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윤, 관계를 잇는 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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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30

정해윤, 관계를 잇는 실

정해윤 작가는 말한다. 박새가 물고 있는 팽팽한 실은 네트워크를 뜻하며 따로 또 같이 관계 속에서 생태계를 이루어 사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았다고.

정해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두꺼운 한지인 장지에 아크릴물감과 분채를 섞어 사용하며 독창적 화풍을 개척해왔다. 독일 마이클슐츠갤러리, 가나아트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제주도립미술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토탈미술관 등 다수의 미술 기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Relation, Acrylic on thick mulberry paper, 91×117cm, 2024.

처음 회화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 있을까요? 회화를 전공하기 전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했어요.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종교적 색채가 짙죠. 당시 저는 열정을 갖고 작업에 임했지만 한편으론 저 자신을 표현하고, 제가 의도한 붓질로 그림을 그리고 제 이름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갔어요. 그 열망이 제가 회화를 전공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작품에는 박새, 서랍, 실이 주로 등장하죠. 이들은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제 작품에서 박새는 인류를 뜻해요. 시대와 역사는 변해도 인류는 계속 존재했죠. 하나의 서랍은 개인의 역할이나 생로병사가 담긴 삶의 터전이기도 하고, 그 서랍이 모인 전체 화면은 여러 삶이 어우러진 생태계인 사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실은 얽히고설키며 서로 소통하는 사회 속 관계를 상징해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 우리 삶에 대해 친근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박새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사람은 스스로 달릴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지만 날지는 못합니다. 저는 늘 날 수 있는 새를 동경해왔어요. 새는 신비한 존재인 동시에 약한 듯 보이지만 생명력이 강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중에서 작은 박새의 몸은 우리 인간의 모습과도 닮았고, 그 작은 몸이 높이 날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날개는 저에게 희망으로 다가왔어요. 박새는 제 모습인 동시에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온 우리 모두와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Playground of Life’, ‘Difference’ 시리즈에서는 돌과 파이프 등 소재의 변화가 보입니다. 관계라는 개념을 다양한 물성을 가진 소재로 확장해나가고 싶었어요. 돌은 인생의 굴곡을 의미해요. 외부의 자극에 의해 거친 돌의 표면이 부드러워진 것이 세상의 풍파를 겪어온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Playground of Life’는 우리 인생은 각자의 시간을 스스로 운용하며 살아가는, 말하자면 세상이라는 운동장에 나온 것과 같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Difference’ 또한 성질이 다른 것들이 만나 서로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언젠가 해결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삶의 형태를 그린 것입니다.







Plan B, Acrylic on thick mulberry paper, 130×162cm, 2024.







4 Plan B, Acrylic on thick mulberry paper, 80×100cm, 2024.

우리 삶의 형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관계’란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은 우주의 한 요소이며, 관계는 단독으로 이뤄지지 않죠. 인간의 삶에서 개별 또는 전체만을 강조할 수는 없습니다. 조화로운 삶을 위해 개인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 전체가 자연스럽고 견고하게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부터 더 나아가 한 나라, 전 세계에까지 이르는 집단의 형태로 볼 때, 개별과 전체는 늘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죠. 언제나 개별과 전체가 긴밀한 관계 속에서 견고히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작품 구상부터 완성까지 전체적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 흔히 접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대입시키고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해오고 있죠. 작업 과정은 우연성보다는 치밀하게 계획한 구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색상 또한 선명한 색을 선호하죠. 전반적으로 제 작업은 명료하다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이번에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개최하는 개인전 〈본성의 여정: 惡을 설득할 수 있는 善〉에서는 회화 작품뿐 아니라 설치, 벽화 등을 선보일 예정이시죠.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담았을까요? 그동안 박새와 실을 소재로 사회적 관계에 집중해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관계를 형성하기 이전인 인간 본성을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합니다. 새가 탄생하기 전 알이라는 형태를 빌려 착시 효과를 이용,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움직임을 표현합니다. 생명의 시작점인 본성과 그 본성을 깨고 나오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각자 타고난 본성이 후천적 영향에 따라 선과 악을 넘나들며 변화하는 여정을 탐구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전시장 중앙에는 커다란 빈 서랍을 그린 벽화가 등장할 겁니다. 태어나 자라는 사이 후천적 영향과 사람의 의지가 담기는 공간으로 그린 이 서랍이 보는 이들에게 자신의 타고난 본성이 어떤 모습인지, 또 어떠한 후천적 영향으로 변화해가고 있는지 각자 본성의 여정을 고찰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Playground of Life,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144×182cm, 2015.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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