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안웅철의 지금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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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7

사진가 안웅철의 지금

경계 없이 작업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에세이를 쓰는 사진가 안웅철의 지금 가장 빛나는 순간.

인터뷰를 위해 여러 장소에 가봤지만, 안웅철의 작업실 같은 곳은 처음이었다. 뭐랄까, 한 사람의 취향으로 가득 찬 공간? 채도 높은 레드와 그린 컬러가 주를 이루는 작업실에는 수십 년간 수집한 LP와 CD가 쌓여 있고, 젊을 때부터 찍어온 사진이 걸려 있다. 여기에 알록달록한 목 베개를 촬영해 프린팅한 테이블, 요제프 보이스의 친필 사인이 담긴 전시 포스터, 속초 여행에서 산 재미난 모양의 건조 오징어, 절대 끊이지 않는 클래식 선율까지! 뒤죽박죽이면서도 ‘안웅철’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질서정연한, 묘한 느낌의 공간을 보며 그가 ‘본투비 아티스트’임을 직감했다.
의외로 안웅철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첫 직함. 그의 표현에 따르면, 좋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아름답게 구성하는 일을 맡았다. 그때만 해도 사진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고. “개인적으로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하긴 했어요. 이미지를 다루다 보니 ‘더 좋은 대안은 없을까? 내가 찍어보면 어떨까’ 싶었죠. 그러다 1992년 처음으로 뉴욕 여행을 떠났어요.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안목이 넓어지고, 사진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2년 후 직장을 그만둔 그는 지금까지 사진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도 가끔 디자인 작업을 한다고. 자신의 명함이나 전시회 초대장은 물론 필요에 따라 책 커버까지 직접 디자인한다. “큰 맥락에서 사진이나 디자인은 비슷해요. 모두 비주얼을 다루는 일이잖아요. 사람들은 저를 ‘사진가’라 부르지만, 타이틀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일까. 30년 가까이 사진 작업에 매진해온 그의 포트폴리오는 다채롭다. 광고 비주얼부터 패션 화보, 다큐멘터리 사진, 파인 아트 작업까지 아우른다. 오랜 기간 사진가로 활동하다 보면 한 분야나 특정 주제에 정통한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마련인데, 안웅철은 그렇지 않다. 달리 말하면 작업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 비결이 뭘까? “저는 작업할 때 인물과 풍경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요. 하나의 ‘대상’일 뿐이죠. 무엇을 찍는지보다 중요한 건 각자의 느낌과 테크닉을 살리는 거예요. 이런 측면에서 제 메인 장르는 ‘안웅철이 자기 스타일로 찍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안웅철이 수집한 CD. 맨 앞에 놓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앨범 재킷에는 그가 촬영한 사진이 쓰였다.

안웅철은 자신의 사진을 ‘딥(deep)’하다고 평가한다. 여기에는 사진을 찍기 전 대상을 오랜 시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깊숙이 투사하는 작업 방식이 한몫한다. “급하게 사진을 찍지 않아요. 인물 촬영의 경우,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어도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어붙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먼저 인물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대화합니다. 때로는 사진 찍는 시간보다 많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긴장감이 풀리고 한결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옵니다. 풍경 사진도 그래요. 촬영 공간에 가면 그곳의 향기, 소리에 집중합니다. 온몸으로 공간을 받아들인 뒤 비로소 카메라를 들죠. 제가 느낀 모든 것을 시각화하는 겁니다.”
사진 한 컷에 담긴 안웅철의 노력을 알아보는 이가 많지만,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아름다운 앨범 재킷으로 유명한 세계적 음반 레이블 ECM레코드 대표 만프레트 아이허. 그는 안웅철을 “정적인 순간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담아내며 동시에 역동적 움직임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그의 렌즈를 통해 탄생한 이미지는 강렬한 에너지를 담고 있으며,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고 극찬했다. 립서비스가 아니다. 안웅철은 ECM레코드 앨범 재킷을 만드는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한국 작가다. “ECM레코드와의 협업은 사진가로서 이루고 싶은 위시 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2013년 만프레트 아이허가 한국에 왔을 때 그의 포트레이트를 찍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낼 때 제 작업도 쓱 끼워 넣었죠.(웃음) 그랬더니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이 오더군요. 2014년부터 거의 매년 그에게 사진을 보내는데, 이렇게 만든 앨범이 20장 정도 됩니다.”





안웅철이 ECM레코드와 작업한 음반.

음반이 가득한 작업실 풍경과 ECM레코드와의 인연에서 눈치챈 이도 있겠지만, 안웅철의 작업과 삶에서 ‘음악’이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는 없다. “직접 노래하거나 악기를 다루는 데는 재능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죠. 그래서 제가 잘하는 것, 사진으로 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조동진, 손열음, 원일, 보비 맥퍼린, 사카모토 류이치 등 음악계 유명인사를 카메라에 담아온 것은 물론 뉴욕 여행의 추억이 연상되는 음악을 엄선해 컴필레이션 앨범 <뉴욕 스토리>를 발매했다. 음악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그는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지난 2015년 이루마가 발표한 정규 9집 앨범 가 대표적 사례. 이루마는 그가 즐겨 찍는 제주 곶자왈의 풍경 사진을 보고 마지막 낙원을 향한 갈망을 피아노곡으로 표현했다.
잡지 화보로, 앨범 재킷으로, 전시회로 대중에게 작업을 선보여온 안웅철. 그의 사진을 한자리에서 감상하고 싶다면, 그가 지난 11월 출간한 포토 에세이 <지금이 우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추천한다. <스틸 라이프>에 이어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도시, 자연, 꽃, 동물, 여행, 사람, 음악 등 수년간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대상의 사진 201장을 선보였다.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생생한 어조로 풀어놓아 책을 읽는 이에게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총 24개 섹션으로 책을 구성했는데, 각기 다른 전시를 준비한다는 느낌으로 작업했습니다. 요새 ‘랜선 여행’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집 밖으로 나서기 어려운 때인데, 이 책을 보고 먼 곳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으면 합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 안웅철이 생각하는 사진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책 제목을 가리켰다. “사진은 미래를 표현하지 못해요. 대신 ‘지금’은 잡아챌 수 있죠. 누군가에게 ‘지금 아름다운데, 찍어줄까’ 제안하면 간혹 ‘나중에 예쁠 때’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나중은 미래고, 그때가 되면 현재 모습은 사라지는걸요. 지금이 우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에요. 저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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