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의 블록버스터 전시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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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7

패션 브랜드의 블록버스터 전시

수많은 패션 브랜드 중 톱클래스의 블록버스터 전시들.





유명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야르가 기획한 루이 비통의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전 안팎. 총 30여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 중 ‘톱클래스’를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은 그 이름 하나로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의 주제 ‘블록버스터’를 논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흥미롭게도 그 의미에 대한 생각은 지금 서 있는 자리마다 조금씩 달랐다. 미술계 인사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거장의 유명 미술관 단독전을 예로 들며, 혹시 방학 시즌에 맞춰 주로 개막하는 에듀테인먼트 체험전을 말하는 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런데 질문을 바꾸어 ‘기억에 남는 대형 전시’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명품 브랜드에서 여는 전시요?” 지금 공감하고픈 ‘패션 블록버스터 전시’의 정의가 그 행간에 언뜻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패션 브랜드가 대중에게 오픈한 대형 전시’를 패션 블록버스터 전시라 정의하고 한국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남긴 전시를 살펴보려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바라는 예술과 체험의 이면을 콕 집어낼 수 있을 테니까.
글로벌 이벤트가 대개 그러하듯 한국의 패션 블록버스터 전시 도입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가 주요 명품 소비 시장으로 자리매김한 2000년대 중·후반이다. 브랜드 본사가 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을 시작으로 뉴욕, 도쿄, 상하이에 이어 도착하는 순이었다. 오늘날 한국 패션 신에서 최초의 패션 블록버스터 전시로 보는 것은 2009년 9월 서울 경희궁에서 4개월간 열린 <프라다 트랜스포머>전이다. 앞서 같은 해 4월에 겐조가 롯데 에비뉴엘 전관에서 2009년 S/S 패션쇼를 주제로 개최한 <앨리스와의 여행>전도 있지만, 규모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여전히 ‘핫’한 건축가 렘 콜하스 (AMO)가 이동식 철제 전시관을 설계하고 세계적 미술평론가이자 프라다 재단 아트 총괄 디렉터인 제르마노 첼란트가 기획을 맡았다. 브랜드 설립자 미우치아 프라다는 젊은 시절부터 문화의 발전 방향이 사회적 기여로 이어지는 데 관심이 많았다. 전시를 통해 최신 패션을 알리기보다는 브랜드의 컬렉팅(취향)과 메시지를 전하는 데 힘을 싣고자 했다. 프라다와 기획자 그리고 건축가, 이 특별한 유럽 3인방은 중국보다는 성숙하고 일본보다는 덜 식상한 도심 풍경과 새로운 관점을 원했고, 그런 면에서 서울 경희궁 앞뜰은 가장 적당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세운 전시관에선 프라다 고유의 문화와 그들이 고른 미술, 영화, 패션을 주제로 한 전시물 관람 그리고 영상 프레젠테이션 내용이 바뀔 때마다 천장과 바닥이 뒤바뀌는 ‘트랜스포머’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최고의 아티스트와 함께 만들어내는 메이커의 저력을 보여준 전시였다.





막스마라의 <코트! Coats!>전은 당시 SNS 노출만 하루 평균 479건을 기록했다.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시관 모습. 당시 LG전자, 현대자동차, 레드리소스가 후원했다.





2018년 3월 DDP에서 열린 <반클리프 아펠이 들려주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전.

이후 한동안 뜸하던 패션 블록버스터 전시는 스타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등장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2014년 8월 전을 기획한 장-루이 프로망은 한 인터뷰에서 DDP를 두고 “대한민국과 서울의 야망, 도전 같은 것이 느껴졌기에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을 만큼 전시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공간’이 확장되며 패션 블록버스터 전시의 대중화를 일으켰다. 이전까지 VIP 고객과 미디어만이 호텔 스위트룸이나 매장에서 소규모로 접하던 브랜드 아카이브를 본격적으로 공개하게 된 계기다. 미술관 방문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주말 체험으로 자리 잡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까지 맞물려 좋은 시점이었다. 전시는 코코 샤넬이 창조적 영감을 얻은 장소와 그곳에 있던 책이나 문진 같은 소품을 통해 브랜드 정신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박물관 스토리텔링’ 타입이었는데, 문화계의 사람들 관심을 끄는 데도 성공했다. ‘명품(샤넬이란 브랜드)에 큰 관심은 없지만, 그들의 스토리와 아카이빙에 대한 진지한 접근 방식은 좋게 보았다’는 것.
전시 기획부터 매일 관람객 수에 따라 전시장 습도를 조절했다는 섬세함까지, ‘명품 브랜딩’이 무엇인지 보여준 예로 지금껏 회자된다.
“전설적 아이템을 본다는 것,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이불과 서도호 등 한국 작가와 협업한 2015년 6월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전과 2017년 6월 루이 비통이 그들의 근원인 트렁크를 시작으로 펼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전, 2017년 11월 90벌이 넘는 코트와 이미지를 통해 현대 여성의 트렌드 발전사를 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의 아트워크 영상과 같이 녹여낸 막스마라의 <코트! Coats!>전, 2019년 폴 스미스의 작업실과 수집품을 그대로 복제해 본인이 직접 소개한 전까지, 그간 패션 블록버스터 전시를 봐온 패션계 인사들의 일관된 반응이다. 모든 것을 하나의 비주얼로 보는 이들의 관점 때문이겠지만, 동시에 패션 블록버스터 전시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전시들은 페이스북에 이어 인스타그램으로 확산된 SNS 업로드 트렌드와 더불어 누구에게나 공감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했다. 루브르 박물관도, MoMA도 쉽게 주지 못한 ‘방문’ 자체의 즐거움. 창작자나 브랜드의 일상을 기록하는 아카이빙이 곧 역사가 될 수도 있다는 시사점이다. 특히 전통 유물과 관련해서도 아카이빙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우리나라에는 뜻밖의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상업적 속성을 타고난 패션의 운명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긴 시간 성공한 브랜드일수록, 톱클래스일수록 블록버스터 전시를 원할 때 언제든 ‘스스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관람객에게 아름답다는 평가와 함께 갖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킨다. 욕망은 결핍을 전제로 하기에 절대 충족할 수 없다지만, 그것이야말로 예술과 가장 근접한 공통점일 테니. 앞으로 또 다른 브랜드가 어떤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지 기대해보자.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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