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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9

예술계의 오바마라 불리는 사나이, 오쿠이 엔위저

비서구권 출신의 흑인 큐레이터로 세계적 비엔날레를 진두지휘한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

백인우월주의가 팽배한 세계 미술계에 자신의 발자국을 확실히 남긴 오쿠이 엔위저는 2019년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쿠이 엔위저
1963년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평생을 미술의 발전에 바쳤다. 평론가, 작가, 시인, 미술사 교육자로서 활발히 활동한 그는 2014년 <아트리뷰>가 선정한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24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1년부터 2018년 골수암 투병으로 관장직을 사임하기까지 독일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 관장을 역임했다.





El Anatsui, Second Wave, Installation for Haus der Kunst’s Facade, 2019
Photo by Jens Wever, München





2013년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열린 전 전경.
Photo by Wilfried Petzi

예술은 인류가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에 언제나 함께해왔다. 예술의 문턱이 낮아지고 작가와 작품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20세기에 우리는 전시를 매개로 미술(작품)과 관람객을 연결해주는 메신저,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새로이 만나게 됐다. 얼핏 동떨어져 보이는 예술과 삶의 접점을 드러내는 조력자이자 양측의 협력자로서 큐레이터는 대중과 예술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해왔다. 20세기 후반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 미술 행사가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에서 열리고 특정 큐레이터가 그 행사를 지휘하면서 큐레이터와 큐레이팅(기획 및 진행)의 중요성도 커졌다. 그리고 이때 비엔날레라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전시를 통해 서구 중심의 편향된 미술계 지형을 바꾸고자 한 큐레이터가 등장한다. 그가 바로 오쿠이 엔위저다.

근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가 비서구권 국가를 식민화했듯이 유럽발 현대미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지리적·정치적·문화적으로 전 세계가 뒤섞이던 1990년대, 여전히 유럽 중심의 대형 미술 전시가 열리는 가운데 오쿠이 엔위저가 예술감독을 맡은 제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1997)가 개막했다. 엔위저는 비엔날레 데뷔 무대인 이 행사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지역의 큐레이터와 함께 이들 지역의 사회적·정치적·역사적 맥락이 만들어낸 담론에 주목한 전시를 선보였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1990년대는 미국, 유럽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출신 큐레이터들과 전 지구적 보편성을 고민하던 시기”라며, “세계 미술의 지형도를 바꾸고,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대화의 장으로 나올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1)라고 말했다.

미술의 제도적 정착지인 미술관은 보수적인 체계로 변화가 느릴 수밖에 없다. 반면 비엔날레는 상대적으로 지역성을 매개로 사회현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급진성을 가진 플랫폼이다. 그래서 엔위저에게 비엔날레는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문화적 변화와 미술의 양상을 한눈에 보여주고, 이를 통해 비서구권 미술이 서구의 기준을 빌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보편적 언어로서 담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자리였음이 틀림없다. 그는 비엔날레를 통해 미술의 탈식민지적 접근을 시도하며 비서구권 미술을 서구와 동등한 미술로 호명하는, 궁극적으로 ‘동시대 미술의 민주주의’라는 큐레이팅 방법론을 실천하고자 했다.

한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담은 매체가 ‘미술’이라고 한다면, 또 미술이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특수성이자 문화적 식민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라면, 이러한 미술을 보여주고 화두로 삼는 일이야말로 큐레이터로서 엔위저의 소명이었던 셈이다. 그는 말했다. “비엔날레는 근대화와 모더니티의 개념을 위해 어떤 대안적인 면을 제공하고, 지역 차원에서 예술가가 작업할 제도나 공간을 조성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제가 배운 중요한 교훈은 비엔날레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예술이 부족하다는 믿음을 타파시켰다는 것입니다.”(2) 이러한 신념과 태도는 그가 예술감독을 맡은 2002 카셀 도쿠멘타, 2008 광주비엔날레, 2015 베니스 비엔날레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1) 오쿠이 엔위저, ‘이주자, 노마드, 순례자: 동시대 예술의 세계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청 강연, 2014년 8월 29일(심영규 정리. 기사 온라인 게재일 2014년 9월 15일)
(2) 폴 오닐 & 오쿠이 엔위저, ‘정전을 넘어선 큐레이팅’, 폴 오닐 엮음, 변현주 옮김,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 현실문화, 2013, 171~172쪽(박가희, ‘대항으로서의 큐레이토리얼 실천’, <미술세계>, 2019년 5월호 116쪽 재인용)





2008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오쿠이 엔위저.
사진 제공 (재)광주비엔날레





2016년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전 역시 오쿠이 엔위저가 큐레이팅했다.
Photo by Maximilian Geuter

2000년대를 지나며 글로벌 금융·경제와 미술 시장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비엔날레도 거대 자본의 후원을 받는 축제의 장이 되면서 비엔날레는 미술을 ‘상품’으로서 ‘트렌드화’하려는 자본주의적 면모를 갖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당시 시장이 원하는 흐름과 다를 수밖에 없는 엔위저의 주제의식과 2015 베니스 비엔날레는 1974년 처음 시작한 이래 가장 정치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철 지난 유행을 좇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엔위저는 “끊임없이 하나의 역동적 ‘파괴’ 모델로서 존재해야만”(3) 하는 비엔날레가 자본에 의해 트렌드화되는 위기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4)

글로벌 자본시장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엔위저가 기대한 비엔날레의 역동성은 점차 희미해질 것이고, 이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구는 어디에서나 둥글고 밤하늘의 별은 자기 자리에서 빛난다. 예술 역시 어디에 있든 인류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개념 속에서 예술의 특수성은 그 자체로 보편성을 지닌다고 그는 생각했다. 정치적·경제적 위계질서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미술을 줄 세우려는 시도 속에서 동시대 미술의 보편성과 동등성을 현시하기 위해 그것이 발생한 지역, 문화, 사회, 국가 같은 지정학적 관점으로 고찰하고, 그로부터 각각의 미술적 실천이 지닌 맥락을 별자리처럼 이어서 보여주는 일. 엔위저는 지금껏 30여 년간 견지해온 이러한 관점을 “탈식민지적 성좌(postcolonial constellation)”(5)라고 칭하며, 서구 중심의 미술계 판도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2019년 3월 오쿠이 엔위저의 작고 소식은 전 세계 미술인의 애도 물결을 만들며 예술 기획자로서 그의 큐레이팅이 보여준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는 그 무엇도 하기 어려운 역설적 상황에 놓였다. 각종 미술 비엔날레는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그가 살아 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했을까? 오쿠이 엔위저가 고군분투해온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남은 사람의 몫이지만, 그가 남긴 변하지 않을 신념과 그것을 실행에 옮긴 큐레이팅은 망망대해의 밤하늘 별자리처럼 우리가 길을 잃을 때마다 길잡이가 되어줄 위대한 유산임이 틀림없다.

(3) 오쿠이 엔위저 인터뷰(Art Insight #1: 오쿠이 엔위저, Art World, 현대자동차, 2014) 중 발췌
(4) 신혜성, ‘동시대 미술 전시의 시공간과 탈식민주의적 틈: 오쿠이 엔위저의 큐레이팅’, <기초 조형학 연구> 18권 5호(통권 83호), 2017, 294~299쪽 참고
(5) 정은진,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의 탈식민주의 전시 담론 - <도쿠멘타 11>(2002)을 중심으로’,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8, 173~175쪽 참고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박유리(국립현대미술관 언론 홍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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