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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1

건축 거장의 시선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의 시선은 언제나 내일을 향한다.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영국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

올해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의제는 ‘건축’이다. 우리가 딛고 선 공간을 살피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관계성, 이주, 공동체 등 다양한 층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 중엔 우리 모두의 숙제로 떠오른 ‘지속가능성’도 있다. 서소문 본관 리모델링 이슈를 앞두고 생태학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에서, 미술관이 4월 25일부터 7월 21일까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건축 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이유다. 1968년 사뮈엘 베케트 극장 프로젝트를 비롯해 친환경 디자인이 돋보이는 건축 프로젝트로 명성을 떨친 그다. 윌리스 파버 앤 뒤마 빌딩, 세인즈버리 아트 센터, 런던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 시청 등 건축사에 이정표로 남을 만한 건축물만 수십 개. 199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그는 오늘날 가장 성공한 영국 건축가로 꼽힌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Partners)가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에서는 그의 주요 건축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1960년대부터 이어온 지속가능성의 철학과 미래 건축에 대한 사유를 펼칠 예정이다. 그 전시에 앞서 노먼 포스터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위쪽 지속 가능한 일터의 개념을 재정의한 블룸버그 빌딩. © Nigel Young / Foster + Partners
아래쪽 100% 재생 가능 에너지로 운영되는 애플 신사옥. © Steve Proehl

우선 전시 소감이 궁금합니다. 그간 한국 메이저 미술관에서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가 많지 않았기에 모두에게 더욱 특별하리라 생각합니다. 기대가 커요. 서울에 처음 온 게 거의 30년 전인데, 지난해 방문했을 때 새삼스럽게 많은 것이 변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서울이 품고 있는 문화생활이 인상 깊었어요. 이런 도시,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저와 포스터 앤 파트너스의 작업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지난해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도 건축 세계를 선보이는 전시를 개최했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초기 미완성 프로젝트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한 디오라마 등 일부 작품을 처음 공개합니다. 이번 전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 문화와 개조(retrofit), 웰빙과 기술, 공공 및 장소 디자인, 미래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구성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전시는 60여 년간 지속된 작업을 시간적 맥락에서 짚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의제에 대한 헌신이 1960년대부터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거죠.
전시에선 문화 예술 시설 프로젝트를 다수 선보이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건축가님은 홍콩 HSBC 빌딩, 런던 거킨 타워 등 오피스 건물로 널리 알려져 전시장을 찾은 이들이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문화 예술 시설 프로젝트를 전개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성격이 다른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지만, 모두 하나의 디자인 철학 아래 이루어집니다. 바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거죠. ‘과거를 의식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현재를 위해 디자인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이유입니다. 문화 예술 시설 프로젝트에는 대영박물관 대중정에 유리 덮개를 설치하는 등 기존 건물을 개조한 사례가 많은데, 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건물은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게 아닌 재활용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요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입니다. 건축가님은 흔히 ‘하이테크’ 건축의 일인자로 불리지만,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한 키워드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이테크는 결국 지속가능성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맞아요. 하이테크는 건축평론가가 쓰는 단어로, 어떤 철학보다는 시각적 스타일을 암시하죠. 수단으로서 기술로 이루려는 목적은 앞서 말한 디자인 철학,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집니다. 다만 돔부터 현대식 위생 시설, 엘리베이터에 이르기까지 건축사는 여러 측면에서 건축 기술의 역사이기도 해요. 그만큼 기술과 지속가능성은 밀접한 관계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지속가능성은 사람들에게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건축가님은 커리어 초기부터 그 가치를 담은 건물을 설계했죠. 당시엔 이런 개념이 희박했을 텐데, 일찌감치 지속가능성을 작업의 중심에 둔 계기가 있나요? 리처드 로저스 부부와 함께 설립한 팀 4(Team 4)의 1963년 초기 건축 프로젝트는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소규모, 고밀도로 지어졌습니다. 현재 작업의 뿌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후 수십 년간 제게 지속가능성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어요. 과거에 저를 이끌던 원칙이 직관에 따른 것이었다면, 지금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죠. 지구의 취약성은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1962)이나 건축가이자 사상가인 벅민스터 풀러의 <우주선 지구호 사용 설명서>(1969) 등에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오래전 저는 디자인을 통해 재활용, 에너지 절약, 자연광과 전망의 중요성을 알리는 한편 1972년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 베스트비의 숲에 지은 사무실 파빌리온처럼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일할 수 있는 건물을 활성화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직관은 2016년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연구 자료로 입증됐는데, 해당 분야의 최신 연구 중 하나로 자연 환기가 가능한 친환경 건물의 이점을 정량화한 것입니다. 자연 환기의 장점을 큰 규모로 드러낸 프로젝트로는 런던의 블룸버그 빌딩, 캘리포니아주 쿠퍼타노의 애플 신사옥 같은 최근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위쪽 자이드 국립박물관에 솟은 5개 강철 구조물은 태양열을 받아 내부의 뜨거운 공기를 수직으로 끌어올린다. © Foster + Partners
아래쪽 달 토양을 건축자재로 사용하는 달 거주지 프로젝트. © ESA / Foster + Partners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성과물을 꼽는다면? 건축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점을 고려할 때, 뉴욕의 270 파크 애비뉴 같은 현재진행형 건축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몇 가지가 떠오르는데요. 지속 가능한 무공해 공공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준 베를린 국회의사당, 제로 폐기물 그리고 탄소중립 도시를 목표로 하는 UAE의 마스다르 시티, 세계 최초의 생태학적 고층 빌딩인 프랑크푸르트의 코메르츠방크, 그리고 말씀하신 270 파크 애비뉴 등이 있습니다. 270 파크 애비뉴는 전기로만 작동하는 뉴욕의 가장 큰 건물이 될 것입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지속가능성 측면과 탁월한 실내 공기질을 갖춘 웰니스 차원에서 모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만합니다.
전시에서는 지속가능성의 연장선 위에 놓인 미래 건축 프로젝트가 소개됩니다. 관련 프로젝트를 살펴봤는데, 개인적으로 런던 전역에 안전한 자전거도로를 제안한 스카이 사이클 프로젝트, 버진 하이퍼루프 원과 협력해 화물 네트워크의 비전을 제시한 하이퍼루프 프로젝트 등 ‘이동성’에 관한 고민이 흥미로웠습니다. 근사한 자동차 컬렉션을 소유하고, 제트기와 헬리콥터를 운전하는 등 각종 이동 수단에 관한 남다른 애정에서 비롯된 걸까요? 자동차, 기관차, 비행기,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동 수단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특히 미학과 기술이 물 흐르듯 융합한 클래식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건물과 인프라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교통 시스템, 교량, 광장, 공원, 거리 등은 건물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하죠. 사람들은 이런 요소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프라는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프라 구축은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를 새롭게 해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발생할 필요를 인식하는 것이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한 투자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많은 혜택이 우리를 대신해 앞장섰던 19세기 선구자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세요.
미래 건축 프로젝트 중에는 달 거주지, 화성 거주지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렌더링 이미지일 뿐이지만, 그 형태에서 이글루가 떠오르더군요. 건축가님이 상상한 지구 밖 건축, 인간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유럽우주국 그리고 NASA와 협력해 달과 화성의 거주지를 고민해왔습니다. 돔 구조물은 우주여행과 외계 생활의 독특한 제약 조건에 특화되었죠. 한편으로는 저와 포스터 앤 파트너스가 아프리카 농촌을 위해 제안한 드론 이착륙장과 비슷한 형태를 띱니다. 주변의 흙을 주요 건축 재료로 사용하는 등 건물이 그 지역에서 ‘자라난다’는 공통점도 있고요. 화성에 건물을 짓든 지구 어딘가에 새로운 도시 계획을 세우든, 미래를 낙관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그것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미래에 관한 믿음은, 더 깨끗하고 밝은 세상을 꿈꿨던 어린 시절에 기인했습니다. 1950년대 SF 소설은 그런 분위기를 반영했고, 실제로 많은 부분이 오늘날 현실이 되었죠.
이쯤에서 건축가님이 생각하는 건축, 디자인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건축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하고, 살고 싶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디자인은 긍정적 환경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공동체에 소속감을 부여하고, 빈민가를 변화시키고, 재난 시 대피소를 제공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기까지. 좋은 디자인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영혼을 고양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님의 그런 믿음이 지금도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겸손하게 경청할 것, 호기심을 갖고 과감하게 도전할 것.’ 한 대학 졸업생에게 했던 조언은 스스로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하늘 높이 솟은 빌딩뿐 아니라 작은 헛간과 오두막, 자동차를 비롯한 이동 수단, 일상의 가구와 소품까지 거의 모든 것에서 디자인에 관한 열정을 얻어요. 그래서 건축가로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다음 선을 그리기 위해 연필을 잡는 매일입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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