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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6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세라 제의 스토리텔링법

도시와 사람들 사이에 명멸하는 작은 단서를 모아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하는 세라 제.

ⓒ Deborah Feingold

‘이들은 철학자가 아닐까?’ 설치 작품을 볼 때면 동료들과 항상 비슷한 결론에 다다른다.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 중 설치 작가야말로 가장 철학자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보이지 않는 개념을 관람객의 체험으로 바꿔놓으니까. 특히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 세라 제(Sarah Sze)처럼 작은 조각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면밀한 관찰자라면 더 그렇다.

그녀의 작품은 작은 면봉부터 빈 생수병, 두루마리 휴지, 모니터나 의자까지 나란히 놓여 작품의 재료가 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익숙한 일상용품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숲이나 회오리를 이루어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기술의 폐해로 혼란한 사회처럼 보일 수도 있고, 소박한 정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자 살아온 배경에 따라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작가의 바람대로 미술을 공부한 사람은 작품이 더 어렵고, 평범한 관람객은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

먼저 건축을 전공했기에 작가가 공간의 설계에 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터뷰를 통해 접한 그녀의 일상은 일이 곧 놀이이자, 즐거움이었다. 보고 읽는 모든 것이 작업을 위한 사전 조사였다. 요즘 즐겨 보는 990년 송나라 시대의 회화 서적부터 얼마 전 딸과 같이 본 알베르 라모리스(Albert Lamorisse)의 일러스트 단편영화 <빨간 풍선(Red Balloon)>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무척 넓었다. 세라 제의 위력은 이렇게 평소 수많은 책과 창작물을 보고,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풀릴 때까지 쉬지도, 멈추지도 않는다는 진득함에 있었다.

작가는 올해 10월 프랑스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밤부터 낮까지(Night into Day)>전을 통해 새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전시를 앞두고 청 한 인터뷰에 작가는 10여 페이지에 가까운 충실한 답을 보내주었다. 읽는 내내 세상에 대한 관심과 해박한 지식, 세계관 속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비록 지면에 다 담진 못하지만, 그 답이 팬데믹의 광풍이 몰아치는 뉴욕 한가운데서 보내온 것이라는 사실을 잊었을 만큼 그녀의 생각은 깊었다.





Centrifuge, Mixed media, Mirrors, Wood, Bamboo, Stainless steel, Archival Pigment Prints, Projectors, Ceramic, Acrylic paint, Salt dimensions variable, 2017 ⓒ Sarah Sze Photo ⓒ Sarah Sze Studio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내 스튜디오에 설치된 <밤에서 낮으로> 전시 프로토 타입, 2019 ⓒ Sarah Sze Photo ⓒ Sarah Sze Studio

‘Until 22 Nov. 2020’을 비롯한 최근작을 보고 언뜻 세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유약함(weakness), 흩어짐(scattering) 그리고 따뜻함(warmth).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당신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맘에 드네요. 예술을 대하는 이상적 방식은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보는 거죠. 작품을 보면서 어떤 게 이해 가능하고 그렇지 않은지 따지는 건 나중 문제예요. 가끔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방식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닫히는 것 같아요.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비주얼 아트의 멋진 점이죠. 위대한 작품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 말한 세 단어에서 제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가 보이네요. 세상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항상 변화하며 성장에서 죽음으로 가는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제 그림과 조각, 설치 등 모든 작업의 바탕입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뉴욕은 그 어느 때보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이슈로 뜨겁습니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가 처음 겪는 위기에 미국 지도자들은 끔찍하게 무능한 대처를 했어요. 여러 방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결국 좋은 쪽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예술가에게 작업은 매우 사적이고 친밀한 것이죠. 훌륭한 예술가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작품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겁니다. 제 작품에 나타난 불안과 유약함이란 주제가 지금에 적절한 것 같네요.

당신의 작품에선 가는 와이어, 실 등이 주로 눈에 띕니다. 관람객은 보통 설치 작품을 가장 어려워하는데, 일단 소재에서 친근감을 느낄 것 같아요. 시의성을 반영한 것이겠죠? 사람들은 설치 작품이 어렵다고 하지만, 어떤 면에선 가장 이해하기 쉬워요. 전 모든 예술이 설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회화 전시에 가도 조명, 벽의 색, 작품을 진열한 순서, 작품 사이의 간격 등 이 모든 것이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의 일부가 됩니다. 설치 작품의 목적은 예술이 세상으로 흘러 나간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 경계를 생각하고 맥락에 따라 보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지금 경험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지요. TV 작업을 선도한 백남준 작가의 사후에 다른 예술 작품에도 스크린을 사용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의 작업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지점입니다. 물론 예술의 시의성이란 건 항상 변해요. 생전에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작가가 죽음 이후 주목받을 수도 있죠. 예컨대 프랑스 로코코 시대 화가 프라고나르(Jean Honor Fragonard)는 사람들이 구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다시 보게 됐죠. 모든 작품이 요즘 트렌드나 문화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대의 일부란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Ripple(Times Zero), Oil, Acrylic, Acrylic polymers, Ink, Aluminum, Archival paper, Oil stick, Graphite, String, Pushpin, Diabond and Wood, 114×142.5in, 2020 ⓒ Sarah Sze Photo by Rob McKeever





Poke(Times Zero), 2020. Blind Spot(Times Zero), 2020 Gagosian, Paris ⓒ Sarah Sze Photo by Rebecca Fanuele





Crescent(Timekeeper), Mixed Media, Wood, Stainless Steel, Acrylic, Video Projectors, Archival Pigment Prints, Ceramic and Tape Dimensions Variable, 2019 ⓒ Sarah Sze Photo by Genevieve Hanson

SNS로 불특정 다수에게 작품을 공개하는 요즘 시대에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저 같은 사람이 사람들의 후한 평가에 너무 관심을 가지면 예술가로서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어요. 우리는 예술가지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아니니까요. 예술가에겐 비평가가 꼭 필요합니다. 힘 있는 예술이 비평을 이끌어내는 건 당연해요. 나보다 내 작품을 더 잘 이해하면서, 잔인하리만치 정직한 친구를 곁에 두고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작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은 특별한 비평가와 존경하는 예술가가 있을 수도 있고요. 오랫동안 오브제 작업을 해온 작가로서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이미지와 오브제의 경계예요. 서로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이미지가 감정과 소통, 물성(materiality)의 매체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고 있죠. 이제는 이미지가 사물을 대체하고 빠른 속도로 만들어져 거래되고 또 조작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립 위기에 소통을 위한 디지털 의존성은 물론 가상과 현실세계의 혼돈이 더 가중됐어요. 이처럼 각자 다른 물질과 가상 이미지, 오브제가 하나의 하이브리드를 이루는 지점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가지고 노는 것에도 관심이 있고요.

그처럼 세상을 보는 열정적인 태도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인정하는 것이겠죠. 1999년 프랑스 첫 전시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연 이후, 올가을 그곳에서 두 번째 특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사물의 병치(juxtaposition)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숭고한 것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시점을 전환하고, 이 둘이 공존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거죠.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를 찍고 생산합니다. 화산이 폭발하는 이미지를 원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죠. 이번 전시에선 이미지를 사용할 때 저자성(authorship) 문제를 다루려 해요. 우리가 이미지를 손에 넣는 순간부터 그것이 어떻게 파괴되고 조작되어 더는 원래의 출처를 알 수 없게 되는지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투명한 재단 건물 전체를 일종의 라이트 박스로 봤어요. 움직이는 이미지가 전시 공간의 유리 벽을 따라 회전하며 건물 안팎을 인식하는 관람객의 감각을 바꿔놓을 겁니다. 실내와 바깥 정원 사이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고, 유리창에 여러 이미지를 투사해 건물 자체가 환영처럼 보이게 할 거예요.





Images in Debris, Mixed media, Mirrors, Wood, Stainless steel, Archival prints, Projectors, Lamps, Desks, Stools, Ladders Stone, Acrylic paint Dimensions Variable, 2018 ⓒ Sarah Sze ⓒ Photo Sarah Sze Studio





Triple Point (Pendulum), Salt, Water, Stone, String, Projector, Video, Pendulum,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13 ⓒ Sarah Sze Photo by Tom Powel Imaging

전시에 앞서 공개한 도록 <세라 제(Sarah Sze)>(2020)의 목차를 봤습니다. 유명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에세이와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과의 대화록이 눈에 띕니다. 철학과 건축학, 지금의 당신을 만든 원소처럼 느껴졌죠. 어떤 면에선 당신도 철학자가 아닐까요? 두 분 다 훌륭한 사상가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Artavazd Peleshyan) 감독의 영화 <라 네이처(La Nature)>를 봤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 영화가 제 전시와 한 건물에서 상영된다는 것 역시 영광입니다. 제가 철학자를 자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설치미술이고, 예술 작품을 통한 경험은 앞으로도 어느 정도 무형의 것으로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술가와 작품, 관람객의 접점은 특별한 순간의 체험을 만들어내죠. 감상은 그 셋 모두를 필요로 하고요. 그런데 그 세 조건 중 관람객은 항상 달라지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각자의 경험은 반복될 수 없고, 항상 유일합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죠. 그래서 관람객이 작품을 보는 순간 온전히 마음을 열고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유튜브로 당신이 작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봤어요. 무척 밝은 표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여서 행복한가요? 작가가 된 것은 제게 거대한 선물 같아요. 저는 사랑하는 일을 매일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놀라고,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죠. 아마도 당신은 나의 그런 면을 본 거겠죠. 돌이켜보면 실제로 작가가 되기로 ‘결정’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항상 예술을 해왔어요. 냅킨으로 뭔가 만들거나 벽에 그림을 그리는 등 주변의 모든 것으로 늘 뭔가를 창조했습니다. 자라면서는 작가로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인 걸 알아서 피한 적도 있고요. 제가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늘 말해요. 만약 예술을 통해 구원받은 경험이 있다면 그걸 계속하겠지만 그런 적이 없다면 너무 힘들어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예술가로서 성장하고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에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 지속적 초조함을 견뎌야 합니다. 불안정한 여정을 이어가려면 회복력 역시 필요하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이죠. 하지만 작가로 사는 하루하루는 정말 충만한 삶이에요(I am fulfilled).


세라 제
미국 보스턴 출신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예일 대학교에서 건축을, 뉴욕 비주얼 아트 스쿨(SVA)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현재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2017년 덴마크 코펜하겐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독일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 2018년 런던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Victoria Miro Gallery) 등 주요 미술관에서 초청 특별전을 열었고 2017년에는 뉴욕 지하철의 공공 미술을 담당하기도 했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제공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세라 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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