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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6

드라마 만드는 영화감독

유명 영화감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드라마 시리즈 제작에 뛰어드는 이유, 거기엔 OTT 시장의 성장이 있다.

OTT의 대표주자 넷플릭스. 가입만 하면 IT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얼마 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좀 의외였다. 영화가 아니라 TV 드라마다. 영국 BBC의 6부작 드라마 <더 리틀 드러머 걸>의 연출을 맡은 것이다.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이스라엘 스파이로 인해 이중 간첩이 된 배우가 테러리스트를 추격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치고 스케일이 클 거라 짐작은 했지만, 출연진을 보니 어지간한 영화보다 낫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년)와 <녹터널 애니멀스>(2016년)로 두 차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마이클 섀넌, <레전드 오브 타잔>(2016년)에 출연한 미남 배우 알렉산데르 스카르스고르드, <레이디 맥베스>(2017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신예 플로렌스 퓨가 참여하는 것. 그 자체로 빛나는 원작에 근사한 배우까지, 이쯤 되면 박찬욱 감독이 어떤 드라마를 만들지 우려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10년 전만 해도 영화감독이 드라마를 만드는 건 낯선 일이었다.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년)를 제작한 한지승 감독이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를 연출했을 때 방송계에선 일탈 혹은 외도로 보도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사정은 급변했다. OTT(Over the Top)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 덕분이다. OTT는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다. 방송 전용 망을 통해 뉴스 등 동영상 콘텐츠를 전송하는 기존의 방송사와 달리, OTT는 시청자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TV, 태블릿 PC 등 IT 기기를 통해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원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게 한다. 쉽게 말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한 동영상 서비스인 셈. 현재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같은 OTT 시장의 공룡 기업은 각자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오리지널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바로 이들에게 수준 높은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적임자가 이름만으로 신뢰감을 주는 영화감독들이다.






1 <크라이시스 인 식스씬>에서 우디 앨런 감독은 연출과 주연을 겸했다.
2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제작하고 스콧 프랭크 감독이 연출한 <갓리스>의 포스터.

영화감독 모시기의 선두주자는 넷플릭스다. 이들은 지난 2013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년), <소셜 네트워크>(2010년)의 감독 데이비드 핀처와 함께 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를 만들었다. 권모술수가 판치는 미국 정치판을 가감 없이 묘사한 이 작품은 대중과 평단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최근 주연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성추문으로 추락하며 빛바랜 감이 있지만, 드라마 시리즈를 영화 수준의 퀄리티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덧붙여 데이비드 핀처는 지난 10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마인드헌터>도 연출했다. 1979년을 배경으로 두 FBI 요원이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미국에서 가장 잔인한 범죄자들을 만나 이들의 복잡한 심리를 인터뷰하는 여정을 그린 작품. 스릴러의 대가다운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평이다. 이 밖에도 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 <오션스 13>(2007년)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제작하고 <툼스톤>(2014년)의 스콧 프랭크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시리즈 <갓리스>를 선보였다. 영화 <라라랜드>(2016년)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감독 데이미언 셔젤과 함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드라마 시리즈 <더 에디>도 제작 중이다.
한편 2016년 국내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한국만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도 힘쓰고 있다. 영화 <끝까지 간다>(2014년)와 <터널>(2016년)의 김성훈 감독이 연출을 맡고 드라마 <싸인>(2011년), <시그널>(2016년)의 김은희 작가가 극본을 담당한 6부작 드라마 시리즈 <킹덤>이 대표적 예. 이 작품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스릴러물로 주지훈, 류승룡, 배두나 등 유명 배우가 출연한다. 회당 제작비만 약 15억 원으로 올해 안에 방송할 예정이다.






3 <하우스 오브 카드>와 <마인드헌터>를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
4 드라마 시리즈 <마인드헌터>의 한 장면.
5 애플과 손잡고 <어메이징 스토리>를 리메이크하기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6 1세대 중국계 미국인의 삶을 다루는 <통 워즈>의 연출을 맡은 왕가위 감독.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여러 영화감독과 함께 자사만의 동영상 콘텐츠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2016년 천재 감독 우디 앨런과 손잡고 6부작 드라마 <크라이시스 인 식스 씬>을 제작했다. 1960년대 교외 중산층 가족에게 황당한 손님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 그의 대표작에 비해 스토리가 다소 늘어진다는 평이지만, 감독 특유의 속사포 같은 대사와 지식인의 위선을 비꼬는 유머는 여전하다. 이 밖에도 작년에 영화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배리 젠킨스 감독은 차기작으로 드라마 시리즈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선택했는데, 이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18세기 미국의 흑인 노예 소녀 코라가 노예 탈출을 돕는 비밀 조직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섬세한 미장센과 뛰어난 영상미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도 아마존과 함께한다. 19세기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한 범죄 드라마 <통 워즈>의 연출을 맡은 것. 작년 10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뤼미에르 영화 페스티벌에서 그는 이 작품에 대해 “1세대 중국계 미국인의 경험을 영상으로 옮길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기존에 몸담은 영화 분야에선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이 많지 않다”고 제작 이유를 밝혔다.
그런가 하면 오리지널 동영상 콘텐츠가 고객을 끌어모으는 강력한 수단임을 확인한 다른 분야의 거대 기업들 역시 드라마 시리즈 제작에 나섰다. 자사의 플랫폼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0월 애플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잡았다. 1985년 그가 제작한 TV 드라마 <어메이징 스토리>를 리메이크 하기 위해서다. 애플은 이 콘텐츠의 제작에만 약 55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애플의 CEO 팀 쿡은 “2020년까지 온라인 서비스 사업 부문에서 500억 달러(약 55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OTT는 기존 방송 환경의 룰을 바꾸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 분야 시장조사업체 라이트먼 리서치에 따르면, 2017년 1분기 미국 내 OTT 사업자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는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추월했다. 또한 글로벌 OTT 시장은 2020년 1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시류와 맞물려 영화감독의 드라마 시리즈 제작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사실 에디터와 같은 시청자 입장에선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상황이다. 결제만 하면 소파에 누워 재능 넘치는 영화감독들이 만든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다 챙겨 보기엔 시간이 모자란 상황. 오늘은 어떤 작품을 볼지, 각자 취향에 따라 행복한 고민에 빠져보자.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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