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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31

별은 내 가슴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 쉴 그들을 기리며.

위쪽 사카모토 류이치는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활동가였다. Photo by Neo Sora ©Kab Inc.
아래쪽 제인 폰다 주연의 SF 영화 <바바렐라>(1968)의 미래적 의상은 파코 라반이 디자인했다.

벌써 몇 번째인가. 문화 예술계 거장의 연이은 영면 소식에 가슴이 ‘쿵’ 내려앉은 것이. 올해 들어 밤하늘의 별이 된 이들이 유독 많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아쉽고 아련하다. 혹자는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내 공감해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모두 존경하는 누군가를 보고, 듣고, 느끼며 어른으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지난 2월 패션 디자이너 파코 라반(Paco Rabanne)이 여든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파코 라반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보유한 스페인 패션 그룹 푸이그는 성명을 통해 “라반은 과감하고, 혁명적이며, 도발적 비전을 전파했다”라고 밝혔다. 정말 그렇다. 그는 발렌시아가 재봉사였던 어머니, 군인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페인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아버지가 죽은 뒤 1939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라반은 보자르 드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당시 예술계에 일어나던 다채로운 시도를 목격했다. 콘크리트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피는 속일 수 없는 법. 1966년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설립했다. 그리고 첫 번째 컬렉션 ‘새로운 현대적 재료들을 사용해 만든 입을 수 없는 의상 12벌(Twelve Unwearable Dresses in Contemporary Materials)’을 선보이며 단숨에 스타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금속과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해 파리 쿠튀르의 전통을 깨뜨리며 우주 시대 패션을 제안한 것. 그의 실험적 의상은 프랑수아즈 아르디와 브리지트 바르도 등 당대 젊은 프랑스 스타들의 선택을 받았다. 1999년 은퇴 전까지 그는 플렉시글라스, 광섬유, 고무 등을 새로운 패션 소재로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혁신으로 시작해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한 파코 라반의 대표작 르69 백처럼, 선구자의 길을 걸은 그가 패션계에 남긴 유산은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다.
따사로운 봄날 유명을 달리한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오랜 기간 사랑받은 일본인이 아닌가 싶다.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1978년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 멤버로 데뷔해 팝과 로큰롤에 기반한 진보적 전자음악을 선보여 팝 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대표곡 ‘Behind the Mask’는 마이클 잭슨과 에릭 클랩턴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한편 사카모토는 1980년대 들어 영화음악 세계에도 발을 들였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유명한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1986) OST로 일본인 최초로 오스카의 작곡상을 수상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우뚝 섰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와 <마지막 황제>에서는 젊은 시절 배우로도 활약했던 그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2007년 숲 가꾸기 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모어 트리스’를 설립해 환경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어린이 음악 재생 기금’을 운영한 사실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2014년에 인두암 진단을, 2020년에는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와 회복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는데, 음악에 관한 열정과 사유는 그의 저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이후 발자취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생의 마지막 반년간 일본 문예지 <신초>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책이다. 그가 쓴 마지막 문장인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는 앞으로도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지리라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음악으로 그를 추억하고 싶다면 2016년 앨범 을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의 영화음악 작품이 브뤼셀 필하모닉의 웅장한 연주로 완성되는데,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사운드가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지난 7월에는 체코 출신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별세했다. 향년 94세. 그는 공산 체제의 조국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1968년 자유화 운동 ‘프라하의 봄’이 옛 소련의 억압으로 좌절되며 집필 금지 등 정치적 탄압을 받았고, 1975년 그는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국적을 박탈당했으나 1981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해 그곳에 살면서 <느림>(1993), <향수>(2000), <무의미의 축제>(2014) 등 주옥같은 작품을 써 내려갔다.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가 직접 그를 설득해 2019년 체코 국적을 회복했지만, 작품 상당수는 프랑스어로 쓰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십중팔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을 꼽을 것이다. 옛 소련이 침공하자 스위스로 망명한 외과 의사 토마시와 그의 아내인 사진작가 테레자를 중심으로 네 남녀의 만남과 사랑, 죽음을 통해 역사의 상처를 짊어진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첫 장편소설 <농담>(1967)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한다. 대학 시절 농담 한마디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축출된 루드비크, 그가 오랜 기다림과 복수 과정에서 인생이 보내온 지독한 비웃음을 마주하는 이야기에는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모순점을 포착하고자 한 작가의 사상적 근원이 담겨 있다.
제인 버킨(Jane Birkin)도 무더운 여름날 이별을 고했다. 그녀를 잘 몰라도 이름은 익숙할 것. 맞다. 에르메스 버킨 백의 그 버킨이다. 백에 그녀의 이름이 붙은 사연은 다음과 같다. 바스켓에 물건을 가득 채워 다니는 무심한 스타일로 유명했던 그녀는 1983년 런던행 비행기에서 에르메스 경영자 장 루이 뒤마를 만났고, 엄마들이 쓸 수 있는 크고 견고한 가방을 찾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장 루이 뒤마가 비행기 멀미 봉투 위에 디자인 초안을 스케치했고, 이듬해 버킨 백이 나왔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제인 버킨이 생전 이룬 것에 비하면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1946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욕망>(1966)으로 공식 데뷔했는데, 이 영화는 그녀의 나체 출연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남편 존 베리가 그녀에게 카메라 앞에 알몸으로 설 용기가 없을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녀의 당찬 성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1969년 피에르 그림블라 감독의 <슬로건> 오디션에서 프랑스 국민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를 만났고, 두 사람은 세기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로서 10여 년을 함께했다. 듀엣곡 ‘Je t’aime… moi non plus’는 선정성을 이유로 여러 나라에서 방송이 금지될 정도로 파장이 컸지만, 그만큼 인기도 대단했다. 세르주 갱스부르가 작사·작곡하고 제인 버킨이 특유의 속삭이는 목소리로 부른 ‘Yesterday yes a day’는 지금 들어도 세련되고 감미롭다. 배우로서는 1980년대 자크 리베트, 장뤼크 고다르 등 거장 감독과 작업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1985년 <더스트>로 베네치아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 영화에 짧게 출연한 적도 있다.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에서 해원(정은채 분)을 만나 “당신은 정말 내 딸과 닮았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녀의 딸은 또 다른 명배우이자 프렌치시크 아이콘 샤를로트 갱스부르다. 스크린에서 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앞서 본 영화의 한 장면이, 제인 버킨의 미소가 계속 떠오를 것 같다.







제인 버킨에게 영감을 받아 탄생한 버킨 백.
제인 버킨의 명곡을 모은 2020년 발매 앨범 .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밀란 쿤데라는 생전에 언론과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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