해온 그와 작년에 아홉 번째 전시를 기획하며 35년 우정을 기념했습니다.
갤러리 초창기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떤 점이 바뀌었고 또 어떤 점이 그대로인가요? 제가 갤러리를 열었을 때 브뤼셀 미술계는 초기 단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팩스도, 인터넷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이 변했죠. 기술이 우리의 운영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고, 미술계는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했습니다. 저는 밀턴 에이버리, 루이즈 부르주아, 앨리스 닐 같은 작가가 남긴 작품과 함께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트레이시 에민, 스털링 루비 같은 미드커리어 작가들과 일하고 콘스탄틴 니체, 레이철 율레나 윌리엄스 같은 젊은 인재를 지원하는 일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른 갤러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각 대륙에 지점을 운영하는데 자비에르 후프켄스는 브뤼셀에만 지점을 두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브뤼셀을 사랑합니다. 이곳에서 자랐고, 브뤼셀은 제 DNA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세계는 이미 글로벌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독자성을 키우는 데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뤼셀은 바젤이나 나오시마처럼 예술 애호가에게 특별한 도시예요. 이 도시는 풍부한 문화적 토양, 완벽한 입지, 항상 예술을 탐구하고 참여하길 열망하는 대중 등 갤러리스트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었기에 이곳에서 함께 성장하며 브뤼셀의 지역 문화 발달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3개의 지점을 운영하시는데, 각 공간의 특징은 무엇이고, 그에 따라 전시 기획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합니다. 각 전시 공간은 다른 시대에 다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기에 고유의 정체성을 갖췄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전시 기획이 가능하죠. 생조르주 지점은 대형 설치나 서베이 전시를 하기에 이상적인 공간이고, 반에이크와 리볼리 지점은 기획에 더욱 초점을 맞춘 전시가 가능합니다. 올해 초 니콜라스 파티는 고전을 독자적 방식으로 해석한 전시를 위해 생조르주의 공간을 채색된 무대로 연출했고, 미국의 거장 밀턴 에이버리의 자연 친화적 작업세계에 주목한 전시에는 반에이크의 공간이 완벽하게 어울렸습니다.

자비에르 후프켄스 대표.

니콜라스 파티의 [cascade]전 전경.

해외에 지사가 없어도 미술관 전시와 아트 페어 등을 통해 문화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통 프로젝트는 어떤 기준으로 실행 여부를 결정하시나요? 우리는 브뤼셀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것을 지리적 제한 요소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아트 페어에 참가하고 국제 전시 프로젝트를 조직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제가 프로젝트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언제나 퀄리티입니다. 런던의 바비컨 센터에서 열린 앨리스 닐의 [Hot Off the Griddle]전이나 오하이오의 콜럼버스 미술관에서 열린 레슬리 밴스 전시에 작품 대여를 연결해주거나, 다니엘 뷔랑과 데이비드 올트메이드의 공공 미술 커미션을 지원한 것 등이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한 활동입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가들과 함께하며 현대미술사를 써왔습니다. 작가와 함께 작업할 때 갤러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갤러리와 작가의 관계는 상호 신뢰와 자유를 기반으로 합니다. 우리는 작가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눈에 보이는 역할과 보이지 않는 역할을 모두 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작가의 창작 활동을 촉진하고 가능한 최고의 지원을 제공해야 하죠. 이때 의견과 지침을 제공하되, 항상 아티스트 개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자비에르 후프켄스의 계획에 대해 알려주세요. 미술이 아닌 개인적 관심사에 대해서도요. 작년에 갤러리 확장과 더불어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려 합니다. 매번 새로운 전시는 다음 전시에 대한 기준을 높이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예술 외에 와인에 대한 열정도 남다른 편입니다. 부르고뉴 와인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데, 예술 세계에 빠져 있지 않을 때는 와인 한잔 음미하거나 와인과 예술을 동시에 즐기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에디터 박수전(노블레스 컬렉션)
사진 제공 자비에르 후프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