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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2

초상의 세계

데이비드 호크니·파블로 피카소·헨리 테일러의 초상화와 함께 떠나는 시간 여행.

헨리 테일러, ‘Untitled’, 2020. © Henry Taylor
헨리 테일러, ‘Peanuts’, 2007. © Henry Taylor


초상화는 매력적이다. 캔버스 속 주인공의 스타일과 주변 풍경에서는 특정 시기의 사회적·문화적 분위기가 묻어난다. 또 인물의 눈빛과 몸짓은 그가 어떤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덕분에 관람객은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다. 작가들의 미감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인물일지라도 예술가의 관심사에 따라 색다른 해석을 끄집어내기 때문. 더욱이 매체(연필, 유화, 파스텔 등)마다 자아내는 온도에도 차이가 난다. 이처럼 초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고, 예술가의 세계관을 엿보게 한다. 현재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는 이러한 즐거움을 누릴 전시가 관람객을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이곳에선 각자 개성이 뚜렷한 세 작가의 초상화와 마주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중단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여정이 재개된다. 당시 개막 20일 만에 별 5개를 받은 전시가 중단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호크니의 팬들을 달래기라도 하듯 다시 돌아온 개인전에는 2021~2022년에 완성한 신작 30여 점이 추가됐다. 11월 2일부터 내년 1월 21일까지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열리는 [Drawing from Life]전은 연필·수채화·파스텔·카메라·아이패드 앱 등으로 그린 16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그중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영국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의 초상화. 헝클어진 머리카락, 발개진 목과 대비되는 하얀 진주 목걸이, 스트라이프 카디건 등을 묘사한 결과물을 보노라면 톱스타가 친숙한 동네 청년처럼 다가온다. 이 외에도 전시에서는 호크니의 어머니와 디자이너 셀리아 버트웰, 옛 연인이자 큐레이터인 그레고리 에번스 등과 조우하는데, 이를 통해 지난 60여 년간 그의 화풍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 ‘Arlequin’, 1923. © Succession Picasso 2023
데이비드 호크니, ‘Celia, Carennac, August’, 1971. © 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 ‘Harry Styles’, 31st May 2022. © David Hockney


다음으로,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내년 1월 15일까지 개최하는 전은 피카소 서거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드로잉·판화·회화 등 다양한 작업으로 구성한 전시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 초상화다. 큐비즘이라는 꼬리표 탓에 피카소의 작품 전부가 ‘아비뇽의 처녀들’(1907), ‘우는 여인’(1937)으로 대표되는 입체적 형식일 것 같지만 의외로(?) 초기의 초상화는 평범하다. 피카소는 어릴 때부터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뭉크와 로트레크의 영향을 받은 청년 시절에도 파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의 그림은 20대 초반 확 바뀐다.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푸른빛이 감도는 우울함 그 자체다. 하지만 이내 아프리카 민속 가면을 접하면서 얼굴이 기하학적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예술적 굴곡은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상과 궤를 같이한다. 추측건대, 피카소는 과거의 것을 재현하기보다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자신과 어울린다고 판단했으리라. 이후에도 작가는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붓을 들었다. 계속해서 달라지는 형상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피카소의 마음 상태를 추적하게 돼 예술가와 교감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지막으로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컬렉션과 하우저 앤 워스 소속으로 유명한 헨리 테일러의 회고전 가 진행 중이다. 독특한 초상화로 입지를 다졌지만, 정작 그는 초상화가라는 꼬리표를 거부한다. “작업은 존경에 관한 것입니다. 제 그림 속에 등장한 사람들을 존경해요. 단순히 이상화된 이미지가 아닌, 한 사람과 그의 역사를 담아낸 까닭이죠. 비록 그들은 캔버스 위에서 2차원적으로 존재하지만, 저는 그들을 3차원적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의 작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을 주제로 한다. 특히 미국의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차별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냉혹한 현실을 전한 사진, 신문 기사 스크랩, 정신 병동에서 일한 경험, 캘리포니아에서 직접 겪은 일 등을 바탕으로 하는 헨리 타일러 회화의 첫인상은 강렬하다. 채도가 높은 색상의 대비가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인상적인 점은 구체적 자료를 활용한 것에 비해 이목구비가 디테일하지 않다는 것. 다소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세히 관찰하면 이상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기에 생각을 억눌러서일까. 뭔가 말하려다 멈춘 듯한 표정이 되레 모든 말을 내뱉은 모양새다. 문득 침묵도 언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아마 헨리 테일러의 초상화 속 느슨한 틈에서 숨겨진 목소리가 들려서일 테다. 전시는 내년 1월 28일까지.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사진 국립 초상화 미술관, 퐁피두 센터, 휘트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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