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의 특별함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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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9

까르띠에의 특별함

홍콩 고궁 박물관에서 8월 16일까지 까르띠에의 특별전 <까르띠에와 여성(Cartier and Women)>이 열린다. 세기를 관통하는 여성들과 주얼리에 얽힌 매혹적인 스토리를 펼쳐보인다.

위쪽 홍콩 고궁박물관.
아래쪽 왼쪽부터 <까르띠에와 여성> 전시 프레스 컨퍼런스 중인 홍콩 고궁박물관 부관장 데이지 왕, 관장 루이 응, 까르띠에 스타일 및 헤리티지 디렉터 피에르 레네로.

지난 4월, [까르띠에와 여성(Cartier and Women)]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오른 홍콩행 비행기에서는 기대와 흥분만이 존재했다. 빅토리아 하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운데 황금빛으로 우뚝 선 홍콩 고궁박물관(Hong Kong Palace Museum)의 금빛 자태에 매료된 것도 잠시, 176년 까르띠에의 주얼리 역사를 함축한 특별전을 보기 위해 3층 전시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칠흑같이 어두운 전시 공간에서 13점의 티아라가 찬란한 빛의 군무를 펼쳐 보였고, 진귀한 빛의 공명을 따라 옮긴 공간에 다다라 한 문구 앞에서 멈춰 섰다. 한쪽 벽면을 큼지막하게 채운 문구를 보자, 미세한 떨림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_메이 웨스트(Mae West)

여기서 ‘나쁜 여자’는 내가 갈 길을 오롯이 나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 여성을 뜻한다. 전통적 사회규범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여성을 나타내는 문구다. 이 공간에서 나는 나쁜 여자의 발자취를 따라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소신과 욕망에 충실하며 사회의 위선과 억압에 저항했던 여성들은 과연 까르띠에와 어떤 교감을 나누었을까?

주얼리와 여성의 상관관계
까르띠에는 1989년 파리 프티 팔레 미술관 전시를 시작으로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주요 예술 기관과 협업해 특별한 테마의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까르띠에와 여성>전은 큐레이팅을 담당한 홍콩 고궁박물관과 4년 반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해온 노력의 결정체다. 무엇보다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여성과 까르띠에의 연결 고리를 탐구하는 첫 번째 대규모 전시라는 데 의미가 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300여 점의 걸작은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주얼리와 시계, 오브제, 아카이브 자료로 대부분 까르띠에 컬렉션에서 엄선한 것이다. 18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약 3500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 방대한 컬렉션은 까르띠에가 단순히 주얼리 브랜드가 아니라 장식 예술계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전시 주제에 걸맞게 여성과 주얼리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주얼리를 선별한 것도 특징. 홍콩에서 열리는 전시인 만큼 중국의 미학이 장식 모티브, 기술, 재료 면에서 까르띠에에 영감을 준 방식과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에 미친 영향을 집중 조명한다.





홍콩 고궁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특별 전시 ‘까르띠에와 여성’ © Cartier
(왼쪽부터) 까르띠에 이미지, 헤리티지 & 스타일 디렉터 피에르 레네로, 배우 유가령, 사업가 팬시 호, 까르띠에 인터내셔널 CEO 시릴 비네론, 배우 양자경, 까르띠에 아시아 총괄 사장 나이젤 뤼크, 배우 임청하, 홍콩 고궁박물관장 루이 응. © Cartier
나폴레옹 1세의 조카 손녀 마리 보나파르트 공주의 티아라.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존재’를 경험하는 시공간으로 초대
마침내 인간이 양식장에서 진주를 키워내고 다이아몬드 커팅의 완성체라 할 ‘모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을 개발한 20세기 초, 까르띠에는 이미 파리를 넘어 런던과 뉴욕에 안착해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중 여성은 메종의 미학적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까르띠에 주얼리를 선택한 여성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변화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영향력과 자율성,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주얼리를 적극 활용했다. 그러니 이번에 전시한 주얼리는 까르띠에로부터 혁신과 창의성을 이끌어낸 여성에 대한 헌사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까르띠에는 19세기부터 왕족과 귀족을 비롯해 영화배우와 사교계 명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윈저 공 부인, 그레이스 켈리, 바버라 허턴, 데이지 펠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임청하, 유가령, 팬시 호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이 소유하거나 또는 현재 소유하고 있는 까르띠에 피스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임청하와 유가령의 티아라에서는 역사적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었고, 우아함의 대명사인 그레이스 켈리의 약혼반지는 사진만으로 전달할 수 없는 고귀한 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주얼리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당시 스타일과 시대상을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성 그리고 그들의 여정을 수집한 까르띠에의 2세기 역사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눠 압축적으로 풀어냈다. 곳곳에 컬렉터의 사진과 인용구를 눈에 띄게 배치해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까르띠에와 여성의 여정을 따라가도록 했다.
1부 ‘왕실과 귀족 여성: 우아함과 품격’ 섹션에서는 까르띠에의 초기 역사인 19세기, 왕실과 엘리트 여성들이 까르띠에의 번영에 공헌한 역할을 조명한다. 왕실 및 귀족 여성 고객의 특별 주문 작품으로 구성했다.
벨 에포크 티아라에서 재즈 시대 헤드피스까지
본 전시의 시작과 끝에는 티아라가 있다. 100여 년 전 다이아몬드 초커와 함께 벨 에포크의 화려함을 극대화한 주인공은 바로 티아라였다. 한때 왕족의 전유물이던 티아라는 20세기에 이르러 은행가와 산업가 여인들의 머리 위로 옮겨갔다. 당시, 얼굴보다 티아라로 기억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1900년에서 1915년 사이 티아라는 유행의 정점을 찍었다.
2부 ‘신여성: 전통과의 결별’ 섹션에서는 여성해방운동을 반영한 주얼리 디자인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까르띠에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지휘봉을 잡은 쟌느 투상이 여성해방과 스타일 리더에게 미친 영향력도 조명한다.
신여성의 등장과 아르데코 주얼리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여성의 독립성과 자유로움 그리고 기존 사회규범에 대한 반항정신으로 거듭났고, 이는 가사와 순종으로 대변되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과 극명히 대비되었다. 자유와 권리를 쟁취한 여성들은 이전 시대의 수동적인 모든 것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이후 담배는 미국에서 ‘자유의 횃불’이자 평등의 상징이 되었다. 1920년대 ‘플래퍼’들이 ‘신여성’의 개념을 대표하는 문화적 힘으로 우뚝 선 이유다. 한때 귀족의 상징이던 주얼리는 이제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화했다.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와 사회적 역할에 자율성을 행사하고자 했고, 까르띠에는 혁신적 디자인을 통해 그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바버라 허턴의 타이거 이어 클립 한 쌍.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데이지 펠로의 힌두 네크리스.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중국 화풍을 담은 차이니스 베니티 케이스. 골드, 플래티넘, 자개, 산호, 사파이어, 오닉스 등 보석을 장식했다.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바버라 허턴의 비취 목걸이. Marian Gerard, Collection Cartier © Cartier
윈저 공 부인이 소유했던 전설의 팬더 클립 브로치.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윈저 공 부인의 빕 네크리스.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세기의 주얼리 컬렉터들의 작품 비교
주얼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라이벌 컬렉터들의 주얼리를 비교해보는 것 또한 흥미진진한 경험일 터. 두 번째 섹션에 개성과 특징이 확연히 다른 목걸이 세 점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바로 윈저 공 부인의 자수정 & 터키석 목걸이, 바버라 허턴의 비취 목걸이, 데이지 펠로의 힌두 목걸이다. 모두 소더비와 크리스티 옥션을 뒤흔든 역대급 피스다.
3부 ‘탐구하는 여성: 다양한 문화를 넘나드는 영감’ 섹션에서는 참신함을 향한 열망을 충족시키며 까르띠에 작품에 활기를 북돋아준 중국·러시아·인도·페르시아·이집트·일본의 예술 문화가 미친 영향력을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20세기 초 여성 인권 운동과 함께 교통수단의 발전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여성의 욕구를 증폭시켰다. 이때 이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표명해온 까르띠에는 각국의 문화와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스타일과 소재, 기술, 컬러를 수용하고 재해석하는 데 앞장섰다.
3부에서는 까르띠에 아이코닉 컬렉션의 변천사도 확인할 수 있다. 1914년에 손목시계로 처음 선보인 이래 힘과 여성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팬더 컬렉션은 윈저 공 부인을 시작으로 데이지 펠로와 바바라 허턴 등 영향력 있는 여성들의 ‘팬더매니아’ 붐으로 이어졌다. 윈저 공 부인의 팬더 시리즈와 바바라 허턴의 타이거, 우위를 가릴 수 없는 카리스마 대결 또한 취향을 초월한 볼거리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4부 ‘영향력 있는 여성: 매혹적인 전설’ 섹션에서는 까르띠에의 상징적 주얼리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간 긴밀한 관계를 탐구한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까르띠에는 여성의 지위 상승과 함께 여성 고객이 영향력과 개성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주얼리를 적극 활용하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오드리 헵번은 “레드가 어울리지 않는 여자는 없다”고 말했다. 여배우의 리즈 시절을 함께한 루비와 다이아몬드 목걸이, 티아라도 놓치지 말 것! 그레이스 켈리의 티아라 겸 브로치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루비 목걸이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 Cartier
스페셜 오더로 만들어진 키메라 뱅글.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잔느 파킨(1869-1936)의 소장품이었던 브로치.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사업자 팬시 호의 소장품 타지마할 브로치와 티아라. 192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베레니스 목걸이’로 출품된 역사적 작품을 티아라로 새롭게 디자인했다. 탈착이 가능해 브로치로도 착용할 수 있다. © Cartier
사업자 팬시 호의 소장품 타지마할 브로치와 티아라. 192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베레니스 목걸이’로 출품된 역사적 작품을 티아라로 새롭게 디자인했다. 탈착이 가능해 브로치로도 착용할 수 있다.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Make Yourself Royal
한때 왕족과 귀족만을 위한 주얼러였던 까르띠에는 20세기 들어 고객층을 확장했다. 왕실과 귀족 여성의 전유물이던 티아라 또한 특별한 날에 착용할 수 있는 패션 액세서리로 거듭났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전시의 4부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대의 컬렉터이자 배우 유가령, 사업가 팬시 호, 배우 임청하의 소장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젠더 뉴트럴: 마하라자의 목걸이 두 점
4부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파티알라의 마하라자인 부핀더 싱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영화 <오션스 8>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나란히 배치한 것도 흥미롭다. 사실 오랫동안 주얼리는 남성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장식하고 힘을 나타내며 지배적인 지위를 주장하고 남성성을 과시하는 도구로도 사용됐다. 특히 인도의 전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도에서 주얼리는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고 남자가 여자보다 더욱 화려하게 치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주얼리는 더 이상 특정 성별의 특권이 아니다. 지난 세기, 영향력 있는 남성들을 위해 디자인된 까르띠에 목걸이가 유명 현대 여성들을 위해 재해석된 것은 필연이었다.

차라리 나쁜 여자가 되어 어디든 가리라
전시를 관람한 두 번의 여정 모두에서 오랫동안 발길을 붙잡은 것은 윈저 공 부인의 ‘사파이어 위에 앉은 팬더 브로치’였다. 자신 때문에 영국의 왕위까지 내려놓은 남편 에드워드 8세와 세기를 뒤흔든 사랑을 나눈 것과 별개로, 그녀는 관습적 아름다움을 타파하고 혁신적이고 독자적인 주얼리 컬렉션을 세상에 남겼다. 특히 팬더 컬렉션에 남다른 열정과 개성을 투영했는데, 이는 여성이 주얼리의 의미를 재정의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주체적 삶을 사는 것이 ‘나쁜 여자’라면, 다시 태어나도 기꺼이 ‘나쁜 여자로 어디든 가는’ 쪽을 택할 여인이리라. 작품 하나하나에 새겨진 스토리에 빠져들어 꼼꼼히 관람하다 보면 반나절이 금세 지나간다. 전시를 관람한 후에는 서구룡 아트 공원을 거닐며 마음속 깊이 파동하는 주얼리의 진한 여운을 천천히 음미했다. 까르띠에 주얼리와 여성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영구적 관계에 대해 다시 되새겨본다.

 

에디터 이주이(jylee@noblesse.com)
윤성원(주얼리 스페셜리스트 겸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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