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클럽에서 만난 예술적 순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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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30

골프 클럽에서 만난 예술적 순간

11월까지 지어지는 골프 시즌, 국내외 주요 클럽과 리조트에서 예술을 만났다.

위쪽 남해 사우스케이프 로비에 설치한 톰 프라이스의 ‘Meltdown Chair: PP Rope Blue’.
아래쪽 잔디 광장에서 볼 수 있는 리처드 애드먼의 ‘Volante’.

탁 트인 잔디밭 그리고 청명한 가을 하늘.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그곳, 필드 위 골프 마니아들은 11월 중순까지 쉴 틈이 없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훌쩍 떠나는 것이 어려운 요즘, 아무리 피곤해도 자동차 트렁크에 골프 백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특히 가을과 겨울 사이의 청명한 날씨라면 입김 불며 나누는 라운드 멤버와의 대화도, 자연을 느끼는 순간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터. 하지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완벽한 한 타의 쾌감을 제외하고 18홀을 돌며 초록 능선 외에 빠진 장면은 무엇인지 콕 집어 설명할 수 있을까? 매너를 지키느라 너무 바삐 움직인 건 아닐까? 이를테면, 종종 처음 만난 낯선 멤버와 좋은 ‘스몰톡’ 소재가 되어주는 클럽의 아트 컬렉션 말이다.
2000년대 전까지 골프장은 지형적 매력을 살린 코스나 클럽하우스 설계, 그곳에 드러난 오너의 기호로 먼저 알려지곤 했다. 조경에 대한 안목이 남달랐던 故 이병철 회장의 취향은 지금도 안양 CC에 어우러진 단아한 꽃과 나무에서 엿볼 수 있다. 강렬한 물성을 보여주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유일한 클럽하우스 작품은 페럼클럽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 골프 시장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면서 내부에서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회원제 골프장 대부분 퍼블릭 골프장으로 전환하기도 했고, 지역 특색을 살린 새로운 골프장도 속속 오픈하는 가운데 실제 아트 컬렉터인 오너들이 골프장을 운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방법으로 특별한 작품을 찾아 비치하기도 한다.
홈페이지에 아트 섹션을 마련하고 리처드 아트슈와거, 린지 아델만 등 소장 작품을 전면 공개한 남해 사우스케이프, 최병훈 작가의 아트 퍼니처부터 제프 쿤스의 조각이 있는 헤슬리나인브릿지나 휘슬링락, 이우환과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이 있는 블루헤런 CC, 트리니티 등은 아트 컬렉터로 유명한 오너의 관심 덕에 좋은 작품이 곳곳에 많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방법이 회원제 클럽만의 특성이 아닌 인기 있는 퍼블릭 골프장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위쪽 해남 파인비치 CC 로비에 있는 이명호의 ‘Tree #18_1_1’.
아래쪽 포도호텔 내부의 포도갤러리 전경.

보통 클럽이 보유한 가장 대표적 작품은 그곳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클럽하우스 로비와 안쪽 리셉션 벽에 위치한다. 설사 보지 못했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좋은 시설을 갖춘 곳일수록 물 흐르듯 공간에 자연스러운 작품을 둔다. 시각적으로 지나치게 자극적인 작품은 골프 게임 본연의 즐거움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골프 클럽을 방문한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떠올려보자.
먼저, 환경 색채와 사인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앤드건축사무소 김준지 실장의 팁이다. “새로운 공간을 리모델링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골프 리조트는 가능한 한 사인의 정보량을 줄이고 고급스러움을 전하는 걸 최우선으로 해요. 브론즈처럼 재료의 물성이 드러나는 것을 쓰면서 기존 마감재의 결을 맞추는 편이죠. 만약 아트 제품을 보고 싶다면 주변 배경에 어떤 소재와 매치되는지 논의하는 것도 좋아요. 자연스러울수록 다른 디테일에도 신경을 많이 쓴 곳이겠죠.”
특히 클럽하우스나 리조트처럼 가족 단위 이용객도 많고,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실내는 공용 장소임을 감안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고르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 작가라면 좀 더 친근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대표적 예가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 엘리시안 제주 로비(‘제니스’)와 경기도 광주 큐로컨트리클럽 로비(‘알렉산더 대왕’)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는 아트 컬렉션에 적극적인 골프장의 경우, 여전히 랜드마크 형식의 상징적 조형물을 설치하는 예가 많다고. “다만 이전까지 기업 오너의 취향이나 특별한 인연으로 작품을 구입했다면, 최근엔 설계 단계부터 미술품 구매 방향을 지역 특성에 맞춰 고려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제주 핀크스클럽과 포도호텔 내 포도갤러리처럼 지역 작가의 전시를 우선으로 하기도 하고, 세종 레이캐슬처럼 젊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단순히 작품 설치가 아니라 골프장 조건에 맞춰 정기적으로 테마 기획전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왼쪽 사우스케이프의 알도 차파로 작품.
오른쪽 엘리시안 제주 로비에 설치된 백남준의 ‘제니스’.

남해 사우스케이프와 세이지우드 등 주요 회원제 골프 리조트의 인테리어에 참여한 조규진 스튜디오 트루베 디렉터도 오픈 전 작품 설치에 대해 고민하는 골프 클럽의 변화에 동의한다. 더불어 최근 3~4년 사이 고객과 이용객이 가구나 오브제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고 느낀다. “SNS의 발달로 해외 리조트나 고가의 아트 퍼니처에 대한 관심이 늘었어요. 이광호 작가의 아트 퍼니처처럼 요즘은 골프장을 설계하는 분들이 과감한 제안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어요. 10년 전이라면 너무 파격적이라고 수락하지 않았을 강렬한 컬러의 소파도 인기가 있죠. 전체적 컨셉을 디자이너들과 먼저 상의하고, 원하는 작품을 놓을 수 있도록 건축가와 맞춰가며 설계를 바꾸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은 미디어 아트 작품이 많아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전기 배선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골프 클럽을 운영하는 기업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들이 운영하는 미술관과 재단이 있는지 홈페이지를 검색해보자.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사진 작품이나 모던한 회화를 주로 배치하는 객실과 복도는 그들이 직접 관리하며 일정 기간 전시한 뒤 교체하기도 한다. 리조트 역시 대부분 자연 속에 자리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어딘가 어색하다면, 마음속으로 골프장 등급을 매기는 것도 좋다. 침대 머리맡에 걸린 작품이 곧 내가 묵는 방의 수준을 말해주니까.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한 번만 더 뒤돌아보자. 언젠가 ‘아트’를 두고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는 색다른 라운드를 기약하면서.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제공 해남 파인비치 CC, 포도호텔, 리안갤러리, 엘리시안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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