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왕국의 몰락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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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3

태블릿 왕국의 몰락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태블릿PC 마켓이 무너지고 있다. 스마트폰에 치이고 노트북에 덜미가 잡힌 태블릿PC의 현재를 조사했다.

이것도 조금, 저것도 약간 할 줄 안다는 건 결국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나만의 것, 남과 다른 확실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요즘 태블릿PC가 처한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XP 운영체제에 태블릿 펜 입력과 터치스크린 조작 기능을 추가한 ‘윈도XP 태블릿 PC 에디션’을 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대와 달리 태블릿PC 보급은 생각보다 더뎠다. 태블릿PC에 생명을 불어넣은 건 스티브 잡스였다. 2010년 잡스의 은혜를 입고 세상에 태어난 ‘아이패드’는 태블릿PC 보급화에 불을 지폈다. 잡스는 “태블릿PC가 5년 뒤엔 PC를 대체할 것”이라며 “아이패드는 노트북보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스마트폰보다 성능은 우월해 곧 PC 시대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처음엔 잡스가 예상한 대로 태블릿PC 시대가 찾아오는 듯했다. 아이패드가 시장을 휩쓸었다. 출시 1년 만에 전 세계에서 2000만대에 육박하는 아이패드가 팔렸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는 앞다퉈 태블릿PC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갈 길 잃은 태블릿PC
최근 시장조사업체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는 제 갈 길 잃은 태블릿 PC의 상황을 보여주는 숫자를 공개했다. 올해 2분기 전 세계 태블릿PC 판매량이 3790만 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4% 감소한 수치다. 태블릿PC 시장은 2010년 1900만 대에서 2014년 약 2억4250만 대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2억360만 대로 16%가 줄었다. 올해 2분기 판매량은 2012년 3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무엇이 태블릿PC를 이토록 초라한 궁지로 몰아넣었을까. 태블릿PC는 경쟁 상대인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에서 특유의 강점을 소비자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점점 더 다재다능해지는 스마트폰과 가볍고 얇아지는 노트북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태블릿PC는 스마트폰보다 큰 화면과 노트북보다 간편한 휴대성을 주요 무기로 내세웠다. 그 강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태블릿PC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대형 화면을 채택한 스마트폰에 있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게임, 인터넷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어 큰 화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제조사는 점점 더 큰 화면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현재 판매되고 있는 스마트폰 중 가장 판매율이 높은 화면 크기는 5∼5.5인치(41.6%)다. 일명 ‘패블릿(폰 + 태블릿PC)’이라고 불리는 대화면 스마트폰(5.5∼7인치)은 글로벌 점유율 20.4%를 차지하고 있다. 2021년에는 5.5∼7인치 제품이 33.2%까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는 스마트폰으로 통신 서비스는 물론 웹 서핑, 음악·영상 재생, 쇼핑 등 태블릿PC 못지않은 복합 기능을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기기 성능을 좌우하는 D램, V낸드플래시 같은 부품이 엄청난 속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어 스마트폰이 인터넷 속도, 작업 처리량에서 태블릿PC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업계는 분석했다. 김윤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마트폰이 태블릿PC의 장점을 흡수한 패블릿으로 진화하면서 기존 태블릿PC 수요를 잠식했다”고 분석했다. 제조 기술 발전에 따라 5인치 이상 대화면으로 무장한 패블릿이 늘면서 화면 크기만 보고 태블릿PC를 소비할 필요성이 줄었다는 얘기다. 노트북이 이전보다 훨씬 진화한 점도 태블릿PC가 추락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구성 부품에 혁신이 일어나면서 ‘더 얇게’, ‘더 가볍게’를 표방한 제품이 속속 출시됐다. 무게 1kg 안팎에 불과한 ‘울트라 노트북’은 태블릿PC와 비교해도 크게 무겁지 않다. LG전자 ‘그램’, 삼성전자 ‘노트북9’ 등이 대표적이다. 초경량 노트북 시장 규모는 2011년 400만 대에서 2016년 4900만 대로 12배 이상 성장했다. 진화한 노트북은 문서 작성 같은 작업 활용성 면에서 태블릿PC보다 훨씬 뛰어나다. 가벼우면서 터치스크린이나 전자펜을 통한 필기가 가능해 굳이 태블릿PC를 따로 살 이유가 없어졌다.

과연 이대로 끝날 것인가?
스태티스타는 지난해에 1억5500만 대였던 글로벌 노트북 출하량이 2019년 1억7000만 대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들이 제품 경량화에 힘쓰면서 휴대성 면에서 태블릿PC를 따라잡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IT업계 관계자는 “태블릿PC는 통신 기능만 빼면 스마트폰과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라고 볼 수 있어 대체재나 보완재로서 가망이 없다”며 “스마트폰처럼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PC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각각 장점을 품으며 진화했다. 스마트폰은 화면을 키웠다. 노트북은 보다 가벼워졌다. 안타깝게도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지닌 장점을 모두 흡수하려 한 태블릿PC는 이도 저도 아닌 제품으로 전락했다. 태블릿PC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과는 다른 요소를 갖춰야 한다. 태블릿PC를 활용할 만한 콘텐츠가 많아지거나, 하드웨어가 차별화되지 않는 이상 시장이 커지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태블릿PC도 충분히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태블릿 PC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인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이 발전해 이를 적용했을 때 발전 가능성이 큰 제품군이라 기업 입장에서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태블릿PC 시장이 계속 감소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애플 등 기존 업체에서 꾸준히 신제품을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애플은 아이패드 시리즈 최신작 ‘아이패드 프로’를 출시하며 라인업을 강화했다. 세계 태블릿PC 시장에서 13분기 연속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하락했지만, 가격 인하와 전용 키보드 탑재 등으로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전자 갤럭시탭S3는 스테레오 스피커 4개를 내장해 음향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다. 소음 속에서도 깨끗한 음질을 얻길 바라는 교육과 게임 분야의 수요를 감안했다. LG전자가 출시한 8인치형 ‘G패드4’도 초경량(290g) 무게를 내세워 패블릿PC와 노트북 쪽으로 옮겨가던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지금 태블릿PC가 ‘죽어가고 있다’고 단정할 순 없다. 기술 발전에 따라 태블릿PC가 또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술은 인간을 편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기에 결국은 ‘기능이 형태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정제된 제품의 이름은 그때 가서 정하면 된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하제헌(<포춘코리아> 기자)  사진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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