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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PEOPLE
- 2019-09-09
오늘의 그는 어떤 모습일까
‘만화 같은 작업’, ‘시대를 잘 겨냥한’ 등의 수식어로는 옥승철을 담을 수 없다. 매력적인 이미지는 단지 표면일 뿐, 그 안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화면 너머의 세계가 있다.

대구미술관 < Pop/Corn >전에 설치된 ‘Mimic’(2019) 앞에 서 있는 옥승철 작가.
옥승철을 처음 만난 건 작년 가을 갤러리기체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운이 좋게 세 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는데, 작업 철학과 작업실 환경 그리고 사소한 버릇까지 솔직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참 때 묻지 않은 사람이다 싶었다.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작가는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준비했다며 가방에서 자신이 커버를 디자인한 밴드 아도이(ADOY)의 CD를 꺼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7월, 이번에는 인터뷰 상대로 옥승철과 다시 마주 앉았다. 지난 만남의 연장선처럼 그는 인사와 함께 선물로 단발머리 소녀를 프린팅한 아도이 LP판을 건넸다. “사실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아요. 작년에 첫 개인전을 하고 이제 막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는지라 스스로 제 작업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조심스럽습니다”라고 나직이 입을 여는 옥승철은 여전했다.
화면을 꽉 채운 얼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커다란 눈동자, 강한 컬러 대비. 옥승철은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를 만든다. ‘Matador’(2017) 속 옆머리가 굵게 말린 단발 소녀는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그리고 한국 웹툰에서 본 듯한 여주인공을, 헬멧을 쓴 소년을 그린 ‘Mimic’(2017)은 일본 히어로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킨다. “작업 초반에는 1990년대 애니메이션을 ‘참고’하곤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제 작업은 여러 이미지를 조합한 결과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원본과 닮게 그리는데, 여기서 이미지의 출처는 밝히지 않아요. 보는 이들이 원본을 유추하게끔 유도하기 위해서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랄까요? 사람들이 특정 만화를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중요한 건 ‘이미지의 조합’이다. 혹자는 옥승철을 두고 시대 유형에 걸맞은 작업을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다양한 소스를 조합해 만든 이미지가 과연 보편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가에 더 가깝다. 결과물보다 과정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러기에 옥승철의 회화는 원본(original)이 아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조합한 작업은 온전히 작가의 창작물이라 정의하기 어려울뿐더러, 컴퓨터로 그래픽 이미지를 먼저 그린 후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붓 자국 하나 없이 표면을 평평하게 만들고, 자신의 첫 개인전 타이틀을 ‘Un Original’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옥승철의 방식에 따르면 전시에 걸린 작업 중 ‘오리지널’은 없는 셈이니까. 이는 작가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만을 오리지널로 인정하는 미술계의 통념을 전복한 시도라 해석할 수도 있다.

1 Plaster Statue, FRP, 우레탄 도색, 49×34×32cm, Edition of 12, 2019
2 Taste of Green Tea, 캔버스에 아크릴, 120×120cm, 2017

작년 9월, 갤러리기체에서 열린 옥승철의 첫 개인전 < Un Original > 전경.
“조형 작업을 통해 생각할 여지는 무한한데 아직 사람들은 이미지라는 결과물에 사로잡혀 있어요. 작업 방식에 깃든 제 고민이 관람객에게 전달되도록 기존 작업을 변주하거나 영상과 입체를 병행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려 해요.” 동명의 페인팅을 3D로 구현한 ‘Plaster Statue’(2019)를 예로 들 수 있다. 석고상은 대리석 조각을 본뜬 복제품이지만 인간은 이를 다시 정물화로 담아 2차 복제품을 생산한다. 옥승철은 석고상을 그린 ‘Plaster Statue’(2017)라는 2차 복제품을 1차 복제품인 석고상으로 만들어 원본과 복제의 관계를 또 다른 방향으로 보여준다. 또 그는 화면 속 인물에 이름, 성별, 나이, 내러티브 같은 캐릭터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보는 이가 얼굴 생김새나 머리카락의 길이를 보고 ‘소년’과 ‘소녀’로 부르고 있다. 이 역시 표면에 사로잡혀 내린 설익은 감상이 아닌가?
일본 애니메이션과 닮아서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옥승철을 소개하는 글에는 ‘일본 소년 만화’, ‘만화적 기법’, ‘차세대 팝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애니메이션을 소스로 작업하니 이와 관련한 평이 오가는 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왜 일본 만화 같은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요. 처음에는 장황하게 이유를 설명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변명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죠. 그래서 더더욱 말을 아끼게 된 것 같아요. 이건 ‘A’라고 규정하는 순간 ‘옥승철은 A를 하는 작가다’라고 남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요. 저도 사람인지라 작업을 하는 도중에도 생각이 계속 바뀌거든요.(웃음) 지금은 그 어떤 내러티브도 없이 이미지만 조금씩 던지고 있는 상황인데, 그 이미지가 사람들의 제 작업 전반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길 바라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주목받았기에 옥승철은 더 멀리 보려 한다. “로봇 학계에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이론이 있어요. 사람들은 로봇의 모습이 인간과 가까울수록 호감을 느끼다가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갑자기 불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호감으로 돌아오는데 그 감정의 곡선이 골짜기 모양이라 불쾌한 골짜기라는 이름을 붙인 거죠. 제 작품은 구도나 그런 것이 불안정한 게 많아요. 목이 댕강 잘려 있거나 눈이 캔버스 상단에 위치해 밸런스가 치우쳐 있죠. 인물의 표정도 부정적인 감정에 가깝고요. 제 그림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안정적이고 황금 비율과는 거리가 멀기에 불편함을 느끼다 다시 호감을 가지고 좋아해주시는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어요. 앞으로 갈 길이 멀죠.”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작가가 선물한 LP판을 침대맡 선반 위에 두었다. 매일같이 바라봤다. 어느 날은 기분이 나쁜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다른 날은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옥승철은 디지털 이미지를 캔버스로 옮겨 원본과 복제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출력물인 LP판 재킷 이미지는 원본일까, 아니면 캔버스에 옮겨진 비(非)원본을 다시 디지털로 전환한 것일까. 게다가 그의 창작에 동원된 이미지의 출처도 알 수 없다. 문득 불분명한 이미지라 멈춰 있지 않은 게 아닐지. 단지 깔끔한 표면에 얽매여 있었다면 매일같이 달라지는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을까? 오늘 그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모른다.
옥승철
중앙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2017년부터 롯데 에비뉴엘 아트홀, 스페이스 K 대구에서 열린 단체전과 대구아트페어, 키아프, 아트 부산 등 여러 아트 페어에 참가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18년 9월, 갤러리기체에서 첫 개인전 < Un Original >을 열었고, 9월 29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 Pop/Corn >전에도 참여 중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여승진(인물)
사진 제공 갤러리기체 장소 협조. 대구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