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축, 호접몽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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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1

좋은 건축, 호접몽가

윤경식 건축가와 최진석 철학자의 사유가 응집된 전남 함평의 ‘호접몽가’에 다녀왔다.

철학자 최진석
“철학은 개념으로 쌓은 집이고 건축은 벽돌로 쌓은 철학입니다. 제 사유가 문자나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물성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니 큰 감동이 밀려들었어요. 굉장한 고전 한 편을 완성한 듯한 쾌감을 느꼈죠.” 사진 JK
나비의 날갯짓
호접몽가의 지붕은 장자 철학의 핵심 모티브인 나비의 한쪽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건축가가 도가 사상에 대한 철학과 컨셉, 공간에 대한 분명한 소명을 가진 덕분에 호접몽가에는 도가적 색채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호접몽가 오른쪽으로는 최진석 교수가 주말에 내려와 쉬는 주거 공간이 있다. 어린 시절 꿈을 키우던 그곳에서 이제는 젊은 인재들이 미래의 꿈을 키워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10월 6일, 제35회 세계건축상(World Architecture Awards) 대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건축물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최진석 철학자의 ‘호접몽가(The Pavilion: Dream of the Butterfly)’와 삼각산 도선사의 ‘소울림(The Soul Forest)’. 현대건축 담론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건축, 혁신적이고 주목할 만한 건축을 선정하는 세계건축상은 세계 53개국 243명의 저명한 건축 관련 전문가로 구성한 심사위원단이 엄정한 기준으로 10개의 대상 작품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치른다. 총 10개의 대상 작품 중 한국 작품이 2개나 포함된 것도 이슈였지만, 두 작품 모두 윤경식 ㈜한국건축 회장의 작품이라는 점은 더 큰 놀라움을 자아냈다. 윤경식 건축가는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장 톱 10’, <뉴욕타임스>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에 포함된 해슬리 나인브릿지의 클럽하우스를 설계했다. 세계건축상 건축가특별상을 받은 IK 본사 사옥과 동훈 힐마루 CC,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건축 부문 본상을 수상한 사랑빚는교회와 백양사 영혼의 힐링하우스 등 많은 건축을 통해 자연 친화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의 미를 조화롭게 구현하는 건축가로 익히 알려졌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건축 하나하나에 그만의 통찰력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그 통찰력은 오랜 시간 건축가 내면의 지적 충돌이 빚어낸 결과물이자, 수많은 건축주와 충분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완성한 산물이기도 하다. 제35회 세계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전남 함평에 위치한 최진석 철학자의 공간 ‘호접몽가’는 그런 측면에서 윤경식 건축가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여서 힘쓰다
최진석 철학자는 새로운 철학을 창조하고 인문학을 고양시키고자 낙향과 함께 새로운 모임을 위한 장소를 구상했다. 윤경식 건축가는 위대한 철학자 노자의 철학,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 오래오래 계속됨을 이르는 ‘천장지구(天長地久)’에서 영감을 받아 바닥과 벽의 색상, 질감과 조명을 결정했다. 현재 이곳은 강의와 세미나, 문화 예술 공연과 사교 모임 등을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우주와의 연결
종이는 두께 있음과 두께 없음을 매개하는 경계에 있는 물성을 상징하는 매체. 노자의 사상에 따르면 이 세계는 두 대립 면이 상호 의존하며 존재하기에 인간 또한 그 양면을 다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종이라는 물성이 지닌 경계성은 굉장히 도가적인 것이다. 또 반복적으로 놓은 종이 기둥과 그 사이로 스며드는 은은한 빛은 ‘우주는 기로 연결되어 있다’는 도가 철학의 세계관을 표현한다.

철학자의 꿈과 사명
철학자 최진석을 처음 알게 된 건 2016년 여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그는 2015년 ‘21세기 창의적 미래형 인재 양성소’를 목표로 북촌에 설립된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을 뜻하는 건명원(建明苑)에서 원장으로도 활동하던 중이었다. 건명원은 두양문화재단의 오정택 이사장이 ‘돈을 가치 있게 쓸 방법’을 고민하던 중 교육에서 그 해답을 찾고 사재 100억 원을 들여 설립한 인문·과학·예술 혁신학교다. 최진석 철학자는 당시 그곳에서 주경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 김대식 카이스트 전자 및 전기공학과 교수, 김개천 국민대학교 공간디자인학과 교수 등과 함께 학생을 선발해 <도덕경>부터 라틴어, 근대 일본과 동아시아의 역사, 정치와 과학 수업 등을 통해 문제의식을 제시하며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썼다. 그는 대학에서도, 건명원에서도 늘 학생과 소통하는 것을 즐겼고, 문제의식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가 바로 다음 해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은 자못 놀라웠다. 젊은 인재와의 만남을 늘 기다린 그였고, 더구나 은퇴까지 6~7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서강대학교에서 그의 연구와 업적을 높이 평가해 명예교수직을 제안했지만 기존처럼 매일같이 강단에서 학생을 마주하던 생활과는 사뭇 다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가 고향인 함평 대동면 향교리에 부모님이 살던 고향집을 새로 단장하고, 마당 부지에 ‘새말새몸짓기본학교’를 위한 강의동 호접몽가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학교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꿈꾸는 인재 교육을 하는 것. 그보다 더 최진석다운 결정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호접몽가 건축의 시발점인 새말새몸짓기본학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돌아보자’는 최진적 철학자의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그에 따르면, 창의성은 인간의 가장 높은 단계에서 발현되는 능력인 동시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 “사람은 누구나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중무장한 채 태어납니다.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과 주변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궁금증과 호기심은 그때 아주 큰 역할을 하죠. 그런데 세상과 익숙해질수록 그것이 줄어들어요. 창의성도 함께 줄죠. 태어날 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이면서 탁월한 그 능력이 유지되지 못하는 겁니다.” 교육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알려주는 데 집중하는 교육’이라는 것이 문제. 그런 교육에 아이들은 점점 수동적이 되고, 지식을 소유하는 것에 그치게 될뿐더러 더 나아가 알고자 하는 욕구, 알아가는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알고자 하는 욕구’의 범주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기 때문에 결국 나답게 사는 법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인정받는 예술 작품을 보면 그 안에 예술가가 주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면 모든 인간은 탁월해질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 인간의 기본 능력인 궁금증, 호기심과 같은 ‘생각의 엔진’이 꺼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학교 이름을 새말새몸짓기본학교라고 했어요. 15세부터 49세까지가 대상이고, 지금은 28명의 학생이 있는데 서울에서 60%, 인천과 부산, 광주, 진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옵니다.” 학교 설립을 준비하면서 그가 가장 정성을 들인 부분은 교육 공간이다. 건명원 오픈 때도 그는 오정택 이사장에게 “강의실은 한옥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옥의 남다른 위용이 학생들의 마음가짐을 특별히 해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년간 인재를 배출한 그는 한옥의 위엄, 그 가치를 넘어서는 ‘공간의 힘’을 믿게 됐다. “건명원의 성공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수준 높은 교수진, 의지에 불타는 학생, 좋은 커리큘럼, 이사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다른 학교에도 있는 거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됐죠. 건명원의 성공이 한옥, 그 공간이 주는 힘에서 왔다는 것을. 기존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창조할 수 있을까요? 좋은 공간, 좋은 건축은 특히 교육에 있어 막대한 배후의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 최진석과 건축가 윤경식의 호접몽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건축가 윤경식
“건축물을 보고 ‘멋있다’고 말하는 것은 건축을 조형으로, 형태로, 미술이나 예술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겁니다. 매우 위험한 시각이죠. 건축은 철학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사진 제공 (주) 한국건축
깨어 건너가기
대문에서 호접몽가로 들어가는 길목은 최진석 교수가 특히 좋아하는 공간이다. 길목을 건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 인간은 멈추는 존재가 아니라 건너가는 존재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과거에 멈추지 말고 다음을 도모하고 꿈꾸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디딤돌을 불규칙한 간격으로 배치한 이유는 다음에 디딜 돌을 미리 생각해 올바르게 건너라는 의도다. 이를 통해 ‘깨어 있음’을 강조한다. 정면의 구멍 뚫린 담장은 유와 무가 상호 의존적으로 공존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위쪽 영국 BBC방송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장 톱 10’에 이름을 올린 해슬리 나인브릿지의 클럽하우스. 국내 골프 클럽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한 곳이다.
아래쪽 제35회 세계건축상 대상 수상작인 삼각산 도선사의 위패 석탑 ‘소울림’. 영구 위패탑 8500기를 설치한 건축물로 한국 불교 추모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우리 집, 미래를 위한 집
“최진석 교수와는 평소에 잘 알던 사이였습니다. 하루는 연락을 해서 ‘고향집에 빈 땅이 있는데, 그곳에 도가 사상이 구현된 건축물을 지어주세요’라는 거예요. 저는 제안을 받으면 우선 부지에 가봅니다. 둘러보고 1시간 안에 땅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면 프로젝트를 맡지 않아요. 그런데 그 땅은 보자마자 느낌이 왔어요.” 윤경식 건축가과 최진석 철학자는 평소에도 서로 작품과 글을 공유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던 사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사유, 철학 등을 일찌감치 교류해왔기에 건축 프로젝트는 크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최진석 철학자는 평소 윤경식 건축가가 건축을 통해 보여준 ‘고유성’을 존경해온 터. “불교나 도교를 중심으로 한 사유의 흐름이 저와 비슷하기도 했고, 윤경식 건축가의 ‘고유함을 추구하는 태도’가 좋았어요. 정해진 생각대로 하지 않으려는 그 의도적인 성질이 좋았죠. 예술가로서 굉장히 훌륭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계획하고 완공하기까지 5~6개월 동안 둘 사이에는 조금의 잡음도 없었다. 최진석 철학자는 그것을 둘 사이의 퀄리티 높은 대화 덕분이라고 말한다. “퀄리티라고 하면 재수 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철학이 일치하는 대화를 말합니다. ‘사회를 한 단계 성장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우리 둘의 생각이 같았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날갯짓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감동한 윤경식 건축가는 이 프로젝트의 주요 키워드로 장자 철학의 정수인 ‘호접몽’(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과 철학자 최진석의 ‘새말새몸짓’ 운동을 선정했다. 그것은 건축 공간 곳곳에서 도가 철학의 한 방향으로, 또는 우리의 호기심과 생각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드러난다. 우선 호접몽가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바로 건물이 들어선 방향. 대문은 남쪽인데 건물은 서쪽으로 앉아 있다. 더구나 윤경식 건축가는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건물을 도로와 직각으로 배치했다. “건물 동쪽은 곡선으로 처리해 대문인 남쪽에서 보면 건물의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죠. 건물의 어떤 지점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건물에서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인간이 만들어낸 대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건물의 동쪽 벽에 설치한 종이 기둥에서도 반복적 무한 중첩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 보통 ‘벽’은 하나의 덩어리다. 모더니즘과 유가 철학에서는 이처럼 세계를 단일한 실체로 다루지만 도가 철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를 분열된 다양한 것의 연합으로 본다. 고요한 물성을 지닌 종이 기둥을 중첩하는 방식으로 동쪽 벽을 완성했다. “외부에는 각각의 종이 기둥에 기둥을 위한 스포트라이트를 설치해 독립된 인간의 자유를 강조했어요. 기둥의 수직성은 사유의 상승감을 나타냅니다.” 윤경식 건축가의 말이다.
호접몽가와 이웃집을 구분하는 동쪽 담장도 수많은 구멍이 뚫린 형태로 설계했다. 이웃집의 돌담과 담쟁이덩굴이 그 구멍으로 보이는데, 수많은 인간의 이야기가 드나드는 고요한 담장은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나타낸다. 있고 없음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뜻으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상대적 관점에서 볼 것을 제안하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최진석 철학자가 평생 천착한 장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호접몽의 나비는 함평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윤경식 건축가는 나비처럼 가벼운 형태를 띤 지붕의 파빌리온을 나비의 한쪽 날개를 형상화해 경계의 무한 중첩을 이룬 종이 기둥과 함께 조화로운 건축적 미학을 만들어냈다. 철학자가 나비가 되어 꾸는 꿈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더 자비롭고 생기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은 호접몽가. 생각을 시작하는 공간, 생각이 시작되는 호접몽가를 방문하게 된다면, “멋있다”는 감탄 대신 건물의 동서남북을 조용히 둘러보며 철학자와 건축가의 사유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우리의 내면에서도 지적 충돌이 일어난다면 더욱 좋겠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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