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든의 아날로그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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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5

레이든의 아날로그

시작은 아날로그 기타였다. 우연히 디지털 사운드를 접한 뒤 그것이 연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구에서 가장 첨예한 장르에 심취했다. 지금은 디지털에서 아날로그 감수성을 찾고 있다. 기계음으로 20세기를 재현하려 하는 프로듀서이자 EDM DJ 레이든을 만났다.

가죽 보머 재킷 Philipp Plein, 시계 IWC.

EDM(Electronic Dance Music)은 트렌드를 넘어 지구를 지배 중이다. 춤을 추기 위해 탄생한 미래의 사운드에서 종합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EDM 월드에서 변방인 한국이지만 전 세계 리스너에게 코리아는 낯설지 않다. 레이든(Raiden)이라는 뮤지션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에 네덜란드 레이블인 프로토콜 레코딩스(Protocol Recordings)를 통해 싱글 < Heart of Steel >을 발표했다. 감각적이며 따듯한 사운드로 마니아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와 마틴 개릭스(Martin Garrix) 등 유명 DJ를 통해 여러 차례소 개됐다. 여기에 ‘암스테르담 댄스 이벤트’와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선번 페스티벌’ 등 국내외의 굵직한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날 선 현장 감각도 익혔다. 레이든은 현재E DM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성이다. 폭발하는 에너지와 차분한 감성, 디지털과 아날로그, 예술과 대중문화가 절묘하게 뒤섞인 그의 사운드는 이질적이다상. 반된 것들 사이의 절묘한 균형 감각, 그것이 레이든의 음악인 셈이다.

작업실과 생활공간의 구분이 없다. 깨끗하기도 하고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프로듀서나 뮤지션은 거의 도사처럼 생활하던데, 예민하지는 않나? 아무래도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집 안에 있는 게 편하다. 밤을 꼬박 새워 작업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보통 4~5시간 작업하고 쉰다. 게임도 하고 건프라도 만들고. 그 사이클로 움직여야 객관적 작업이 가능하다. 예민한 성격도 아니다. 빛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

객관적 작업이란 어떤 걸 의미하나?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그걸 경계해야 한다. EDM은 현장에서 관객과 함께 소통하는 음악이다. 너무 내 스타일만 고집하면 자위가 된다. 작업을 진행하다 멀리 떨어져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악기를 다뤘다고 들었다. 기타리스트로 밴드 활동도 했다고. 실용음악을 전공했다. 그때 다룬 게 기타다. 중학교 때 오락실에서 드럼 게임을 접하곤 홀딱 빠졌다. 연주하는 게 정말 신났다. 자연스레 록을 접하면서 기타를 잡았다. 게임처럼 금세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어렵더라.(웃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 때문에 밴드 활동까지 하게 됐다.

대학을 일본에서 다녔다. 밴드 활동도 거기서 했고.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릴 때부터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했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웃음)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답답하더라. 직접 공부해보자고 시작한 게 유학까지 가게 됐다. 졸업 후 블랙마켓잼이라는 밴드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마침 록에 미쳐 있던 때라 즐겁게 활동했다.

어떤 밴드를 좋아했나? 밴드 시절 연주한 음악도 궁금하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레드 제플린, 라디오 헤드, 메탈리카…. 록이면 가리지 않고 들었다. 밴드 시절 록은 좀 센 것 위주로 했다. 그래서 남성 팬이 많았다.

록이 베이스인 뮤지션이 EDM을 한다는 것이 독특하다. 정서적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록 뮤지션의 고집 같은 게 있지 않나? 처음엔 전자음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한창 공연을 다닐 때 일본에서 DJ나 일렉트로닉 사운드 요소를 가미한 록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동료들 추천으로 듣다 보니 매력을 느꼈다. 찾아 듣고 공부하면서 우리 음악에도 전자음을 넣기 시작했다. 하루는 EDM 페스티벌을 찾았는데 현장에서 느낀 에너지가 엄청났다. 밴드 공연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고 할까. 생각해보니 록과 EDM이 닮았더라. 반복되는 그루브와 기타 리프는 형식이 닮았고 리스너의 에너지를 폭발시킨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 뒤로 찾아 듣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톱, 팬츠 모두 Etro.

아직 EDM은 대중적 장르는 아니다. 노이즈로 꺼리는 대중도 많다. EDM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EDM도 많다. 최근엔 장르가 세밀히 구분되고 있어서 덜 자극적인 것부터 들으면 좋을 것 같다. 하우스 장르부터 접근한다면 EDM의 매력에 금세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록이나 힙합, 재즈의 경우 크리에이터 특유의 시그너처가 있다. EDM도 뮤지션의 개성을 입게 될 텐데 레이든의 시그너처는 무엇인가? 지금 그걸 찾아가고 있는 단계다. 추구하고 싶은 건 아날로그적 사운드의 EDM이다. 디지털이지만 직접 연주한 듯한 느낌이 나는 사운드라고 할까. 체온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음악을 연주로 시작해서인지 여전히 곡을 쓸 때 기타로 스케치를 한다. 실제 악기를 사용해 녹음도 많이 하고.

EDM은 현장에서 완성되는 음악이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시너지로 증폭되는 음악. 그런 만큼 퍼포먼스나 비주얼 등 음악 외의 장치도 중요하다. 어떤 순간엔 사운드보다 그런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일부에선 EDM을 종합 예술로 보기도 한다. 음악은 당연히 중요하고, 비주얼이나 퍼포먼스에도 뮤지션의 메시지가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도 공부를 많이 한다. 특히 영상에 신경 쓴다. CG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직접 찍은 영상을 선호한다. 댄서의 반복적 안무나 병이 깨지는 순간을 담아 슬로모션으로 재생하는 특이한 작업을 좋아한다. 아날로그적 영상과 디지털 사운드가 만나면 독특한 느낌이 탄생한다.

지구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아날로그를 모티브 삼는게 신선하다. 지금 준비 중인 다음 작업은 ‘디지털에 대응하는 아날로그’가 컨셉이다. EDM은 기계로 만들지만 결국 사람이 듣는 음악이다. 사람의 감수성, 거기에 닿는 것이 내 목표다. 운 좋게 198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모두 경험했다. 그 독특한 시대에 느낀 감정을 담아내고 싶다.

뮤지션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레이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Never Mind.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 것. 우린 무의식중에 사회적 껍질을 입는다. 그게 굳으면 개성이 성장할 공간이 사라진다. 자유분방함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 혹은 단서라도 됐으면 한다. 록 밴드 공연 특유의 통쾌함 같은 것, 내 음악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으면 한다. 예전에 AC/DC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먼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했는데 어느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꼈다. 그런 것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나도 평소엔 조용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미치거든.(웃음) 사람들도 공연장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뛰어놀았으면 좋겠다.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 EDM을 평가하기에 적절한 거리감이 있을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라는 거다. 한국 관객은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논다. 흥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 가봐도 우리처럼 잘 노는 관객을 만나기 힘들다.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 다만 아쉬운 건 너무 대중적인 레퍼런스 위주로 성장해나간다는 점이다. 여러 장르로 저변이 확대됐으면 좋겠다. 최근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연에 갔을 때 한껏 분위기가 올라 조금 딥한 노래를 틀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너무 좋아하더라. 한국에선 아직 어려운 일이다.

해외 활동을 통해 얻는 것도 많을 것 같다. 여러 뮤지션과 작업하면서 자극도 받을 것 같고. 역시 세계는 넓더라. 자극을 많이 받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작업한다고 생각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웃음) 정말 음악에 미쳐 있는 뮤지션이 많다. 스크릴렉스(Skrillex)라는 미국인 친구는 24시간 음악에 빠져 살더라. 걸어 다닐 때도 계속 음을 흥얼거리고 아예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작업하는 걸 보곤 놀랐다. 무대 수준이나 페이에 관계없이 자기가 하고 싶으면 어떤 공연이든 즐기더라.

최근 다른 EDM 뮤지션과 함께한 작업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근 네덜란드 DJ들과 작업을 했다. 혼자 만든 데모가 있었는데 사운드가 아쉬웠다. 그 친구들한테 들려주니 곡의 사운드 작업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더라. 내가 작업한 것과는 색다른 느낌의 곡이 탄생했다.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어떤 종류의 음악인가? 록 밴드와 작업하고 싶다. 유명한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나 라디오 헤드 같은 밴드. 어떤 음악이 됐건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들은 밴드다 보니 그런 상상을 많이 한다.

셀레브러티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많이 하고 있다. 재미있다. 서로 분야나 커리어가 달라 만났을 때 뭐가 튀어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게 즐겁다. 그런 환경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 과정은 힘들지만 완성했을 때 느끼는 쾌감은 상당하다.

리스너들은 왜 레이든을 좋아할까? 밴드 활동을 할 때부터 남자 팬이 많았다. 내 음악엔 남성적 요소가 많다. 마치 록처럼 분출하거나 터지는 느낌이 있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응축된 감정을 터뜨리거나 미치게 만드는 것 때문 아닐까?

EDM DJ, 화려한 직업이다.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것 같다. 그 이야기는 잠시 녹음기를 끄고 해야 할 것 같다.(웃음)

2018년이다. DJ는 6년째지만 솔로곡은 지난해에 처음 냈다. 그래선지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본게임을 시작한 느낌이랄까. 그런 것을 바탕으로 올해는 기본을 더욱 단단히 다지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더 많은 무대에 서고 싶고 여러 작업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 레이든의 사운드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최민석  헤어 & 메이크업 하나  스타일링 이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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