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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6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세계

20세기 키 아티스트로 꼽히는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이야기

로버트 라우션버그 재단의 줄리아 블로트.

20세기 예술을 이끈 키 아티스트 중에서도 단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미국 작가 로버트 라우션버그. 미술사를 공부했다면, 아니 20세기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르지 않을 것. 로버트 라우션버그는 평생에 걸쳐 작업에 몰두하며 절대 현실에 안주하지 않은 작가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탄탄히 구축해 이미 명성을 쌓았음에도 꾸준히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품에 새로운 기술과 소재를 도입하고, 많은 이들과 협업을 거치며 과감하게 실험했다. 그가 추상표현주의 이후 전후 미술 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다. 세상을 떠난 작가를 대신해 로버트 라우션버그 재단의 시니어 큐레토리얼 디렉터 줄리아 블로트(Julia Blaut)와 그의 생애와 작품 활동을 논했다.

로버트 라우션버그
1925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어나 2008년에 세상을 떠났다. 미국 캔자스시티 아트 인스티튜트(Kansas City Art Institute)와 프랑스 파리 쥘리앙 아카데미(Académie Julian),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블랙 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에서 수학했고 바우하우스 교사로 재직한 화가 요제프 알버스(Josef Albers)를 사사했다.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 대부분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11월 2일부터 12월 23일까지 그의 개인전 <코퍼헤드 1985/1989>를 연다.





Photo by Ellen Dubin

모든 시리즈가 대표작이나 마찬가지인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작품 세계를 어디서부터 파고들어야 할까? 그가 직접 만든 용어이자 작품 시리즈인 ‘Combines’로 회화와 조각, 핸드메이드와 레디메이드, 예술가의 이미지와 기계가 재생산한 이미지 사이를 넘나들었고, 스스로 ‘거리에서 얻은 선물(gifts from the street)’이라 명명하며 평면 캔버스에 일상 오브제를 얹은 작업 형식 또한 그의 실험정신이 낳은 결과물이다.
60여 년 동안 예술의 경계를 무한대로 확장하며 많은 후대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라우션버그의 다양한 작품 외에도 역사에 그의 이름이 남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는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안무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과 깊이 교류했는데, 이들의 교류는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남긴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함께한 ‘Theatre Piece No.1’ (1952)은 시·음악·무용·영화를 결합한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로, 현대미술사의 맥락에서 말하는 ‘해프닝’의 첫 번째 작품으로 거론될 정도로 큰 의의를 지닌다. 1953년 말까지 라우션버그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키워드인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를 작품 재료로 끌어와 앞서 언급한 기념비적 작품 ‘Combines’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관람자와 작품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냈다. 또한 1962년에는 신문, 잡지, 직접 찍은 사진을 활용해 실크스크린 기법에 회화적 붓질을 가미했다. 그뿐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며 연주자, 장인, 엔지니어, 판화 제작자 등과 협업을 시도하고 조명, 무대와 의상 디자인은 물론 퍼포먼스 ‘Pelican’의 안무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엔지니어 아티스트와 함께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를 공동 설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재료의 물질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며 버려진 상자로 벽 부조 작품을 제작하고 다양한 인쇄 기술을 실험한다. 예술가와 창작 커뮤니티의 부흥을 위해서도 힘썼는데, 비영리단체 체인지(Change, Inc.)를 설립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술가를 지원했다.
평생에 걸쳐 예술 전반의 발전을 위해 힘쓴 작가는 비록 2008년에 작고했지만 미국의 로버트 라우션버그 재단이 여전히 그의 작품을 연구, 보존하고 있다. 이어서 작가의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재단의 시니어 큐레토리얼 디렉터 줄리아 블로트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1985년 산티아고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라우션버그 해외문화교류전>에서 로버트 라우션버그.
Courtesy of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Paris, Salzburg, Seoul Photo by Unknown Author © The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Courtesy of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Paris, Salzburg, Seoul Photo by Ronald Amstutz © The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Copperhead-Bite IV/ROCI CHILE, Silkscreen Ink, Acrylic and Tarnish on Copper, 245.9×123.8cm, 1985





Lotus III, Inkjet Pigment Transfer on Polylaminate, 74.9×101.6cm, 2007,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먼저 <아트나우> 독자에게 재단의 주요 업무와 역할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뛰어난 공감 능력과 사명감을 지닌 라우션버그는 재치 있고 때로는 반항적인 예술을 선보였어요.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재단은 세계 곳곳에서 연구, 전시 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생전 작품을 모아 카탈로그 레조네를 제작하는 아트 프로그램, 미국 플로리다주 캡티바에 있는 작가의 생전 거주지이자 스튜디오에 마련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꾸준히 규모를 확장하는 자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합니다. 라우션버그가 남긴 유산을 확장해 그의 새롭고 실험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을 기리고자 노력하죠.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작가인 만큼 이번 타데우스 로팍 서울의 개인전이 참 반갑습니다.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요? 그동안 서울에서는 라우션버그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별로 없었죠. 현재 미술 시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도시로 부상한 서울에서 전시하는 자리인 만큼 재단도 긴밀하게 협업했어요. 특히 작가의 대표적 스타일을 드러내는 작품뿐 아니라 조금 생소하지만 개성 넘치는 작품도 함께 준비했죠.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거든요. 무엇보다 ‘Copperhead Bites’ 시리즈를 함께 전시하는 건 산티아고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Santiago)에서 열린 전(1985) 이후 거의 40년 만이에요. ‘Copperhead’(1989) 시리즈 일부와 작가가 칠레에서 찍은 사진도 함께 전시해요. 회화 작업에 쓴 실크스크린의 원본 이미지가 작가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거예요.

‘Copperhead’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작가가 라우션버그 해외 문화 교류(Rauschenberg Overseas Culture Interchange, ROCI) 프로젝트(ROCI는 그의 애완 거북이 이름 로키(Rocky)와 발음이 같다)를 위해 칠레를 방문했을 때 구상한 시리즈예요. 그의 신념과도 같은 예술의 사회적 순기능, 인권에 대한 헌신, 표현의 자유를 위한 프로젝트로 1984년부터 1991년 사이에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를 방문했어요. 당시 칠레 구리 광산과 주물 공장에서 칠레 예술가 베니토 로호(Benito Rojo)에게 구리를 이용한 변색 방법을 배웠어요. 이때 찍은 사진을 활용해 구리판에 아크릴물감과 실크스크린 잉크로 만든 작품이에요.

현대미술 신에서 중요한 예술가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미술사적 의의를 설명해주신다면요? 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소수의 미국인 예술가 중 한 명이자 최연소 수상자예요. 세계 무대에서 미국 미술의 중요성을 확고히 하는 데 공헌했죠. 다양한 주제, 스타일, 재료, 기법을 쓰면서 추상표현주의 이후 등장한 현대미술 사조의 발달에 선구적 역할을 했지만 특정 사조로 규정할 수 없는 독립적 스타일을 구축했죠.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회화란 예술과 삶 모두에 연결된다”라는 가치관을 정립, 당시 예술의 통념인 모더니즘 미학에 도전장을 내밀었어요. 현실 오브제를 추상회화의 영역으로 들여온 ‘Combines’ 시리즈로 회화와 조각의 매체론적 구분에 맞섰고요. 이전 세대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제스처가 듬뿍 담긴 회화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예술에 일상과 대중매체 이미지를 끌어온 팝아트 작가로서 행보의 시작점이 된 작품을 선보였죠. 라우션버그 작품 세계의 확장성은 여러 협업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직물과 판지 같은 비전통적 재료를 끊임없이 수용하고 후대 예술가의 실험정신을 위한 본보기가 됐죠.

라우션버그는 항상 앞서나간 예술가였습니다. 많이 알려진 것 외에 생전 활동과 영감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해외여행 중이든 작업실에서든 온종일 작업에 몰두했어요. 그가 “매일 마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누 접시나 거울, 콜라병 같은 것을 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라고 말한 것처럼 가장 평범한 일상에서 영감을 얻었죠. 작품 활동 외에도 인권과 환경보호 운동에 헌신했는데, 1970년 지정한 ‘지구의 날(Earth Day)’ 행사 포스터를 만드는 등 그가 믿은 사회적 대의의 대중적 인식을 제고하고 기금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어요. 동료 예술가의 복지를 위해 힘쓴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 재단에선 ‘예술가 긴급 보조금’ 형태로 팬데믹 기간에 어려움을 겪은 창작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Soar(Runt), Inkjet Pigment Transfer on Polylaminate, 154.9×186.7cm, 2007, Private collection ©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Untitled, 219.7×94×66.7cm, ca. 1954/1958,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 The Panza Collection ©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작가의 작품에서 콜라주를 빼놓을 수 없죠. 콜라주와 아상블라주는 그가 현실 세계의 요소를 예술로 끌어오는 방법이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였던 도로시 밀러(Dorothy Miller)가 출판한 전시 도록 [Sixteen Americans](1959)에 나오는 말을 인용할게요. “회화는 항상 구도나 색 등을 부정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 이때 회화는 기념품이나 진열된 상품 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 혹은 ‘필연’처럼 보인다. 회화는 예술과 삶에 연결된다. 무엇도 억지로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이 둘 사이의 틈에서 행동하고자 한다.) 한 켤레의 양말도 나무, 못, 기름, 직물 못지않게 그림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캔버스는 결코 빈 공간이 아니다.”

대표적 실험작인 ‘Combines’ 시리즈도 궁금합니다. 작가가 직접 만든 말이죠. 1954년부터 1964년 사이에 회화와 조각의 양상을 결합한 작품을 묘사하고자 라우션버그가 고안한 용어예요. 거의 모든 매체의 경계와 의미를 파괴하는 시리즈로, 보통 벽에 걸리거나 지지대 없이 서 있어요. 일상의 사물과 이미지에 작가의 손길을 더해 회화 요소를 결합한 작품으로 평범한 일상을 예술의 맥락으로 끌어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하죠.

그럼 작가의 모든 업적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요? 그의 ‘대담함’을 담은 작품을 제일 좋아해요. 누군가의 집에 가만히 놓여 있을 것 같지 않은 작품요. 하나만 고르는 건 불가능해요. 길에서 주운 검독수리 박제를 사진에 배치한 ‘Canyon’(1959), 1960년대 이후 예술과 기술의 조합을 탐구한 (현대의 시간 기반 예술을 수십 년 앞서 내다본) 기이한 실험작, 1981년부터 1998년 사이에 탄생한 ‘The 1/4 Mile or 2 Furlong Piece’를 꼽을게요. 마지막 작품은 장장 17년 동안 제작한 190개의 회화와 조각으로 이뤄졌어요. “이 작품을 전시한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라우션버그가 ‘인터넷’을 예견한 것 같다”라는 어느 학생의 말을 인용하고 싶네요.

라우션버그에 관해 현시대가 간과하고 있거나 다시 주목할 만한 지점은요? 방법과 재료적 측면에서 보여준 라우션버그의 선견지명입니다. 현시대는 간과할지 몰라도, 현대미술가는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어요. ‘Combines’와 실크스크린 회화가 그를 대표하지만, 1970년대 이후 작품부터 마지막으로 남긴 (당시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디지털 잉크젯 프린터로 만든 회화에 이르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작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온·오프라인에서 찾을 수 있지만, 마지막으로 <아트나우> 독자에게 귀띔해줄 만한 일화가 있나요? 1980년부터 라우션버그와 함께 일한 재단의 수석 큐레이터 데이비드 화이트(David White)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2013년에 재단과 컬럼비아 대학교가 함께 개최한 ‘구술 역사 프로젝트(Oral History Projects)’에서 발췌한 일화입니다. 그가 직접 라우션버그 스튜디오의 전 동료에게 들은 내용인데, 저도 참 좋아하는 미담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네요. 라우션버그(일명 ‘밥’)가 전시를 위해 출장 중일 때, 그의 집과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스태프가 이참에 냉장고를 정리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항상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잔반을 모두 버리고 깨끗이 청소했죠. 돌아온 밥이 깨끗한 냉장고를 들여다보고는 화들짝 놀라더니 “나가서 ‘잔반’도 사고 장을 보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웃음) 옷, 음식, 예술에서 온 모든 ‘잔반’을 작업에 사용한 작가다운 사고방식이죠. 1925년에 태어나 대공황 시대에 자란 밥은 물건의 소중함과 절약 정신, 존재와 부재를 늘 염두에 두었어요. 냉장고 속 잔반으로 만든 그의 한 끼, 아니면 스토브 뒤쪽에서 늘 부글부글 끓고 있어 원하면 언제든 다른 재료를 넣어 먹을 수 있던 수프 등이 그의 작품 세계와 깊이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타데우스 로팍・로버트 라우션버그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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