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작가의 개인전 <살어리 살어리랏다>의 의미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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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8

최정화 작가의 개인전 <살어리 살어리랏다>의 의미

서울이 아닌 경남도립미술관을 선택한 최정화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지역의 소리.

작품 앞에 선 최정화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등에서 최근 2년 동안 최정화 작가는 굵직굵직한 전시를 선보였다. 그때마다 ‘역대급’, ‘모든 것을 쏟아부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살어리 살어리랏다>가 진짜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은 물론, 지금껏 견고히 쌓아온 자기 확신을 조금 무너뜨리고 생각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을 정도로 이번 전시는 최정화에게 특별한 경험이다. 1층부터 3층까지 전관을 아우르고 미술관 앞마당까지 작품으로 수놓은 것으로 모자라 경남 지역 곳곳을 여행하는 공공 미술을 통해 말 그대로 지역 전체를 담아낸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 대신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리는 지금, 우리가 잘 모르던 경남의 지역성에 대해 알아가고, 창원의 경치를 만끽하며 아름다운 예술 작품 한 점 마음에 담아가는 건 어떨까.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열린다.

최정화
1961년생 작가 최정화는 스타일리시하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판타지를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며 그동안 스케일이 큰 공공 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또 ‘장르가 없다’는 말로 최정화 고유의 장르를 개척해왔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문화역서울284,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독일의 안도 파인 아트, 일본의 도와다시 현대미술관, 중국의 파크뷰 그린, 핀란드의 키아스마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오가며 자신의 예술을 매개로 네트워킹을 꾀한 그는 2021년에도 유럽과 일본에서 또 다른 전시를 기획 중이다.





경남도립미술관 외부에 설치한 공공 미술 전경.





<살어리 살어리랏다>전 1층 전경.





수산시장에 버려진 파라솔과 잘못 만들어진 샹들리에를 사용한 작품. 이렇게 사람의 손때와 세월의 흔적이 묻은 물건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최정화 작가의 특기.

안녕하세요. 올 한 해 개인전과 그룹전 여럿에 참여하면서 무척 바쁘게 보내셨어요. 그런 가운데 경남 지역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 소회를 들려주세요.
꼬박 1년을 준비했어요. 덕분에 내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그동안 놓치고 산 것이 많더라고요. 저는 ‘사람 냄새’ 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생각하고 또 해왔다고 자신했는데,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역에 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 대해 좀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과제를 하나 얻은 전시예요. 더불어 코로나19로 미술관도, 지역 주민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많은 분이 전시를 찾아주고 계십니다. 감사한 일이에요. 예술로 조금이나마 힘든 시간을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가로서 이곳, 경남 지역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는지 궁금해요. 이곳에서 어떤 자극을 받으셨나요?
여기(창원)가 뒤로는 산, 앞으로는 바다잖아요. 사실 반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이 그래요. 그런데 그게 새삼스레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산’이라는 지형적 특성이 담긴 청과물시장과 ‘바다’의 특성이 드러나는 수산시장을 집중적으로 살피게 됐어요. 사람이 어떤 걸 ‘감각’할 때 오감을 전부 사용한다고 하죠. 당연히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후각, 촉각, 미각, 청각 등이 유기적으로 맞아떨어져야 어떤 걸 잘 ‘느꼈다’고 표현할 수 있어요. 이번엔 청과물시장의 과일과 채소 냄새, 수산시장의 비릿한 생선과 바다 냄새가 저를 자극했습니다. 또 모두 시장에 대한 추억이나 이미지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거예요. 향수를 자극한달까.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가는 이 오감을 왔다 갔다 하면서 거미줄처럼 엮으며 네트워킹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에 그런 점을 녹여내려 했어요.





2층 전시장 전경. 작품 속 의자에 앉아 편안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 설치한 작품. 이번에 작가는 청과물시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작업했다.

최근 2~3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등에서 연달아 전시를 여셨어요. 아무래도 규모가 큰 미술관에서 자주 전시를 선보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저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중첩된다고 생각해요. 과거, 현재, 미래가 사실 어떻게 보면 하나로 묶인달까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2019년 아트스페이스 광교 전시, 2020년 경남도립미술관 전시는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서사라고 할 수 있어요. 그건 아무래도 제가 작업의 기조로 삼는 것이 ‘조화’이기 때문일 거예요. 이를테면 서울, 광교, 경남 등 전시를 여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물리적 삶의 조각을 모아 재조립해서 하나의 새로운 단어로서 전시를 제시하는 거죠. 그래서 제 전시는 파편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심포니’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물론 이런 대대적인 프로젝트가 결코 쉽진 않죠. 그럼에도 작가이기에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동안 ‘관람객 참여형’ 작업을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작업에 사용할 온갖 집기를 모으시잖아요. 소쿠리부터 양동이, 오래된 카트, 수산시장의 생선 박스 같은 것을. 이런 물건을 모아서 작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1990년대 초부터 ‘자생’이라는 단어의 숭고함과 중요성에 초점을 맞춰왔어요. ‘스스로 살아간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이에요. 자기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본질 혹은 정체성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당연하잖아요! 뿌리를 깊이 박은 나무가 거센 풍파를 견디고 오래 살아남는 것처럼 말이죠. 개개인의 자생력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다 저는 ‘집안’에서 그걸 찾았어요. 우리 모두 쉽게 사고,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그 시작이었죠. 이런 개인의 일상이 묻은 물건을 채집함으로써 일반 대중도 작품의 일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 싶었어요. 제가 늘 얘기하는 ‘You are the art’와 ‘Your heart is my art’가 그런 맥락에서 나온 외침이죠.

요즘 미술관은 그 역할에 대해 무척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저 작품을 전시하고, 미술 사조를 지키고 또 연구하는 기관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요. 그런 면에서 이번 경남도립미술관의 전시는 많은 의미를 남길 것 같아요. 단순히 전시를 보라고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가지고 직접 찾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과일 여행’ 프로젝트 덕분인 것 같은데요.
바로 그거예요.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이동에 제약에 생겼잖아요. 그래서 제가 직접 예술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야겠다 싶어서 일단 경남 지역을 순회하는 프로젝트를 생각했어요. 사실 예술은 ‘놀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 놀이의 주인공은 ‘당신’이라고 저는 항상 말하죠. 그동안 사람들은 현대미술과 미술관이라는 존재에 주눅 들어 있었어요. 말 그대로 너무 높은 벽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었던 거죠. 하지만 스마트폰이라는 도구가 생기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예요. SNS에 내가 만든 것, 내가 찍은 사진 등을 올리며 ‘아름다움’에 대해, 예술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그러면서 미술관 역시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한가운데에 존재한다는 점을 계속해서 일깨울 필요가 생겼어요. 우리는 모두 작가적 기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을 이제 미술관이 앞장서서 일깨워준달까요. 반복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결국은 ‘You are the art’와 같은 맥락이겠네요. 앞으로 미술관은 모두가 예술가가 되고, 모두가 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을 하나의 놀이터로,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제 작업이 관람객 참여형이잖아요. 그동안 서울, 광교 등 전시를 연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재료를 모으는 등 그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예술이 결코 높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참여율이 생각만큼 폭발적이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정말 작은 것부터 기억을 수집하기 위해 지역 주민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저 자신의 모습과 자세가 보였어요. 그동안 저는 ‘밑, 옆, 곁’이라는 단어를 가까이 두고 작업해왔는데 제가 생각한 작가로서의 모습이 모자란 건 아닌지 의심이 들더라고요. 한 방 세게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가 특별하다고 계속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 스스로 그런 의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참 다행이에요. 예술가와 예술가가 아닌 사람이 절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새기면서 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지역성과 자연적 특성, 역사도 다른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았죠.





아이들이 건드리면서 온몸으로 즐길 수 있는 설치 작품.





경남 지역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모을 수 있었다. 최정화 작가의 작품은 사람들의 참여로 완성된다.





방 하나를 통째로 뒤덮은 작품 양 끝에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을 배치해 관람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전시명 ‘살어리 살어리랏다’의 의미도 궁금해지네요. 이 말에 어떤 메시지를 담으셨나요?
‘살어리 살어리랏다’는 제 작업 전반이 얽혀 있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날 생(生)에서 산다, 살림, 삶 등 우리 인생을 아우르는 단어로 뻗어나가죠. 그래서 이전 전시도 ‘생생활활’을 강조했고 잡화, 숲, 꽃 등 우리 삶의 일부에 초점을 맞췄어요. 제 전시가 어쨌든 우리네 삶을 얘기하다 보니 딱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 생활이라 하니 갑자기 든 생각인데, 사실 지금껏 모은 물건이 양동이, 플라스틱 볼 등 각종 생활용품이라고 하지만 집안일을 하는 ‘여성’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요.
정확히 보셨어요. 저는 비록 남성이지만 여성, 즉 ‘아주머니’의 힘이 매우 강하다고 믿어요. 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집이죠.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 가부장적 풍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안에선 어머니의 힘이 무척 셉니다. 그들 없이는 생활할 수 없죠. 저는 점점 모계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변해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시장 같은 데 가서 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죠. 우리나라 아주머니들이 진짜 전위적이라는 것을. 그들의 생활력, 포용력, 친화력 그리고 실험성이 삶에 있는 그대로 묻어나요. 그들이 없으면 가정이든, 시장이든, 사회의 어느 곳이든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예요. 저는 그들에게 많은 걸 배웁니다. 그들의 전위적인 면모를 제 작업에 꼭 투영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이번 전시에 담긴 메시지와 작가님의 사유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끝으로 이번 전시를 비롯해 예술을 보러 오는 이들에게 해주실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요?
요즘 세상의 중심은 개인이에요. 특히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가 보급되면서 자신의 세상을 만들 방법이 더욱 다양해졌죠. 그러니까 예술가라는 타이틀, 혹은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창조자’로서의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제 전시에서 2층을 살펴보면 작품과 함께 거울이나 반사되는 장치가 놓인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의자와 벤치도 있고요. 자유롭게 앉아서 같이 온 누군가를 찍어주고, 셀카를 찍기도 하면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면 어떨까요.
제 작품은 참여하는 관람객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에요. 이전에는 관람객에게 제 작품이 어떤 울림이나 떨림을 선사하길 바랐는데, 이제는 그들에게 새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부디 내가 예술가라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여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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