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는 작가, 정희승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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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7

사진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는 작가, 정희승

<올해의 작가상 2020>전을 통해 만난 사진 작가 정희승.

Reflector,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208×156 cm, 2010.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Baton









<올해의 미술상 2020>전에 참여한 정희승 작가.

정희승
1974년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런던 칼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08년 갤러리와에서 개최한 국내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두산갤러리, 아트선재센터, PKM갤러리, 고은사진미술관 등에서 그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였다. 2011년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2012년 다음작가상을 받은 그녀는 2020년 대한민국 대표 미술상인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 4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올해의 작가상 2020>전에 다녀왔다. 김민애, 이슬기, 정윤석, 정희승은 각자 조각과 설치, 사진, 영상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끌린 건 정희승의 작품이다. 미술계에 반쯤 발을 걸친 입장에서 예술가의 일과 삶은 언제나 좀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정희승은 그 지점을 제대로 짚어냈다. 동료 예술가의 초상, 그들과 연관된 혹은 연관되지 않은 정물 사진, 대화를 나눈 후 추출한 문구를 적절히 조합해 삶만큼이나 부조리하고 무상한 예술계를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보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고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그래서 물었고, 정희승은 답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추는 춤’의 일부인 ‘Inertia’(2020).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Baton

<올해의 작가상 2020>전에서 선보인 사진 연작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추는 춤’과 타이포그래피 시 형태의 ‘알코올중독자와 천사들을 위한 시’는 형식적으로 두 파트지만, 내용상 서로 연결된 하나의 설치 작업입니다. 이를 위해 작가 24인을 촬영하고 인터뷰했다 들었는데, 작가를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대화 과정이 중요한 작업이다 보니 제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작가를 만났어요. 예컨대 서로 잘 아는 권오상 작가와는 ‘조각의 무게’라는 작업적 주제로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반대로 배윤환 작가는 친분은 없지만 그의 ‘파쇄기’라는 영상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아 만남을 제안했죠. 영상 속 한 인물이 사직서를 써놓고 낼까 말까 망설이다 파쇄해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저 잊힐 뿐인 작가가 어떻게 ‘퇴직’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만나 작업했지만, 각각의 사진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평소 작가들의 얼굴이 궁금했던 제겐 아쉽게 느껴지더라고요. 사진 제목으로 이름을 달아놓은 건 이정식 작가 한 명뿐이에요.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작업하는데, 지난해 10월에 열린 개인전 제목도 ‘이정식’이었죠. 그래서 사진에 이름을 타이틀로 붙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작가들의 초상을 이름으로 구분 짓지 않은 건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전시장에 ‘Row, Row, Row Your Boat’라는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전시에 음악적 요소를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궁금합니다. 제 제자인 도찬수라는 인물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노를 저어라’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레 동명의 노래인 ‘Row, Row, Row Your Boat’가 연상되더군요. 이 노래는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지만, ‘인생은 한낱 꿈일 뿐(Life is but a dream)’이라는 가사가 한편으로는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원 밖에서는 원 안으로 들어가길 원하지만 막상 그게 현실이 됐을 땐 별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왜 그 이야기를 지금 이 시점에 꺼낼 수밖에 없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2018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는 제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 작품입니다. 그 작품을 위해 당시 5·18 사적지인 옛 국군광주병원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여러모로 충격적이었어요. 그 작업을 하기 전에는 광주에 가본 적이 없고, 5·18 민주화운동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과거의 공포나 트라우마가 너무 쉽게 떠오르더군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이걸 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등을 생각하며 괴롭게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과는 무관하게 전시 오프닝 날이 밝자 VIP와 프레스들이 와서 각자 비즈니스를 하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경험이 저에겐 삶과 예술에 대해 질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올해의 미술상 2020>전, 정희승 작가의 전시 공간.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 홍철기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추는 춤’을 구성하는 ‘Row Your Boat’(2020).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Baton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전시였습니다. 한편으론 그런 전시를 구상한 작업의 출발점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199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고, 2007년 런던 칼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 사진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사진으로 궤도를 튼 이유가 따로 있나요? 어릴 적 화가가 꿈이었어요. 예고를 나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죠. 한데 어느 순간부터 빈 캔버스를 채우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내가 진짜 이 일을 하고 싶은 건가’ 자문하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레퍼런스로 사진을 찍는 게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에는 자취방을 암실로 개조할 정도로 사진에 푹 빠졌지만,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사진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엄두가 안 났죠. 대학 졸업 후 다른 일을 하다 결혼하고, 남편과 런던 유학을 떠날 계획을 세웠어요. 사진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생긴 거죠.

런던에서의 경험이 작가님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이론 수업 위주의 커리큘럼이 좋았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주어졌거든요. 또 당시 메인스트림이던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작품에 담긴 풍경과 사물의 물성이 큰 임팩트로 다가오더군요. 초기 작품 중에는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꽤 있습니다.

뒤셀도르프 사진학파라 하면 베허 부부나 칸디다 회퍼의 작품 같은, 주관성을 배제한 건물 사진이 먼저 떠오릅니다. 반면 유학 후 2008년 국내 첫 개인전 <페르소나>에서 선보인 작품은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얼굴에서 미묘한 감정선을 포착한 ‘Persona’ 시리즈입니다. 예전에는 사진에 감정이 실리면 흐름에 뒤처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요. 근데 저는 사람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 게 좋았거든요. ‘왜 감정을 다루면 안 되는 거지?’라는 의문에서 비롯한 반발심 같은 작업으로도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과거의 배움과 무관한 작품은 아니에요. 감정이란 소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과학자’의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거든요. ‘사진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나?’, ‘표면을 촬영한 것에 불과한 사진을 보고 사람들은 어째서 감정이입을 하나?’ 같은 사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서 비롯한 작업이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여전히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중입니다.

작가님은 2010년대 초반 ‘Still Life’ 시리즈를 기점으로 정물 사진 작업을 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사물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현실적 이유가 컸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모델을 섭외하고 약속을 잡아 촬영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또 인물 사진 작업을 지속하다 보니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숙제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새롭게 사진을 익힌다는 마음으로 주변 사물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그랬으니 2~3년간 일종의 수련 과정을 거친 셈이죠.

‘Still Life’를 비롯해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 ‘사라짐’ 같은 정물 사진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분명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인데 낯설게 느껴져요. 의도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걸 겁니다. 요즘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강박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한 사물을 며칠간 수백 장씩 느린 호흡으로 촬영했어요. 그 과정에서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하나하나 벗겨집니다. 어떤 단어를 반복해 말하다 보면 그 의미는 사라지고 소리만 남는 것처럼요.

출판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도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2014년부터 박연주 디자이너와 함께 헤적프레스라는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신다고요. 2008년 <페르소나>전 리플릿과 포스터 디자인 건으로 박연주 디자이너를 처음 만났습니다. 헤적프레스에서 박연주 디자이너는 책 디자인을 담당하고, 저는 기획자 역할을 맡습니다. 작가를 섭외하거나,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기도 하죠.

그간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나요? 플로트(Float) 시리즈는 작가들과 함께하는 출판 프로젝트예요. 전지를 네 번 접으면 A4 사이즈로 16페이지가 나오는데, 종이 한 장으로 책 한 권을 만드는 겁니다. 초대된 작가는 이 인쇄물 형식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죠. 책을 출간하면 다양한 형식의 행사를 진행해요. 예컨대 로와정은 더북소사이어티에서 ‘리딩클럽’을 열었고, 후니다 킴은 우정국에서 사운드 퍼포먼스 쇼케이스를 진행했습니다.

헤적프레스 기획자 정희승의 활동은 작가 정희승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플로트 시리즈는 작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작가들과 전시 오프닝에서 만나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는 일은 많아도, 긴밀히 대화를 나누며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거든요. 그 경험은 <올해의 작가상 2020>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0>전 이후 작가님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을 사진집으로 만들어보려 합니다. 책 편집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완성할 때쯤에는 작업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거든요. 또 최근에는 작업의 형식적인 부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미지 대부분이 SNS에서 가볍게 소비되는 반면, 저는 액자 속에 담기는 ‘무거운’ 예술 사진을 만들잖아요. 작품의 무게감을 덜어내기 위해 영상의 형식을 가져오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는 등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황재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서승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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