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힙, 한국의 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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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10

한국의 힙, 한국의 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온몸을 던져 소리를 그린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현호, 임소정, 최경훈, 남가영, 유동인, 강다솜, 김보람, 이혜상.

“Listen when your body talks.” 얼마 전 한 미술관 야외 돌다리 위에 새겨진 메시지(제니 홀저의 작품 중 하나다)를 보다 잠시 멈춰 섰다. 그러고는 바로 이틀 전 만난 여덟 명의 무용수를 떠올렸다. 아주 미약한 몸의 신호까지 읽어내는 예민한 주파수를 지닌 무용수의 집합,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Ambiguous Dance Company). 안무가 김보람을 주축으로 활동하는 순수 예술 집단인 이들은 2011년 결성한 뒤 [바디 콘서트], [인간의 리듬], [Breath], [얼토당토] 등 공연을 꾸준히 올렸고, 최근에는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와 작업을 함께해 대중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몸을 통해 음악을 표현하고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진실된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듭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모호하다는 의미의 ‘앰비규어스’라는 이름은 의외로 확신으로부터 왔다. 모호를 위한 모호함이 아닌,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바에 닿기 위한 여정으로, 그 여정에 장르 구분이 불필요한 장애물이 될 것임을 그들은 애초에 예상했을 것이다. 덕분에 이들은 자유롭다. ‘현대무용’이라는 어감이 주는 특유의 문턱을 과감히 없애고 음악과 소리, 목적과 가치, 장소와 상황에 따라 경계가 뒤섞인 춤을 춘다. 이날치와 함께한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 시리즈를 보고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이날치의 백업 댄서팀 정도로 이해하는 대중이 많다는 사실도 (분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춤이 글 1.0 버전이 아니었을까요?” 뇌 과학자 김대식은 국립현대무용단 유튜브의 한 코너인 ‘춤추는 강의실’에서 춤의 기원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호모사피엔스의 30만 년 역사 중 29만 년을 노매드로 살았고, 정착한 후에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덧붙인다. 자주 옮겨 다니는 노매드의 삶엔 기억이라는 것이 없었다. 정착하며 곡식을 누적했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서 기억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고, 기억된 과거를 타인에게 동작으로 전달하기 시작한 게 춤의 시작이 아니었겠느냐고 믿음직한 가설을 내세운다. 그의 가설이 설사 틀렸다 해도 댄서에게 춤은 제1의 모국어다. 아무리 말과 글이라는 약속된 언어로 표현하려 해봤자 춤의 언어로 말하는 만큼 적확하지 않다. 춤을 해석하려고 애쓸수록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춤의 세계는 납작해질 뿐.





왼쪽부터 김현호가 입은 블랙 셔츠, 아우터, 포켓 디테일의 팬츠 모두 Iise, 네온 옐로 컬러의 젤 키리오스 슈즈 Asics SportStyle. 최경훈이 머리에 쓴 유건, 오버사이즈 셔츠, 이너로 입은 쇼트 팬츠, 와이드 팬츠 모두 Loolakoola, 스타킹, 로퍼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보람이 입은 플라워 장식 블랙 재킷 The Greatest, 전면 프린트 팬츠 Moncler Collection, 고무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유동인이 입은 블랙 점프슈트 Iise, 삭스, 고무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걷지 않은 길로
유튜브 ‘춤추는 강의실’에서 김보람은 안무를 구성하는 방법을 보여주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쪽, (동작이) 잘 안 되는 쪽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뭔가에 적응되면 스스로 나태하게 느껴지고 죄짓는 기분이 듭니다. 이건 제 삶의 방식과도 같아요. 애써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싶진 않지만, 제가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다릅니다. 저는 같아지기를 포기하고, 저로서 살아가는 길을 찾고 있어요. 적응하는 것이 제게는 평지를 걷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는 오르막길이 즐겁습니다. 가끔 내리막길도 평지도 있겠지만, 결국 오르막길을 선택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입니다. 땀을 흘리려면 움직여야 합니다. 더 잘 추고 싶다면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려야 하죠. 이것이 제일 쉽고 편한 길입니다. 적어도 제게만큼은….”
기시감이 들었다. 두 달 전 이날치의 음악감독 장영규가 한 말(“소리꾼들이 같이 부르며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지점이 있어요. 다수가 단번에 ‘좋다’고 느끼는 건 대개 그런 익숙한 것이죠. 그런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익숙지 않은 것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상이한 것들이 만났을 때 뭔가 새롭게 작용하는 대목을 찾으려고요”)과 거의 흡사했으니까.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청담동 한복판에 세우겠다는 에디터의 시도는 무모했지만, 김보람의 앞에 또 다른 오르막길을 제시한 셈이다. 그리고 10월 6일, 최전선의 하이패션이 생동하는 청담동 명품 거리.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갤러리아백화점 앞 공터에서 대열을 이룬 뒤 [Fever] 공연 테마곡에 맞춰 첫발을 뗄 때, 불 붙인 작은 성냥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찰나에 폭발적으로 피어오른 불길처럼 거대한 에너지를 눈앞에서 보았다. “멋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 이미지의 힘.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 순간의 힘은 ‘멋’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왼쪽부터 남가영이 입은 유칼립투스 패턴 레이스 터틀넥 Lehho, 플라워 프린트 스커트 4 Moncler Simone Rocha, 포인트 토 발레리나 슈즈 Flat Apartment. 강다솜이 입은 플리츠 톱 2 Moncler 1952, 레드 브라 톱, 비대칭 디자인의 스커트 모두 4 Moncler Simone Rocha, 롱부츠 Moncler Collection. 임소정이 입은 크롭 재킷, 실크 브라 톱, 헤링본 소재 스커트 모두 Lehho, 스퀘어 토 메리제인 슈즈 Flat Apartment. 이혜상이 입은 바스트 디테일 포인트의 블랙 드레스, 롱 장갑, 패딩 모자 모두 4 Moncler Simone Rocha, 스퀘어 토 삭스 부츠 Flat Apartment.

흥 내려온다
“흥 없는 사람들이여, 우리와 함께 흥해보자.”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2019년 첫 공연을 올린 [fever]를 소개하는 첫머리에 쓴 말이다. 2016년 [얼토당토] 작품 중 피날레였던 한 파트를 발전시켜 하나의 공연으로 만든 [fever]는 태평소 시나위 소리와 타령에 걸맞은 흥겹고 멋있는 안무로 완성했다. 당시에는 12분 길이였지만 작년에 서울거리예술축제(SSAC) 초청 작품으로 올리면서 30분이 넘는 공연으로 늘려 새롭게 탄생했다.
“패션 그리고 멋진 움직임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무용수들이 각자의 멋을 찾는 데 많은 공을 들였고요.” 김보람의 말처럼 ‘살아 있는 전통’이라는 키워드로 한국의 전통이 현재 우리 삶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숙고하며 우리의 뿌리를 되새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작했다. 박물관에서 꺼내 온 전통에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독특한 옷을 입혀, 보는 이의 흥을 끄집어내려 한다. 안무가 김보람은 평소 작업 노트에 글과 그림을 빼곡히 적으면서 공연 아이디어를 쌓아간다. 한데 이번엔 달랐다.
“제 안에서 찾는 작업이 아니라 제가 모르는 부분을 발견해야 했습니다.” 김보람을 필두로 나머지 일곱 멤버는 풍물시장, 동묘 앞, 동대문시장, 인사동 등 한국 전통이 숨 쉬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 잡듯이 뒤졌다. 전통 의상을 고증하는 동시에 실제 우리 삶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서 [fever]는 제 색을 더해갔다.
[Fever]의 폭발적 흥의 기저에는 역시 소리가 있다. 일렉트로닉 비트에 태평소 시나위, 꽹과리, 판소리를 가미한 음악은 최혜원 음악감독의 작품이다. “미팅 후 음악감독이 알아서 음악을 완성해 보내줬어요.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음악이 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죠.” 춤추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 같은 흥겨운 사운드에 이날치 멤버인 소리꾼 권송희와 태평소, 꽹과리를 연주하는 박준형이 맛있는 양념을 쳐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피날레이자 휘몰아치는 하이라이트곡 ‘목공단’에서는 권송희와 박준형이 마치 랩을 하듯 맛깔나게 소리를 주고받는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혜상, 남가영, 임소정, 강다솜.

춤은 사라지지만
뇌 과학자 김대식은 인간이 AI와 가장 다른 점으로 ‘몸을 가졌다는 것’을 꼽는다. 몸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결국 인간이라는 자각, 살아 있다는 증명 같은 것이다. 김보람은 우리네 삶이 그 자체로 춤이고, 춤은 이미 우리 몸속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춤을 추기 위한 첫 단계는 신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춰보는 겁니다. 그것이 즐거우려면 한 곡 정도는 쉬지 않고 지속하는 게 좋아요. 조금 추다가 출 게 없어지는 것 같은 순간이 진짜 춤을 추는 순간에 가까워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움직임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 춤이라는 형식적 껍데기가 벗겨질 때 진정한 춤에 닿는다는 믿음. 그것이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관통하는 단단한 신념이다. 그들의 춤에서 뭔가 다름을 느꼈다면, 움직임 자체보다 그 기저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그들의 몸을 매개로 관객에게 전달된 까닭일 테다. 거창한 수식어 없이도 힘을 지닌 문장처럼.
춤은 사라지고, 언젠가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춤을 보았다는 사실마저 잊힐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속에 각인되어 언젠가 불현듯 꺼내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춤의 힘이 아닐까.
“멋이란 각자 시선과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쉽게 설명하자면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될 수 있겠네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흥, 멋, 춤을 지니고 있음을, ‘나’라는 우물을 깊이 파다 보면, 세상이 규정하는 춤꾼은 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멋진 움직임’에는 가까워질 수 있음을.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온몸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는 11월 6·7일 광명시민회관에서 첫 실내 공연으로 열린다.





왼쪽부터 유동인, 김현호, 이혜상, 강다솜, 김보람, 남가영, 임소정, 최경훈.

안무가 김보람을 제외한 멤버 7인에게 물었다.

1. 각자가 생각하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힘과 원동력
최경훈 압도적 연습량과 확고한 신념.
김현호 무용수 개개인이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움직임.
유동인 정교함,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확신, 디테일. 이 모든 것의 합이 잘 맞을 때의 에너지와 쾌감.
이혜상 연습량.
강다솜 열정.
임소정 보게 되는 힘.
남가영 춤추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힘. 몸이 노래의 리듬을 표현해 흐름을 이끄는 ‘정직한 춤’.

2.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에서 받은 가장 기억에 남는 가르침
최경훈 자신에게 집중하라. ‘음악’을 보여달라.
김현호 소리의 표현, 몸의 기능, 그리고 끼.
유동인 간단한 동작이라도 집요하게 유지하고 실행하라. 그리고 ‘동작에는 의미가 없다’.
이혜상 사람은 결코 쉽게 죽지 않는다.
강다솜 음악을 온전히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
임소정 선택과 확신! 아무리 애매모호하고 말도 안 되는 동작이라도 선택에 확신이 있다면 아름다운 댄스다. 그리고 ‘열심히 하지 말아라’.
남가영 자신에게 만족해서 추는 순간 도태한다. 스스로 어떻게 추는지 인지하고 계속 발전시킬 것.

3. 이번 공연 [Fever]에서 가장 염두에 둔 부분
최경훈
음악과 잘 어울리는 움직임을 찾는 방법과 생각.
김현호 계속 발전된 꿈을 꾸고 있다는 점. 그래서 매 공연마다 새롭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유동인 동작,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집요함을 발전시키려 노력 중이다.
이혜상 매일, 날마다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상상하고, 그것에 혼신을 다한다.
강다솜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디테일 표현에 공들이고, 리듬과 친해지는 중이다.
임소정 타령의 의미, 흐름을 연구하고 나의 ‘Feel’과 몸짓도 업그레이드하는 중이다.
남가영 다양한 한국 장단의 질감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집중한다.

4. 춤으로써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
최경훈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에서 만난 모든 공연에서.
김현호 관객이 즐거워할 때.
유동인 관객이 웃을 때.
이혜상 객석으로부터 진심 어린 집중력과 호흡, 소리가 느껴질 때.
강다솜 전체 무대를 스캔하며 함께 박자를 타고 눈을 마주치는 순간.
임소정 관객의 기운이 느껴지고 그 기운에서 힘을 얻을 때. 그리고 커튼콜!
남가영 라이브 언택트 공연에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실시간 채팅.

5. 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
최경훈 그냥 춤을 출 뿐이다. 그것이 어떤 메시지로 전해질지는 관객에게 달려 있겠지.
김현호 나의 춤을 통해 즐거운 감정을 많이 느끼길.
유동인 즐겁게 좋아하는 것을 하자.
이혜상 진정한 아름다움, 인간에게 감춰진 초능력!
강다솜 무용이라는 행복한 움직임의 에너지로 각자의 흥, 에너지, 스토리를 나누고 싶다.
임소정 춤은 가까이에 있다!
남가영 아직 배움과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므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역시 점차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지켜봐주시길.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김보성
헤어 안미연
메이크업 이아영
스타일링 이은진
어시스턴트 최고은
촬영 협조 강남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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