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 3색, 한식의 멋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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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27

3인 3색, 한식의 멋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식 문화를 이끌어가는 세 명의 여성과 만났다.

서촌의 한옥 자택에서 만난 임계화 요리연구가.





고수무침을 곁들인 구운 도토리묵(왼쪽), 나박하게 썬 무와 쪽파를 함께 넣어 고춧가루에 버무린 굴무침.

생활 속 경험에서 발견한 한식 라이프
임계화 요리연구가는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이론가도,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도 아니다. 그녀가 차린 밥상에 오르는 음식은 오랜 시간 일상에서 즐겨 먹고 연구하고 발견하면서 자연스레 체화된 것이 대부분이다. 20대부터 채식을 시작한 그녀는 30대 초반에 달항아리 백자로 유명한 신경균 도예가와 결혼한 뒤 한층 넓고 깊은 식문화 세계에 빠져들었다. 어릴 때부터 유명한 전통 사기장인 아버지 신정희 도예가의 영향으로 전통문화에 조예가 깊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많은 사찰과 종갓집에서 귀한 제철 음식 문화를 배운 신경균 도예가는 다도와 음식에 조예가 깊다. “이렇게 좋은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건 남편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두 사람 다 먹는 걸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부분도 많고요.”
신경균 도예가의 작업장 ‘장안요’와 부부가 사는 집은 부산 기장 해안가에 자리한다. 기장 앞바다와 넓은 텃밭에서 자란 싱싱한 제철 해산물과 채소가 가득하다. 부부는 산지 농부들이 손질하고 먹는 날것 그대로 방식으로 살아간다. “쓴맛이든 떫은맛이든 몸에 이상이 있거나 탈이 나지 않는 한 본연의 맛을 즐기는 편이에요. 재료가 좋으면 굳이 양념할 필요 없거든요. 음식 맛이 양념이나 소스에 좌우되지 않도록 약간의 소금과 후추, 집에서 담근 간장 정도만 곁들입니다.”
일본의 저명한 지중해식 요리연구가 기타무라 미쓰요는 그들의 집에 들렀을 때 “한국 산천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한식이 지중해식보다 훌륭한 면이 많다”라고 말했다. 몇 년간 올 때마다 며칠 묵으면서 장을 보거나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생활한 뒤 내린 극찬이었다. 자연에서 얻은 건강한 식재료를 최대한 간결한 조리법으로 만들어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는 지중해식 요리에 견줄 만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지난 2017년에는 영국의 유명 예술감독이 그들의 집에 와서 함께 식사한 뒤 깊이 감화되어 한 달간 현지 농장에 초대하기도 했다. 자연에서 난 재료를 이용해 최소한의 양념으로만 만든 음식을 손으로 빚은 도자기에 담아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삶. 이들 부부의 삶이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농장과 계약을 맺어 자연에서 자란 건강한 재료로 요리하고, 발효 음식에 열광하는 요즘 영국인이 가장 열망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임계화 요리연구가는 손님 접대 시 주로 사용하는 서촌 자택에 들른 우리 일행에게 싱싱한 굴과 볶은 능이버섯, 간장과 참기름에 살짝 버무린 고수무침, 도톰하게 썰어 올리브유에 구운 도토리묵을 내왔다. 자유롭고 섬세한 선, 흙과 유약으로 빚은 오묘한 색감이 감도는 신경균 도예가의 그릇에 담긴 음식은 더욱 풍성하고 근사해 보였다. 가을을 갈무리하고 초겨울을 맞이하는 계절에 수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은 신선하고 향긋했다. 고소하고 달착지근하며 쌉싸래하게 퍼지는 은은한 감칠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혀에 착 감기며 미각을 깨우고, 한 그릇을 다 비워도 속이 편안하다. “특히 능이버섯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예요. 젊을 때 남편과 함께 전라도 조계산에 자리한 송광사에 간 적이 있어요. 새벽 2시경에 도착했는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좋은 향이 느껴지더군요. 원주실에 달아 말리는 능이버섯 향이었죠. 그때 능이버섯을 처음 알았어요. 이렇게 좋은 식재료를 몰랐던 제게 남편은 농담 섞인 핀잔을 주었죠. 향이 풍부할 뿐 아니라 편도가 심하게 붓는 감기와 암 환자에게도 좋은 최고 보약이에요.”
‘farm to table’이 생활 속에 자리한 임계화 요리연구가의 식탁은 오랜 시간 경험에서 얻은 얘깃거리가 넘쳐났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한식은 그리 멀리 있거나 거창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 해답은 우리의 산천 그리고 사계절이 주는 자연의 선물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먹고 즐기는 그녀의 밥상에 있지 않을까.





광주요 그릇을 전시한 가온 프라이빗 룸에서 만난 조희경 대표이사.

한식 파인다이닝을 정착시키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미묘한 느낌을 감정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맛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거기서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죠. 왜 맛있는지, 왜 이곳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지는 것이 파인다이닝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파인다이닝 경영에서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한 ㈜가온소사이어티 조희경 대표이사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하 대표이사)의 말이다. 그녀는 가온과 비채나를 통해 국내 한식 파인다이닝의 초석을 다지고, 4년 연속 미슐랭 별 4개를 거머쥐었다. 2010년에 ㈜가온소사이어티에 합류해 화요·광주요 마케팅과 리브랜딩을 담당하며 한식 관련 기획을 하다 2012년 비채나를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한식 파인다이닝에 뛰어들었다. 비채나가 향토 음식을 기반으로 한 컨템퍼러리 한식을 선보이는 곳이라면 2014년에 재오픈한 가온은 전통 한식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본연의 맛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그녀가 이 두 곳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데에는 한식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밑바탕 되었다. “사춘기 때 한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 등에서 17년간 생활했어요. 그런 제게 어쩌면 한식은 가장 자신 없는 음식일 수 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전 한식을 하고 싶었고, 알고 싶었고, 잘해낼 자신이 있었죠.” 다소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녀는 한식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진지한 눈빛으로 변했다. 물론 다채로운 글로벌 경험도 경영자로서 시야를 넓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 조희경 대표이사는 해외 유수의 레스토랑에 다니며 좋은 레스토랑의 기준과 문화를 몸소 체득하고,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한 미국의 스타 셰프 토머스 켈러 수하에서 주방 인턴십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완벽한 맛과 서비스를 위해 확실한 방식을 보유하고 트레이닝하는 파인다이닝 세계에서 희열을 느꼈다.
“파인다이닝에서 일하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동시에 심적으로 위안이 되었어요. 셰프가 대접받으며 일해야 손님도 셰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래야 스태프들도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죠. 가온과 비채나에서도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 두 레스토랑에서는 직원 품평회를 통해 셰프의 영향력을 평가하고, 헤드 셰프가 팀원을 어떻게 교육시키는지 알 수 있다. 셰프라면 고객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조적 레시피를 축적하기 위해 시즌마다 메뉴를 바꾸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가온은 별 3개, 비채나는 별 1개를 획득하며 명실공히 한식 파인다이닝 최강자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미슐랭 별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계속 고민하며 연구하는 자세다. “아름다운 공간에 아름다운 식기와 음식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미래를 이어갈 수는 없어요.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요. 특히 ‘한국인이 원하는 한식이 무엇인가?’를 항상 되묻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친숙한 음식이라는 거예요. 그것은 모양이나 담음새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맛에서 비롯되는 거죠. 맛있는 것은 물론이고 서양 음식에서 느낄 수 없는 한국 고유의 느낌을 살리려고 해요. 플레이팅 같은 경우에도 너무 모양을 내지 않고 단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미를 추구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인의 정서까지 고려한다는 그녀. 중요한 비즈니스 자리라면 음식 설명을 하지 않고 건너뛰어도 괜찮다며 고객의 상황을 최대한 배려한다. 거침없는 시원시원한 성격과 호탕한 웃음으로 시종일관 밝은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내내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고 배려한 조희경 대표이사의 세심함이 결국 가온과 비채나를 찾는 고객에게도 와닿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한 브랜드 디렉팅에 힘을 쏟을 예정이에요. 브랜딩 컨설팅 회사를 준비 중이고, 아직 공개할 순 없지만 한식 최초로 진행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죠.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해외 레스토랑 진출도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고요. 머지않은 미래에 해외에서 가온이나 비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술의 멋과 맛을 알리는 전통주 갤러리 이현주 관장.





(왼쪽) 전통주 갤러리 내부.
(오른쪽)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된 바 있는 약주 천비향.

전통주의 매력을 전파하다
<한 잔 술, 한국의 맛>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참기름 향이 살짝만 풍기는 얼리지 않은 생고기 육회에 채 썬 배를 딱 두 조각만 얹어서는 한 젓가락으로 듬뿍 집어 입에 넣고 단 몇 번만 오물거리다 꿀꺽 삼킨 뒤 차가운 이강주 한 잔을 들이켰을 때의 쾌감.” 한국 술 28종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술과 음식의 궁합을 섬세한 감각으로 묘사해 우리 술의 멋과 맛을 알린 저자는 전통주 소믈리에이자 전통주 갤러리 수장 이현주 관장이다. 스물다섯에 식음료 유통업 회사를 창업한 뒤 외식업체 운영, 서비스 교육 강사 등 다양한 영역을 섭렵해온 그녀가 전통주에 매료된 것은 2010년. “바텐더 양성 학교로 알려진 조니워커 스쿨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어느 날 동료 한 명이 직접 빚은 약주를 가져왔어요. 다 같이 모여 테이스팅을 했죠. 분명 쌀로 만들었다는데, 과일 향이 그득해 화이트 와인이 연상됐어요. 전에 맛본 적 없는 독특한 풍미에 눈이 번쩍 뜨이며 전율을 느꼈죠. 그때부터 전통주를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누군가의 소개로 사람을 만나더라도 서로 알아가면서 사랑이 깊어지는 것처럼, 술도 마찬가지다. 이현주 관장은 기본적으로 모든 술에 대한 궁금증이 있지만, 전통주를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더욱 애착이 생긴다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매력이 있어요. 한번 맛보면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영혼이 담긴 느낌이랄까. 알수록 더 매료되는 술이죠.”
2012년 한국 전통주소믈리에 대회 국가 대표 부문 1위를 차지하고, 2015년에 설립한 전통주 갤러리 초대 관장을 지낸 그녀는 우리 술을 맛있게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활약했다. 젊은이들이 우리 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상설 무료 시음회와 교육, 다양한 행사를 열었으며, 전통주 관련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무료 컨설팅을 진행해 무궁무진한 우리 술의 세계로 안내했다. 반얀트리 클럽 & 스파 서울 페스타, 신라호텔 라연, 부산 롯데호텔 무궁화 등 호텔 레스토랑에서 전통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페어링 메뉴를 짤 때도 이현주 관장을 찾았다. 하지만 술과 음식의 매치는 개별적 경험이라 절대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우리 술은 주종별로 개성이 다르기에 음식 페어링도 주종별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좋다. “알코올 도수가 낮고 달콤하며 천연 탄산을 가미한 막걸리는 매콤한 음식, 도수가 높고 깔끔한 증류주는 담백한 국물 요리와 잘 어울리는 편이죠. 하지만 이마저도 술의 캐릭터에 따라 또 다른 매치가 가능해요. 예를 들어, 단맛이 없고 깔끔한 송명산 막걸리의 경우 피자와 페어링하면 찰떡궁합이죠. 피자의 짭조름한 풍미가 술에 내재된 단맛을 끄집어내거든요. 피자에 곁들이면 미처 술에서 느끼지 못한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부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우리 술은 원료와 잘 맞는 음식을 매치하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배와 생강으로 만든 증류주인 이강주는 배 두 조각을 얹은 육회와 먹으면 개운한 맛이 배가된다. 또 술과 음식은 같은 밥상 위에서 자란 동무 같은 존재라 지역 음식과 그 지역 술은 잘 맞을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2018년에 잠시 쉬는 동안 책 한 권을 썼어요. <한 잔 술, 한국의 맛>을 통해 알고 마시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전통주, 한국의 다채로운 술맛을 알리고 싶었죠.” 실제로 몇 해 전부터 외식업계에서 전통주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개성 강한 신생 전통주가 쏟아져 나왔으며, 전통주를 중심으로 하는 모던한 바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다시 전통주 갤러리 관장으로 복귀한 그녀는 우리 술은 아직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미지의 세계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통주가 일상으로 파고들기 위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가격, 용량 같은 눈에 보이는 문제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젊은 양조자들이 더 다채롭게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전통주를 양조해 우리 술 자체가 더 풍성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비즈니스를 위한 기본 덕목이자 교양이 된 와인처럼 전통주 역시 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더 많이 공부하고 애정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다양한 클래스를 열고 더 쉽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정상까지 올라갈 순 없어도 지도를 펴고 어느 길로 가라고 알려준다면 험난한 길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죠. 앞으로도 전통주 갤러리는 우리 술을 즐기는 이에게 안내자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이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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