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미술의 창립자, 야니스 쿠넬리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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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30

가난한 미술의 창립자, 야니스 쿠넬리스

테이트가 사랑한 작가, 야니스 쿠넬리스의 '가난한 미술'을 그리는 삶.

사진 안지섭





야니스 쿠넬리스는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 아르테포베라를 대표하는 작가다. 사진 안지섭

야니스 쿠넬리스
이탈리아 로마를 기반으로 활동한 야니스 쿠넬리스는 1936년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아르테포베라를 논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그는 살아생전 테이트가 사랑하는 작가로 유명했으며, 2017년 타계 당시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국가 차원의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는 1960~1970년대에 이탈리아 북부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전위예술 운동을 지칭한다. 직역하면 ‘가난한 예술’이라는 뜻으로,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가 1967년 기획한 전시 에서 기인했다. 첼란트가 이 전시에서 주목한 작가들은 예술의 상업화, 물신화,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며 대중의 삶 가까이에서 예술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흔히 볼 수 있는 재료와 주변 환경을 활용하며 관람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당시 이러한 경향을 주도한 작가 중 한 명이 야니스 쿠넬리스였다.

그리스 출신인 쿠넬리스는 이탈리아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캔버스에 글자, 화살표, 숫자를 옮기며 언어를 해체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가 대중과 소통하며 그들의 삶과 마주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캔버스라는 고정 틀에서 벗어나는 것. 그는 차츰 일몰, 장미처럼 자연을 주제로 다루기 시작했고 첼란트와 함께한 1967년 전시에서는 앵무새, 흙, 선인장, 목화 등으로 전시장에 밭을 만들었다. 또 1969년에는 갤러리에 말 열두 마리를 3일 동안 묶어둔, 그 유명한 작품 ‘Untitled(12 Horses)’를 선보이며 삶의 공간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쿠넬리스는 석탄, 철근, 양모, 불, 전등, 커피 가루, 헝겊, 삼베, 나뭇가지, 연기처럼 기존에 다루지 않던 재료를 꾸준히 소재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시 공간을 삶의 한 장면을 드러내는 일종의 ‘무대’로 만들었다. 이렇듯 쿠넬리스에게 예술 작품은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는 ‘연극 무대’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람객이었다. 삶은 매 순간 유일하고, 따라서 모든 순간이 특별하다. 그것은 돈의 유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그러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예술이 의미가 있으려면 일정한 형식에 얽매여선 안 되는데, 예술 작품을 유일무이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관람객으로 작품이라는 무대 위에 관람객이 함께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그의 작품 제목 대부분이 ‘무제’인 점과 첼란트가 아르테포베라라는 개념을 연극 용어에서 빌려왔다는 점도 이러한 맥락을 뒷받침한다.





Exhibition View of Monnaie de Paris in 2016. Photo by Manolis Baboussis





Exhibition View of Monnaie de Paris in 2016. Photo by Manolis Baboussis





Untitled(12 Horses), 1969, Galleria L’Attico, Rome. Courtesy of Wooson Gallery ⓒ Jannis Kounellis

쿠넬리스는 2013년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일간지 인터뷰에서 그는 “아르테포베라가 액자에 갇힌 그림에서 탈출할 계기를 주었듯, 틀에 갇힌 전시 개념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돈을 좇기보다 삶의 본질을 생각하는 예술에 매진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난 시장을 믿지 않는다. 말과 옷, 석탄처럼 인간적인 가치, 삶에서 나온 것을 믿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빈곤함이다. 경제적인 면이든 아니든 인간의 삶 속에서 빈곤함을 볼 수 있는 예민함과 섬세함,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현대미술은 일상의 사소한 면면이나 평범한 물건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간혹 ‘이런 것도 작품인가’ 하는 비아냥을 불러일으키는 예도 있다. 뒤샹의 ‘샘’에도 여전히 그런 반응이 따라붙으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사실 뒤샹이 이 작품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은 삶 어디서나 예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긍정하는 인간(예술가)의 관점과 태도였다. 말이 쉽지, 한 세기를 앞서간 뒤샹의 시도는 보통 배짱이 아니고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뒤샹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를 낸 많은 예술가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일상 속 예술을 누리고 있다. 쿠넬리스는 획일화된 자본의 가치를 뒤로하고 빈곤함을 선택하는 용기를 냈다. 캔버스 너머의 불확정적 가능성을 긍정하는 용기를 냈다. 거기서 어떤 상황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인간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꺼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면, 그 아름다움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도록 나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하고 마주하게 하는 힘을 준다. 삶의 단면이 예술이 된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일 것이다.

쿠넬리스는 첼란트보다 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19년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프라다 재단이 운영하는 베니스 시내 전시 공간에서는 그의 사후 첫 회고전 가 열렸다. 그 전시 공간을 한 예술가의 삶의 궤적이 가득 채웠다. 쿠넬리스는 평생 자신이 화가라는 것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그가 말한 화가란 그리스어로 ‘삶을 그리는 자(someone who draws life)’를 뜻한다는 점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박유리(국립현대미술관 언론 홍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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