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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4

PARISIAN ECHOIST

아트 디렉터 전상현의 작업에는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한 후 평소 살아보고 싶던 파리로 이주해 아트 스쿨 IFM에 진학한 아트 디렉터 전상현과 에르메스의 인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렌치 하이엔드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은 학교에 과제로 제출한 ‘에르메상스(Hermessence)’ 향수 시리즈 이미지 작업이 에르메스의 주목을 받아 이례적으로 실제 프로젝트로 이어진 것.
“에르메스 본사에서 제 작업으로 전시를 기획하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이곳에서 꼭 일하고 싶다고 했죠. 처음에는 본사에서 제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어요.(웃음) 다섯 번의 인터뷰와 오랜 기다림 끝에 인턴으로 업무를 시작했고, 6개월이 지나 정식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인턴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을 때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그 시절 전상현에게 에르메스와 함께하는 건 간절한 일이었다. 단순히 프랑스 하이엔드를 상징하는 유명 브랜드여서가 아니다. 본연의 강한 세계를 우아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에르메스 특유의 코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전상현은 6년 동안 아트 디렉팅, 프로덕션, 그래픽디자인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로운 모험을 강행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회사 생활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나, 여름휴가 시즌에만 한국에 갈 수 있는 직장인의 리듬이 아쉬워 마흔 살이 될 무렵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었다. 결국 지난 3월 전상현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오피신 드 크레아시옹(Officine de Creation, ODC)’을 설립했다.
‘그리스에서 타코 레스토랑을 열어볼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했지만, 전상현이 아트 디렉터로 남아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는 ODC가 티파니와 진행한 ‘Reasons to Smile’ 프로젝트만 봐도 알 수 있다. 브랜드 앰배서더 지코가 직접 녹음한 음원에 캐릭터와 로고 디자인, 아트 디렉팅을 담당해 완성한 짧은 애니메이션은 뉴욕에서 태어난 캐릭터 ‘티피’가 왕왕 찾아오는 시련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서울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이는 감성의 영역인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겉으로 보이는 미감이 아닌 진정성임을 믿는, 그리고 남을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큰 동기라는 전상현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 더욱이 수익금 일부가 자선단체에 기부되는 프로젝트라 더욱 투명한 진정성을 담았으리라. “사실 남을 웃게 해주고 싶어 일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이기적인 거예요. 그저 제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고, 그래야 제가 행복하니까 그런 것뿐이죠.” 티파니 프로젝트뿐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이 만연한 시대,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 담긴 따뜻한 작업을 내놓는다는 평을 받는 전상현에게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물으니 매력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모로코에서 촬영한 에르메스 블랭킷 영상 작업.
스페인에서 촬영한 에르메스 남성복 사진 작업. © Herme‵s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ODC 아트 디렉터로 티파니와 진행한 ‘Reasons to Smile’ 프로젝트. © Tiffany & Co.


“원래 노스탤지어적 감성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우연히 맡은 꽃향기에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경험이 너무 행복할 정도로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잖아요. 이렇게 다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가끔은 뒤돌아보며, 혹시 남겨두고 온 잊힌 뭔가가 있지 않은지 천천히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작업에 진정성을 녹여내기 위해 억지로 뭔가를 찾기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같은 철학적 부분을 고민하는 게 먼저라고 믿는 그는 최근 겪은 소소한 경험에 대한 감상을 들려줬다. “얼마 전 점심을 먹기 위해 주차하고 가려는데, 파리에서 보기 힘든 앵무새 같은 초록색 새 한 마리가 제 차 위에 앉는 거예요. 한참을 그러고 있길래 계속 쳐다봤습니다. 그러다 약속에 늦을 것 같아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어느새 사라졌더라고요. 며칠 동안 ‘점심을 취소하고 집에 데려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 새의 소중한 의미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물질적 기쁨보다는 소소한 데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철학가의 저서 읽기와 사람의 존재를 감성이 아닌 과학으로 분석한 이론 접하기, 그저 예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전상현은 ODC를 큰 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 대신 다른 꿈을 꾸고 있다. 패션에 국한하지 않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협업하기, 동물 보호 같은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기, 다큐멘터리 작업에 도전하기 등이 바로 그것. 본인은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앞서 그가 말한 것처럼 전상현의 마음속에는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진솔한 바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훗날 마주하게 될 에코이스트(echoist, 나르시시스트 반대 개념. 경청과 공감을 잘하는 것이 특징)의 작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벌써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취재 배우리(파리 통신원)
사진 알렉상드르 타바스트(Alexandre Tabaste)(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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