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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0

돌아오리라, 나폴리로

문화 칼럼니스트 정준호가 전해온 나폴리 여행기

위쪽 기원전 130년경에 지은 폼페이 바실리카.
아래왼쪽 카세르타 궁전의 왕실 계단.
아래오른쪽 쿠마 고고학 공원 입구.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영화 <이탈리아 여행(Journey to Italy)>(1954)에서 영국 상류층 부부는 삼촌의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나폴리로 향한다. 이 현대적인 부부에게 게으르고 낙후한 나폴리는 못마땅한 일로 가득하다. 아내 캐서린이 유적지를 돌아보는 동안 남편은 카프리에서 소일하고, 권태기를 맞은 부부는 이혼에 합의한 채 폼페이로 향한다. 그곳에서 용암으로 뒤덮인 시신으로 풍화됐던 공간에 석고를 부어 복원하자 손을 잡고 최후를 맞은 연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캐서린은 감정이 북받쳐 자리를 떠난다. 남편은 이혼을 망설이는 아내를 다그친다. 마침 시내에서 성모 축일 행렬에 떼밀려 떨어졌다가 겨우 다시 만난 두 사람은 화해하고 질문한다. “왜 사랑하면서 자꾸 다투는 걸까”라고.

나폴리의 신화는 계속된다
나는 여러 차례의 나폴리 기행 끝에 마침내 쿠마(Cuma)에 갔다. 쿠마는 나폴리 시내에서 20km가량 떨어진 해안 유적지다. 트로이가 멸망하자 왕자 아이네이아스는 유민을 이끌고 지중해를 떠돌다가 지금의 튀니지인 카르타고에 도착한다. 그는 사랑을 맹세한 여왕 디도를 버린 뒤 로마를 건국하라는 신탁을 받고 쿠마의 무녀(巫女)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이 무녀는 아폴론의 총애를 받아 모래알처럼 많은 생명을 얻은 700세 노파다. 그녀의 조언대로 아이네이아스는 저승의 여왕 프로세르피나에게 줄 선물로 황금 가지를 꺾어 하계(下界)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 안키세스는 아들에게 로마의 미래를 예고하며 개국의 뜻을 북돋운다. 무녀의 동굴 앞에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 아이네이아스의 노래)’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나는 2000년 전 안내자 베르길리우스의 도움으로 1만 년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 한 길 너비의 동굴은 마치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긴 열쇠 구멍처럼 보였다. 앞서 말한 영화 속 캐서린은 이 장소에서 한 시인 친구의 시구를 떠올린다. “영혼의 사원, 더 이상 육체는 없다/ 순수한 금욕의 이미지만 있을 뿐”. 아폴론 사원에서도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구절을 만났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을 위해 미궁을 지은 다이달로스에 대한 내용이다. 다이달로스는 미궁을 탈출하는 방법을 누설한 죄로 아들과 함께 탑에 갇히는데,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 만든 날개를 이용해 탈출한다. 태양에 너무 다가간 아들 이카로스는 추락해 바다에 빠져 죽고, 다이달로스만 쿠마에 도착해 이 신전을 지었다. 멀리 이스키아섬이 바라보이는 해안에는 정체 모를 말과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카로스의 시신을 건져 올린 것인지도! 쿠마 인근의 온천지 바이아(Baia)는 카이사르에서 네로에 이르는 로마 통치자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높았다. 천장에서 바닥으로 거꾸로 자란 이름 모를 신전의 나무가 시간을 거슬러 온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해안선을 따라 멀리 보이는 16세기 아라곤 왕 알폰소의 성을 보고 나는 이곳이 쿠마의 무녀가 아폴론에게 소원을 빌었던 자리임을 알아보았다.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걸린 윌리엄 터너의 그림 ‘카르타고 제국의 몰락’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한편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영화 <이탈리아 여행>에서 캐서린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이다. 박물관에서 단연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것은 로마에서 옮겨온 파르네세 가문 소장품이다. 파르네세 가문의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는 추기경 시절부터 많은 예술품을 수집했다. 마지막 상속자는 18세기 나폴리의 카를로스 3세였는데, 그는 교황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마 파르네세 궁전의 컬렉션을 나폴리로 옮겼다. 그중에서도 카라칼라 욕탕에서 발견된 ‘휴식을 취하는 헤라클레스’와 ‘파르네세의 황소’는 박물관의 상징과도 같다. 열두 가지 과업을 수행하던 중 휴식을 취하는 헤라클레스. 네메아의 사자 가죽이 걸린 몽둥이에 기댄 헤라클레스는 뒷짐 진 손에 황금 사과 3개를 쥐고 있다. 무슨 생각에 잠긴 것일까? 캐서린은 나폴리 사람만 그 참뜻을 안다는 말을 배운다. ‘돌체 파르 니엔테(Dolce far niente)!’ ‘무위(無爲)는 달콤하구나!’라는 뜻이다. 얼핏 게을러 보이는 나폴리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사실 느림의 미학을 예찬하며 아날로그적 삶으로 돌아가자는 요즘 시각과 맞닿아 있다. 나폴리야말로 ‘멍’ 때리는 헤라클레스가 가장 어울리는 곳인 셈이다.
서울에 사는 나폴리 출신 친구 수잔나가 내게 꼭 가보기를 권한 곳은 ‘카세르타’다. 나폴리 북쪽 30km쯤에 위치한 카세르타 궁전은 과연 놀라웠다.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바로크 예술의 백조의 노래’, 곧 끝판왕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나폴리 왕가가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버리고 한참 내륙으로 들어온 18세기 중엽은 절대왕정의 막바지였다.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 동시에 혹시 모를 프랑스·영국 해군의 함포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 카를로스 7세의 뒤를 이은 페르디난도 4세의 아내는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딸이자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였다. 왕비는 영국 영사 해밀턴 공이 느지막이 얻은 아내 에마 하트를 가까이 두었는데, 절세미인 에마는 나폴리에 입항하려는 넬슨 제독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에마는 넬슨이 나폴리에 주둔하면 나폴레옹의 위협에서 지켜줄 수 있다며 왕비를 설득했다. 20세기 말 조지 루카스 감독은 카세르타에서 영화 <스타워즈> 속편을 시작했다. 아미달라 여왕(내털리 포트먼 분)은 제다이 기사단의 도움으로 제국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다. 넬슨을 이용해 나폴레옹을 막은 것처럼. 카세르타 궁전 내부도 대단하지만, 셔틀버스로 20분쯤 가야 끝에 이르는 정원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야트막한 경사로 끝에 파올로 페르시코(Paolo Persico)가 만든 디아나와 악타이온 분수도 시선을 끌었다. 악타이온은 사냥 중 우연히 여신의 목욕 터에 갔고, 그곳에서 목욕하던 디아나 여신이 자신의 알몸을 봤다는 이유로 그를 사슴으로 변신시켰다. 사냥개는 사슴으로 변한 주인을 몰라보고 물어 죽인다. 분수 옆으로 난 비밀 정원의 아름드리 나무로 이루어진 조경과 신비로운 은신처가 신화의 세계는 계속 이어진다고 초대하는 듯했다.







카세르타 궁전의 상부 현관.
카세르타 궁전의 '계절의 방' 천장화.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스텔 델로보. 달걀 성이라는 뜻을 지녔다.


하나 되는 나폴리의 시간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잿더미에 묻혀 있던 폼페이는 1592년 수로 공사를 하다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기술로는 발굴하기 어려웠기에 도굴꾼만 들끓었다. 1748년 부르봉 왕가가 폼페이를 발굴했을 때나 이후 나폴레옹 점령기에도 귀중품만 쓸어가는 식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25년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는 나폴리에서 오페라 <폼페이 최후의 날(Lʼultimo giorno di Pompei)>을 초연했다. 번개, 화산재, 구름을 묘사하는 막이 9개나 동원되었고,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에 플로어층 관객은 겁을 먹을 정도였다. 이후 1833년에는 러시아의 카를 브률로프(Karl Bryullov)가 오페라에서 영감받아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을 본 에드워드 불워 리턴(Edward Bulwer-Lytton)이 동명 소설을 쓰면서 낙원의 최후가 예술로 완성되었다. 마침내 1863년 통일 이탈리아의 주도 아래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가 폼페이 발굴을 책임졌다. 그가 바로 화산재층 공간에 석고를 주입해 희생자의 모습을 복원하는 기술을 적용한 인물이다. 시가지를 잇는 도로와 화려했을 건물은 폼페이의 규모를 상상하게 했지만, 여전히 가장 감동적인 것은 생명의 흔적이었다. 여기저기 햇볕을 쬐며 쉬는 개들은 마치 살아 있는 화석 같았고, 마구간에 묶인 채 발견된 마소, 도망치다 잡힌 노예, 두 손을 꼭 잡은 남녀는 그 자체로 드라마다. 폼페이 유적을 둘러본 이들은 누구든 마지막에 반원형 극장을 지나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바로 이곳에서 2017년 역사적 공연이 열렸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Pulcinella)>를 초연 그대로 레오니드 마신(Leonide Massine)의 안무와 파블로 피카소의 미술로 재연한 것이다. 동시에 레오니드의 아들 로르카 마신이 로마 발레단을 이끌고 감독했다. 1920년대에 작곡된 ‘풀치넬라’는 이른바 신고전주의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원료가 된 바로크음악의 뼈대에 감각적 편곡으로 살을 붙이고 피가 돌게 했다. 고고학자들이 폼페이 희생자를 석고로 되살렸듯, 스트라빈스키는 코메디아델라르테 시대의 광대를 깨운 것이다. 그로 인해 지나간 모든 시대의 음악이 재생 재료로 쓰일 시대가 밝았다. ‘풀치넬라’를 통해 비로소 고대, 근세, 현대가 일순간 하나 되었던 극장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돌아오리라, 나폴리로(Tornero a Napoli)!’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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