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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30

우리가 사랑한 문장들

두고두고 곱씹어볼 문장이 가득한 책 세 권.

왼쪽부터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쇼펜하우어, <무지의 세계가 우주라면> 강준만, <문장수집가 4: Last Words> 아틀리에 드 에디토



따사로운 태양과 푸르른 초목은 이제 없다. 온몸을 감싸는 찬 기운에 흠칫하고, 바닥을 뒹구는 낙엽이 눈에 밟힐 뿐이다. 우리는 짧은 가을을 지나 모든 것이 사그라드는 겨울로 내달리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괜스레 헛헛함이 밀려온다. 위장의 허기가 아닌 정신적 공복이다. 이를 채우기 위해선 아포리즘(aphorism)만 한 것이 없다. 깊은 체험적 진리를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로, 한 문장에 담긴 의미를 오래도록 음미하며 생각을 확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니체의 철학, 헤세와 카프카의 문학,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다. 그는 인생 자체를 텍스트 삼아 삶의 고통을 철학으로 승화했다.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집착을 버림으로써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비관에 대한 비관’을 제시한 것.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그런 쇼펜하우어가 저서와 편지, 일기에 쓴 인생 조언을 모은 책이다. “인생에서 가장 애처로운 시간은 먼 훗날, 관 속에 누울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을 때, 일생을 헛된 욕망을 좇느라 세월을 탕진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는 한 번 더 시간이 주어지기를 가만히 소망해보는 때다” 같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금언(金言)으로 가득한 이 책은 한 해를 되돌아보는 지금 시기에 읽기 더없이 적절하다.

<무지의 세계가 우주라면>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강준만 교수의 독서 노트 모음으로 아포리즘을 고독, 사랑, 결혼, 나이, 희망, 경청, 신뢰 등 50가지 키워드로 엮어냈다. 키워드에 맞춰 수많은 현인이 삶의 다양한 풍경을 지나며 빚은 문장을 단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연결해 사고의 흐름이 이어지도록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다. 예컨대 6장의 ‘왜 인간은 사과보다 거짓말에 능한가?’에서 사과는 과거에 약한 자의 언어로 여겼다는 점을 언급하며 “분별력 있는 자는 결코 사과하는 법이 없다”라는 철학자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을 소개했다. 이어 “사람들은 사과를 나약함의 상징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과의 행위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는 정신의학자 에런 라자르의 말로 반론을 제시했다. 작가 길버트 체스터턴의 “거만한 사과란 모욕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통해 진심과는 거리가 먼 엉터리 사과를 경계하기도. 이처럼 다채로운 시각과 의견이 담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한층 넓어질 것이다.

‘문장수집가’는 언어의 홍수 속에서 사유의 문장을 수집하고 소개하는 북 시리즈다.
그중 가장 최근 출간한 <문장수집가 4: Last Words>에는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등 명사들의 유언장과 묘비에 적힌 말을 모았다. 묘비가 세워진 무덤가를 떠올리면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들지만, 문장을 경쾌한 활자로 써 내려가 죽음에 대한 사유를 산뜻하게 전복한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명사들의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 삶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소설가 미셀 투르니에의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 배나 많은 것을 갚아주었다. 고맙다, 인생이여!”처럼.

 

에디터 황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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