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의 중심에 선 에이전트 김나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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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6

유럽 축구의 중심에 선 에이전트 김나나

백인 남성 스포츠, 유럽 축구 한복판을 휘젓는 축구 에이전트 김나나. 그녀의 수식어 앞에 '레이디'는 필요 없다.

서점을 돌아다니던 중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하이힐로 축구공을 멈춰 세운 강렬한 표지, 제목은 <나는 런던의 에이전트 레이디>. 고백하자면 ‘에이전트’와 ‘레이디’라는 단어의 조합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영화광인 에디터에게 ‘에이전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젊은 시절 톰 크루즈가 연기한 제리 맥과이어였으니까. 이 책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로 꽉 차 있다. 슈퍼 리치가 축구 구단을 사는 이유부터 지난 2019년 떠들썩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노쇼 사건의 원인, 축구 에이전트가 일하는 방식까지!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C&P 스포츠 대표 김나나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김나나는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축구 에이전트다. 평소 런던과 마드리드 등 유명 축구 구단의 연고지를 동분서주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었다. “최근 화상회의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견고히 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쩐의 전쟁’ 이미지가 강한 축구계에선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숫자 이야기부터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리셉션 등 캐주얼한 자리에서 함께 일할 사람이 어떤 축구 철학을 지녔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일이 시작됩니다.”
20대 중반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가 브랜드 마케팅 석사과정을 마친 그녀는 유럽 브랜드의 글로벌 마켓 진출과 확장을 돕는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이런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낸 건 중동의 석유 재벌 셰이크 만수르가 설립한 시티 풋볼 그룹. 현재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신흥 강호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를 비롯해 미국, 일본, 호주 등 10개 팀을 보유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맨시티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죠. 하지만 구단주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공격적 투자를 감행했고, 여기엔 해외 구단 인수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구단 인수와 리빌딩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가 필요해지면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맨시티와의 일이 매끄럽게 풀리며 2013년 회사를 세운 그녀는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토트넘, 리버풀, AC밀란 등 명문 구단의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축구 에이전트가 선수 에이전트로만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축구계의 모든 상업 계약 협상에서 일방을 대리하는 대리인으로서 넓은 범위의 일을 담당한다. 특히 유럽 축구의 상품 가치가 높아지면서 구단들은 매년 수백 건의 상업 계약을 체결해 수익을 올리고, 에이전트는 이들의 에이전트가 되어 계약 전반을 대리한다. 구단 인수 합병과 선수 이적 협상, 스폰서십, 중계권, 머천다이즈 라이선스, 초상권 등 다양한 상업 계약 중 김나나는 해외 협상을 주로 담당한다. 대표적으로 2015년 넥센타이어와 맨시티의 스폰서십 계약이 김나나의 작품. 그녀가 백인 남성의 이너 서클이 공고한 유럽 축구계에서 지속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많은 에이전트가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싶은 욕심에 계약상 불안 요소를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솔직하게 리스크를 짚어주는 편이에요. 그렇게 해서 접게 되는 협상도 있지만, 에이전트의 거짓말에 수없이 당한 구단이 이런 면을 좋게 평가해주지 않나 싶습니다.”





위쪽 경기장을 처음 찾은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하는 ‘마이 홈 데뷔’ 이벤트.
아래쪽 유소년 선수 육성은 스포츠적인 측면보다 교육 관점에서 접근해야 바람직하다.

구단에서 김나나를 찾는 이유는 또 있다. 매년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축구계는 시스템적으로 당장 실적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김나나는 단기 성과와 동시에 중·장기적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구단 입장에선 당장 돈이 되는 20~30대를 겨냥해 마케팅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축구 팬이 어떻게 탄생하나요? 어릴 적부터 축구에 대한 좋은 기억을 지닌 아이들이 성장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키즈 마케팅에 공을 들여야 하는 거고요.” 실제로 그녀는 토트넘과 금호타이어의 파트너십 계약 체결 시 경기장에 처음 온 아이들을 위해 양측 로고가 들어간 깃발을 앞세우고 구단 마스코트와 경기 전 필드를 뛰어보는 ‘마이 홈 데뷔(My Home Debut)’라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어느 업계보다 성과를 중시하지만, 기본적으로 축구계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다른 업계에서 축구계로 넘어오는 경우는 제법 있지만, 반대 케이스는 드물기도 하고요. 모두가 낭만을 마음에 품고 하나의 목표를 항해 달려가기에 축구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김나나가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는 키워드는 ‘유소년’이다. “10년 넘게 축구계를 양분해온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나이가 들었고, 그 뒤를 이을 좋은 유소년 선수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이 업계의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담당하는 프로젝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맨시티와 함께 하는 아카데미 사업입니다. ‘시티 풋볼 서비스’라는 이름 아래 축구 서비스를 판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던 맨시티는 해당 부서를 ‘시티 풋볼 에듀케이션’으로 개명했어요. 아카데미 사업을 스포츠적인 측면보다 교육 관점에서 먼저 접근하는 전환점을 맞이한 겁니다. 개인적으로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김나나가 추진하는 레알 마드리드 한국 아카데미에서도 이러한 소신을 엿볼 수 있다. 경북 문경의 글로벌선진학교에 문을 여는 아카데미에는 레알 마드리드 글로벌 아카데미에서 유소년 선수를 가르친 UEFA 자격증 보유 외국인 코치가 상주한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있지만, 빠르면 2학기부터 정상 운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에요. 그런 만큼 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되고요. 우리나라는 손흥민 같은 훌륭한 선수를 배출하고 있지만, 유럽 리그에선 몇몇 선수로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을 가늠하진 않아요. 유감스럽지만, 한국은 아직 유럽 구단들이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들르는 나라가 아닙니다. 어디 있을지 모르는 유망주를 찾아 헤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레알 마드리드 한국 아카데미는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유망주가 모인 아카데미가 있다면 구단에서 먼저 한국을 찾을 겁니다. 선수들의 꿈인 유럽 리그 진출의 정형화된 루트를 정착시킬 수 있고요. 다만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단발성에 그칠 위험이 있는 기업이나 시도 예산에 의존하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가진 학교 재단과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감성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김나나 대표. 그녀가 한국인으로서 도전하고 싶은 일은 스케일이 꽤 크다. “축구 시장에서 아시아권의 비중이 매우 커졌고, 실제로 아시아 기업이 유럽 리그와 구단의 중요한 스폰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요 기업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요.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배 구조 측면에서 한국 기업이 해외 구단을 ‘소유’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은 깨끗한 경제 체계를 갖춘 데다 국가 이미지도 좋은 편이죠. 한국 자본과 기업에 대해 거부감이 없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거기에 구단이 신뢰하고 인수 작업을 해본 에이전트가 일을 주도한다면요? 그들의 대답은 ‘Why Not?’입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사진 제공 C&P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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